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도 달력이 한 장만 남았다. 코로나로 한 해가 지루하고 길게만 느껴졌는데 마무리는 해야 한다. 공로연수를 시작할 때는 일 년이란 기간을 어떻게 보낼까 걱정했는데 어느덧 시간이 다 되어간다.
공직을 퇴직하기에 앞서 공무원연금공단에 퇴직에 필요한 서류를 접수했다. 공단의 안내문에 따라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했더니 접수가 되지 않는다. 며칠 후 공단에 전화로 물어보니 마지막 달에 신청해야 한단다.
드디어 12월에 인터넷을 통해 공단에 퇴직수당과 퇴직금을 신청했다. 퇴직금은 퇴직연금이나 퇴직금 전액을 받거나 퇴직연금과 퇴직금을 반반씩 나누어 받는 세 가지 조건 중 한 가지를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
나는 매월 소득이 나오는 곳이 없어 연금을 받는 퇴직금을 선택했다. 공단에 퇴직연금을 받겠다고 신청하자 공직에 근무하면서 대출을 받았던 은행에서 제일 먼저 전화가 걸려온다.
공단에서 공무원 신분으로 개설한 마이너스 계좌를 해제하고 나머지 부채가 있으면 모두 갚으란다. 공무원 신분을 벗어나려니 공직에 근무하면서 받은 대출은 모두 갚고 나가라는 것이다.
공무원에 재직하고 있을 때는 은행마다 서로 돈을 빌려주겠다고 난리를 치더니, 공직을 떠난다고 하자 반대로 돈을 빨리 갚고 나가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어쩔 수 없지만 은행은 참 에누리가 없는 곳이다. 은행에 부채가 남아 있다면 공직을 퇴직하고 어떻게 갚을 것인지에 대한 선택권을 주어야 하는데 다짜고짜 갚으란다.
공단에 퇴직금을 신청하자 공단에서 각 은행마다 이 사람 퇴직하니 받을 돈 있으면 빨리 받으라고 안내를 한 것 같다. 은행에서 빚을 갚으라는 연락을 받으니 기분은 그리 좋지 않지만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공직에 근무할 때 급여 계좌에 마이너스 계좌만 개설하고 일부 학자금 대출을 이용한 적은 있다. 어쨌든 공단에 퇴직연금을 신청하고 나자 그간 공직에 근무했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근 33년을 공직이란 신분을 달고 살았는데 나이가 되어 떠난다는 생각이 들자 아쉽기만 하다. 이번 달에 급여를 타면 이제는 국가에서 급여를 받을 수가 없다.
국가에서 급여를 받는 마지막 달이다. 지금까지 몸에는 국가라는 울타리를 두르고 살았는데 그 보호막이 사라지는 셈이다. 이제는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도 급여를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스스로 알아서 살아가야 한다.
앞으로는 국가가 아닌 연금공단에서 나오는 연금을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급여보다 액수가 절반으로 줄어들겠지만 서울에서 가족이 살아갈만한 금액인지는 알 수가 없다.
연금이 적고 많고를 떠나 연금생활자로 서울에서 살아갈 수는 있을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갈수록 초조감보다 공직을 떠나는 서글픔이 가슴을 압박해 온다.
내가 공직에 무슨 인연으로 들어오게 된 것인지는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인생의 황금기를 공직에서 보냈으니 그래도 행복한 사림이란 생각이 든다.
연금이야 얼마가 되었든 그 금액에 맞추어 서울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되면 사회에 봉사도 하고 가벼운 노동을 하면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싶다.
공직을 퇴직하는 사람에게 “어서 오십시오!”하며 받아 줄 곳은 없다.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몸과 머리를 쓰지 않는 허드렛일이나 공공근로 정도다.
요즈음 비정규직 일자리도 경쟁이 아주 치열하다. 그만큼 퇴직자도 많고 같은 또래도 많은 세상이다. 지금까지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편안하고 안정되게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
공직을 퇴직하기에 앞서 퇴직연금을 신청했으니 새로운 인생의 출발을 위해 과거사를 하나하나 정리해야만 할 것 같다. 앞으로 자리를 구하든 구하지 못하든 서두르지 않고 여유롭게 살아가고 싶다
앞으르 공직의 화려했던 신분과 추억은 과감하게 정리하고 나이가 든 것과 사회적 관계를 혜아려가며 소박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는 것이 최선의 삶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