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 바다

by 이상역

뉴질랜드 북섬의 아그로돔 농장 방문을 마치고 버스는 다시 오클랜드를 향해 달려간다. 버스가 초록의 바다를 달려갈수록 구름의 색깔은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해간다.


버스가 아무리 속력을 높이며 달려가도 초원은 끝이 없다. 뉴질랜드는 낙농업이 지상 최대의 목표인 것 같다. 푸른 초원은 끝없이 이어지고 길옆에는 군데군데 학교와 골프장이 들어선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사람 사는 마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띄지를 않는다. 버스가 출발한 지 한 삼십 분쯤 되었을 때 초원 위에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건물에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고 젖소들이 스스로 들어가서 젖을 짜고 나오는 모습만이 여정의 발길을 재촉한다.


젖소들은 나그네가 지나가는지 구름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관심이 없는 듯이 무리를 지어 초원으로 되돌아간다. 저문 들녘에는 소와 양들만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이곳의 계절은 북반구와 반대로 봄이라서 꽃들이 여기저기 만개했다. 뉴질랜드에서 느끼는 봄의 정취는 한국처럼 자연에서 발생하는 생동감보다 광활한 초원에 짓눌린 무언의 중압감이 봄의 정서를 대변한다.


남극의 햇살이 따사롭지만, 가끔 구름을 헤집고 나오는 햇빛의 강도가 그리 세지만은 않다. 버스 안은 몇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가 잠을 잔다. 버스를 타고 다니는 단체여행의 특징이다.


무한대로 펼쳐진 초록의 바다를 바라보면 눈이 저절로 감길 것이다. 푸른 초원에서 발생하는 녹색의 기운이 수면제로 작용해서 일행을 잠에 빠트린 것 같다.


뉴질랜드는 여성을 우대하고 배려하는 정책이 철저하다. 부부가 이혼하면 양육권은 당연히 여성에게 우선권을 주고 부부 재산의 70%는 자녀 양육을 위해 여성에게 배분한다. 그로 인해 뉴질랜드에 사는 남자는 두 번만 이혼하면 빈털터리가 되어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뉴질랜드에서 이혼을 두 번 한 남자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려면 호주나 다른 나라에 가서 돈을 벌어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와야만 가능하단다.


우리나라의 호남평야와 같은 너른 벌판이 끝없이 펼쳐진다. 낙농업을 통해 부와 복지를 이룬 나라. 어떤 힘이 이들을 복지국가로 성장시킨 것일까. 뉴질랜드의 역사와 문화와 사회를 세세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이곳에 와서 한번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서구의 합리주의와 마오리족의 전통이 만나 삶의 복지를 이룬 배경에는 역사적인 아픔과 고통도 있었을 것이다. 버스를 타고 앉아 뉴질랜드 겉모습만 바라보고 이 나라의 사회와 문화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초원의 야트막한 언덕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주택이 아름답기만 하다.


뉴질랜드가 초지를 통해 부와 복지국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국민의 개척정신도 한몫했을 것이다. 로토루아에서 오클랜드까지 버스로 3시간을 달려왔지만, 초원은 아직도 끝없이 이어진다.


낙농업을 부흥시켜 조화로운 삶의 낙원을 이룬 나라. 끝없이 이어진 도로에는 신호등과 가로등도 없다. 이곳 사람들은 아침 7시에 일과를 시작해서 오후 4시면 끝을 낸다고 한다.


초지 가운데로 길이 나 있어 가로등이 필요 없는 것 같다. 가로등은 도시의 사람 냄새를 그리워하는 불나방을 유혹하는 불빛이다. 가로등이 없다는 것은 밤거리를 찾아 헤매는 불나방도 없다는 의미다.


낙농업 사회에서 가로등은 오히려 생소한 문화가 아닐까. 뉴질랜드 여행은 역사나 문화나 전통을 자랑하는 화려함보다 옛 시절을 찾아 떠나는 근원의 여행이자 원시로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이다.


유럽이나 미국은 지난 세기 다른 민족을 침략해서 약탈하거나 그들이 인공적으로 만들어 세운 건축물이나 과거의 유물에 대한 여행이지만, 뉴질랜드는 인간을 탄생시킨 대지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은 지난 시절에 겪은 고통을 잊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쓴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는 그런 고통을 잊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을 듯하다.


주변 어디를 바라봐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 초원이니 고통이 자연스럽게 치유되지 않을까. 초록은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일종의 자양분이다.


이곳에 와서 진정한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초록의 바다는 아무리 바라봐도 질리지 않고 마음에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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