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직장을 퇴직하게 되는데 담당자가 훈포장 추천과 관련해서 전화를 걸어왔다. 공무원 경력에 대하여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33년에서 1개월이 부족해 녹조훈장을 추천할 수 없다며 아쉬워했다.
그리고는 근정포장을 추천하는데 필요한 자료를 메일로 보냈으니 확인하고 공적 조서와 함께 보내달란다. 메일을 열어 담당자가 보낸 자료를 확인해 보았다.
그간 지방직과 군대 경력 그리고 법무부 출입국과 7급으로 임용해서 현재까지 경력을 합산해 보니 32년 11개월이다. 군대 기간 일 년을 제외하면 지방직과 국가직에 31년 11개월을 근무했다.
공직에서 33년 이상 재직하면 직급에 따라 청조(장관급), 황조(차관∼1급), 홍조(2∼3급), 녹조(4∼5급), 옥조(기능직, 고용직) 훈장을 수여한다.
나는 33년에서 1개월 모자라 녹조훈장이 아닌 근정포장 대상이다. 공직에서 근무경력 33년 미만은 근정포장이고, 28년 미만은 대통령 표창 대상이다.
사실 퇴직하면서 훈장이나 포장을 받는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고 본인의 명예만 높아질 뿐이다. 정부포상에 대한 동의 및 확인서에 서명하고 공적 조서를 첨부해서 담당자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훈장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공무원 경력 1개월을 어디 가서 빌려올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훈장을 반드시 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 훈포장을 받으면 지역에서 개인택시 면허를 신규로 받을 때 일정 기간 경력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 유일한 혜택이다.
개인택시 면허를 받으려면 무사고 5년 이상의 운전경력이 필요한데 훈포장과 대통령 표창은 6개월, 장관·도지사·경찰청장 표창은 5개월, 시장 표창은 3개월을 경력으로 인정해 준다. 따라서 훈장을 받으나 포장을 받으나 개인택시 면허를 따는데 무사고 운전경력 혜택은 같다.
공적 조서에 적힌 공직 경력을 바라보자 내 삶이 간단하게 몇 줄로 기록되어 있다. 그 몇 줄에는 지난날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밤을 지새웠던 날과 직장 인사로 웃고 울었던 날 그리고 눈과 비바람을 맞아가며 출퇴근한 무수한 날들이 간직되어 있다.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과 몸을 부대끼며 살아온 날들과 이리저리 이사 다니며 시달렸던 고달픈 일들이 떠오른다. 그렇게 온갖 고생하며 살아온 대가가 고작 근정포장이다.
나는 근정포장을 받는 것보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직접 쓴 자서전이나 산문 형식으로 쓴 책을 받고 싶다. 근정포장에는 내가 살아온 이야기가 하나도 담겨 있지 않다.
근정포장은 가슴에 달고 다닐 수도 없는 증서와 손목에 차는 시계가 전부다. 근정포장을 받았다고 아내에게 보여주면 고마워할지나 모르겠다.
기왕이면 자신이 쓴 자서전이나 수필이나 시집을 책으로 발간해서 주면 멋진 선물이라도 될 텐데. 훈포장은 시간이 되면 사라질 물건이지만, 자서전이나 수필집이나 시집은 후손에게 남겨져 전할 수 있는 영혼의 선물이다.
앞으로 공직을 퇴직하는 사람에게 훈포장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자서전이나 수필집과 같은 것을 받을 것인지 선택권을 주도록 개선하면 어떨까. 훈포장을 제작이든 책을 발간하든 비용은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 전문에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국가에서 문화를 조성하고 문학을 고양시키는 것은 멀리서 찾지 말고 가까이서 찾아야 한다. 그중에 공직을 퇴직하는 사람이 쓴 자서전이나 수필집이나 시집을 발간해서 그 사람의 삶을 축복해 주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다.
금년 연말에 퇴직하면서 근정포장을 받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국가에서 훈포장 대신 자신이 살아온 삶을 자서전이나 수필집이나 시집으로 써서 상장으로 받는 문화를 조성해서 문학이 꽃피우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