펜팔

by 이상역

지난 시절 볼펜을 손에 쥐고 종이에 글자를 쓰던 시대는 저물고 손가락 터치로 글자를 입력하는 시대로 변했다. 볼펜 대신 손가락이 종이 대신 화면으로 변화된 것은 아날로그 시대가 저물고 디지털 시대가 등장한 것을 의미한다.


청춘 시절에 ‘선데이 서울’이란 잡지가 연예계 소식통으로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선데이 서울’은 1968년에 발간되어 1991년에 폐간된 주간 오락용 대중잡지다.


‘선데이 서울’은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 등의 좌판에서 살 수 있었다. 그 시절 기차나 버스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가는 날에는 지루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선데이 서울’을 사서 종이가 닳도록 읽은 기억이 난다.


‘선데이 서울’에는 유명한 여배우 얼굴이나 수영복을 입은 사진이 화보에 실리고 연예계 가십거리나 사회에서 화제가 된 사건사고 등을 주로 게재했다. 그리고 잡지 맨 뒷면에는 편지로 펜팔을 나누고 싶은 남녀의 이름과 나이와 직업과 주소 등이 적힌 면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그 시절은 낭만을 추구하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편지로 이성과 사귀고 싶은 사람이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선데이 서울’에 게재해서 사귀자고 하는 것은 아날로그 방식이다.


오늘날에는 누군가 펜팔로 사귀자면 콧방귀도 뀌지 않겠지만, 그 시절만 해도 인터넷이나 컴퓨터나 TV 등이 없어 세상 밖 소식은 ‘선데이 서울’이나 라디오 등을 통해 들을 수밖에 없었다.


‘선데이 서울’에서 연예계 뒷소식을 접하지 않고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었다. 지금은 인터넷이나 TV 등을 통해 온갖 소식을 접하는 시대다.


당시 ‘선데이 서울’을 흥미롭게 읽고 호기심에 펜팔 면에 실린 여성에게 여려 통의 편지를 보냈지만 대부분 답장을 받지는 못했다. 그런데 언젠가는 제주 애월읍에 산다는 여성에게 첫 답장을 받은 적이 있다.


그녀는 제주 애월읍에 산다는 이야기와 의상실에 다닌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이어서 날씨와 의상실을 찾아오는 사람들과 건네는 이야기 그리고 내가 사는 곳의 날씨와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등 안부를 물었던 것 같다.


그 이후 그녀와 서너 번의 편지가 오고 가다 편지가 어떻게 끊어졌는지 세세한 것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청춘 시절엔 이것저것에 대한 호기심이 참 많았다.


펜팔을 나누던 것도 아련한 추억이 되었지만 고향이 시골이라서 외지 아가씨를 만나는 것도 어려웠다. 따라서 누군가가 읽고 버린 ‘선데이 서울’을 주워 들고 읽다가 펜팔 면에 실린 주소를 보고 편지를 보내는 것이 낯선 여성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아버지에게 편지 쓰는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일까. 편지를 잘 쓴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다짜고짜 펜을 들고 편지를 써서 읽어보면 가관이었을 것이다.


그런 편지를 받아보고 답장을 해오는 여성을 보면서 참 이상한 세상이란 생각도 들었다. 청춘 시절엔 상상력이 끝도 없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얼굴도 모르는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상상으로 유치한 글로 상대방의 감정까지 헤아려가며 편지를 쓰곤 했다.


그 당시 ‘선데이 서울’ 외에도 펜팔로 사귀자고 이름과 주소를 게재한 잡지가 많았다. 그 시절엔 바깥세상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다른 수단도 없었다. 궁벽한 시골에서 외지인을 만나는 것은 마을에서 누군가의 결혼이나 회갑연 등 행사가 있는 날이다.


제주 애월읍에 산다는 여성에게 처음 답장을 받았던 기억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그녀에게 무슨 내용을 써서 편지를 보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생각해 보면 좀 사기꾼 기질을 갖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나누려고 편지지에 갖은 사연을 적었을까. 그때 쓴 편지가 없어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는 방식은 현재의 기준에서 보면 진부한 방식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좀 낭만적인 일이기도 하다. 편지는 상대방을 생각하며 글을 쓰는 수단이다. 아마도 처음 만나는 여성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면 그리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반대로 편지는 상대방이 앞에 없으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쓰면 그만이다.


그때 편지 쓸 내용이 없으면 좋은 시를 한 편 적거나 아니면 책을 읽다 좋은 구절을 만나면 그 내용을 그대로 적어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남이 쓴 편지를 보고 내용이 좋으면 그것을 모방해서 보낸 적도 있다.


지금에 와서 펜팔을 나누었던 제주 애월읍에 산다는 여성을 찾고 싶지는 않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생각나는 것도 별로 없고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데 무슨 수로 찾을 수 있겠는가. 또 지금에 와서 그 여성을 만난 들 무슨 말을 나눌 수 있을까.


그 여성은 나와 나누었던 펜팔에 대한 기억이나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을까. 펜팔과 관련한 허접한 이야기를 꺼내어 썼지만, 순수를 추구하던 아날로그 시대의 청춘 시절이 새삼 그립기만 하다.


요즈음은 펜팔로 사귀자며 이름과 주소를 싣는 잡지도 없다. 물론 펜팔로 사귀자며 잡지에 이름과 주소를 올리는 순간 잡지를 만든 사람은 구속될 것이다. 개인정보 보호 시대라 남의 이름과 주소를 잡지에 함부로 실었다가는 처벌을 피할 수가 없어서다.


청춘이란 성난 바람은 호기롭게 지나가고 펜팔로 다른 이성을 그리워한 호기심도 수그러든 지 오래다. 지금은 호기심의 대상이 이성이 아닌 멋진 글을 써서 독자를 만나고 싶은 간절함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불어온 설렘의 바람이 가슴속에서 수그러들지 않고 자꾸만 옆구리에서 치근덕대며 마음을 한없이 유혹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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