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글지 않은 꿈

by 이상역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마음 뛰노나니

나 어려서 그러하였고


어른 된 지금도 그러하거늘

나 늙어서도 그러할지어다


아니면 나의 목숨 거둬 가소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원하노니 내 생애의 하루하루가

경건한 마음으로 이어지기를(「워어즈워드」,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고향의 들녘에서 소나기가 그친 뒤 산자락에 걸쳐있는 무지개를 바라보던 때가 생각난다.


그 무지개를 잡아 보려고 언덕을 향해 뛰어가던 동심과 고단한 삶의 무지개가 뒤섞이며 마음을 의지할 곳 없는 날이다.


일곱 색깔 무지개를 통해 전달받은 꿈과 소망을 되돌리지 못하고, 삶이란 굴레에 하루하루 매몰되어 가는 나날의 연속이다.


영국의 계관시인 윌리엄 워어즈워드의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이란 시를 종이에 적어 책가방을 들고 고향의 앞산을 넘어가며 외우던 시간들.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외우기 위해 만원 버스 안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손에 움켜쥐었던 영글지 않은 꿈들.


오늘따라 지나간 시절의 추억이 아름답게 다가와 삶의 터전에서 명멸한다.


고향에서 학교를 오고 가던 학창 시절이 새삼 그리움의 연민처럼 떠오른다. 가슴에 품었던 이상을 드높게 펼쳐 보이고자 꿈꾸었던 아련한 시간.


청춘 시절을 되돌릴 수 없다지만 꿈만은 항상 간직하고 살자던 약속은 내 곁을 떠난 지 오래다.


윤동주의 ‘서시’에 취해보고자 입으로 웅얼거리며 친구들과 밤길을 거닐고, 이육사의 ‘파초’를 외우기 위해 소와 함께 고향의 산골짜기를 누비던 시절이 풋풋하게 그립다.


국어 시험을 잘 보는 것보다 아름다운 시구에 반해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달달 외우며 진달래가 만발한 앞산을 헤매던 시절.


이제는 되돌아갈 수도 없고 돌이킬 수 없는 삶의 숲 속으로 사라졌다. 고향 집 앞의 텃논에서 넓은 토란잎에 방울방울 이슬을 머금고 반갑게 맞아주던 싱그러운 아침도.


아침에 일어나라던 아버지의 거칠고 굵은 목소리도. 저녁에 잠을 잘 자라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던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도.


삶의 물보라를 일으키며 가슴에 파도가 되어 밀려온다. 오늘도 어제와 다름없이 손에 가방을 들고 출근길에 나섰다.


아침에 힘겹게 직장에 도착해서 시간이란 굴레에 바쁘게 쫓기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하루 일을 마치고 퇴근길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면서 오늘 이룬 것이 무엇인가 하고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을 순간에 의지해서 무심하게 보내는 막막한 세월이다. 몸과 마음은 점점 문명과 나락이란 게으름에 빠져들고 유년 시절에 꾸었던 꿈은 점점 멀어져만 간다.


더불어 자신의 자화상마저 잃어버린 채 고독한 시간 속에 육신만 바쁘게 이리저리 몰아간다.


앞산에 떠오른 무지개를 바라보면 가슴이 쿵쾅쿵쾅 뛰던 시절의 감정은 사라지고 뽀얀 스모그 속에 핀 무지개를 바라보면 울렁임도 감정도 일지 않는다.


중학교에 입학해서 영어 선생님은 당연히 외국인일 것으로 생각했다. 영어를 통해 낯선 나라를 동경하고 다른 세상을 신비롭게 바라보던 시선들.


낭만이라는 것, 아름다움이라는 것, 삶이라는 것, 모두가 한순간의 짧은 꿈결처럼 지나갔고 사라져 갔다.


지금은 하늘의 신기루인 무지개를 바라보면 가슴이 뛰는 것이 아니라 저런 것도 하늘에 있었나 하는 무심한 마음뿐이다.


아침에 하루를 멋지게 살아보겠노라고 차를 운전하며 길을 나서면 굳건한 마음은 사라지고 거친 삶의 물살이 들어선다.


차의 운전대만 잡으면 입에서는 체에 거르지 않은 말들이 속절없이 튀어나오고, 가슴에는 훈훈한 바람보다 메마르고 황량한 바람을 채워가는 빈한한 날들이다.


건조한 콘크리트를 가슴에 안고 낭만과 서정적인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삶. 자식의 얼굴을 바라봐도 정과 사랑하는 마음보다 의무와 채무적인 관계로만 느껴지는 얇아진 가슴.


생은 감내하면 할수록 의무와 채무만 늘어가는 불공평한 세상인 것 같다.


푸른 초원을 달려가며 소낙비를 맞고 하늘의 무지개를 찾아 들녘을 향해 뛰어가던 꿈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고향을 뛰쳐나와 이해타산이 깔린 세상에서 버거운 삶을 누리지만, 누구도 삶을 제대로 항해하는 법을 가르쳐 준 적은 없다.


삶의 거리에서 방황하고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나이가 들고, 삶이란 배에 튼실한 돛대를 세우려 하니 어느새 도착지인 항구다.


인생을 아름답고 멋지게 살아보겠다던 다짐은 서서히 추억의 강물에 떠밀려 낮은 곳을 향해 휩쓸려만 간다.


나이가 들면서 삶이 나아지지는 않고 자꾸만 과거로 되돌아만 간다. 왜 삶은 지나간 시간에 그토록 연연하고 그리워하는 것일까.


삶이란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면 채우면서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닌가. 사람의 마음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깨진 항아리와 같다.


삶은 경험과 연륜이 아무리 쌓여도 채워지지 않는 그릇이란 생각이 든다.


현재를 살아가면서 동심의 무지개만 찾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는 없지만, 마음만이라도 내면의 숲을 향해 떠나는 삶이 그립기만 하다.


삶은 점점 거칠게 다가오고 그런 거친 세상에서 생명이란 뿌리를 곧게 내리고 살아가는 것도 벅찬 세월이다.


오늘따라 유년 시절에 뛰어놀던 뒷동산에 올라가고 싶다. 그곳에서 잃어버린 동심의 꿈도 찾고 연필로 하얀 캔버스에 영글지 않은 무지개 꿈이나 마음껏 그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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