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추(麤)한 삶일까

by 이상역

모처럼 고향에 갔더니 어머니가 읍내 병원에 가서 영양제 주사를 맞는다고 하신다. 어머니를 차에 모시고 고향 집을 나서서 비석거리를 내려가는데 어머니가 차창 밖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하신다.


“나중에 추하게 살지 말아야 할 텐데 걱정이네.”라며 한숨을 쉰다. 그 말씀을 듣고 어머니에게 "추한 삶이 어디 있어요? 아무런 걱정 말고 지금처럼 건강하게 지내세요?"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어머니는 구순이 다 되어가신다. 아직은 홀로 읍내를 택시 타고 다녀오시고 텃밭도 가꾸실 정도다.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가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어머니가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사람은 매일 의식주를 해결하며 살아가야 한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행동의 정밀함과 각종 욕구가 뒤따른다. 삶은 기본적인 의식주를 스스로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질이 달라진다.


어머니는 더 나이 드시면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실까 봐 걱정하는 것 같다. 추(麤, 거칠 추)하다의 의미는 정밀하지 못하고 거칠다는 의미다.


어머니가 추하다고 하는 것은 삶을 정밀하게 다스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어머니 말마따나 과연 어떤 것이 추한 삶일까. 내 생각에는 자신의 삶을 거칠게 다스리는지 세밀하게 다스리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삶의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몸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는 거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결국에 거친 삶에는 타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행위가 뒤따라온다.


어머니가 생각하는 추한 삶이란 거친 삶을 타인의 도움을 받아가며 살아갈 때 발생하는 문제인 것 같다.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거친 삶이란 무엇일까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았다.


나이 들어 홀로 자기 몸을 지탱할 수 없으면 그 몸을 누군가에게 의탁해서 살아가야만 한다. 어머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며 생명을 유지하고 계실까.


나이가 더 들어 어느 자식에게 몸을 의탁하고 살아가야 하나 하는 것을 걱정하고 계신 것일까. 지금까지 내가 바라본 어머니는 삶이 추하지도 거칠지도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고 자존심을 지키며 꼿꼿하게 살아오셨다.


어머니가 갑자기 그런 말씀을 꺼낸 배경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걱정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몸 걱정을 많이 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머니는 당신이 가야 할 생의 지도를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식 앞에서 표현은 하지 않지만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어머니의 독백에는 자식이 팔 남매라지만 의지할 자식이 없다는 말과도 같다.


또한 어머니가 "나중에 추하게 살지는 말아야 한다."라는 혼잣말에는 사람의 자존심을 지키며 살려는 강한 의지의 다른 표현이란 생각이 든다.


추한 삶의 반대는 결이 고운 삶이다. 삶의 결이 고운 것은 자기 관리를 잘해서 아름다은 것이다. 지금 어머니가 살아가시는 모습도 결이 곱게만 바라보인다.


그런데 왜 나중에 추하게 살지는 말아야지 라는 말씀을 하셨을까. 지금의 모습 그대로 건강을 유지하면서 살아가시면 곱고 마디고 아름답게 늙어 가실 텐데.


누구나 나이 들면 겉모습은 나무의 표피처럼 늙어 가는 것 아닌가. 비록 겉모습은 추할지 몰라도 정신만 강건하게 보유하고 살아가면 추하지 않고 곱게 늙어 갈 것이다.


어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은 삶의 의지가 약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다시 찾아뵙고 어머니에게 살아갈 용기를 드려야겠다.


어머니는 결이 곱게 살아오셨으니 다른 것은 신경 쓰지 마시고 하루하루 건강 챙기면서 살아가도록 부탁을 드려야겠다. 그리고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신의 나이가 중요하므로 다부지게 마음먹고 살아갈 수 있도록 자존감을 북돋아 주어야겠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몸보다 정신이다. 몸은 세월에 어쩔 수가 없다지만, 정신은 세월과는 반대로 더욱 강건해질 수 있다. 몸이 무너지는 것보다 정신이 무너지면 생의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얼마 버티지를 못한다.


사람의 몸을 움직이고 통제하는 것은 정신이다. 정신 줄을 놓지 말라는 말처럼 몸이 쓰러지더라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 수 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은 바로 사람의 의지인 정신이다.


사람의 정신은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영역이다. 죽어가는 사람도 자신의 생명에 대한 결정권을 갖는다. 몸과 정신에서 몸에 의지하는 건강보다 정신에 의지한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머니가 추하다고 생각하신 삶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자기 몸 관리 잘하시면서 오래오래 삶을 곱고 마디게 누리시기를 간절하게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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