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농사를 짓는 농가에서 태어났다. 농가는 겨울을 제외하고 계절별로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런 환경에서 부모님은 팔 남매나 되는 자식에게 골고루 사랑을 베풀기에 한계가 있지 않았을까.
가족에 대한 사랑은 의사소통이 수평이나 수직으로 가능해야 생겨난다. 그렇다고 어머니에게 “얘야!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 자식은 바로 너란다.”라는 달콤한 말을 듣고 싶지는 않다.
아마도 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시면 나는 닭살이 돋아나 귀를 막고 못 들은 척할 것이다. 어머니와 그럭저럭 정을 쌓고 교감하며 살아온 세월도 지천명을 넘어 중년의 고개로 넘어간다.
지금은 어머니가 무슨 말씀이나 눈치를 주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금방 알아챈다.
어머니와 나 사이에 놓인 세월의 다리가 간격과 틈새를 많이 좁혀 놓았다. 한가위를 맞아 고향에 내려가 아이들과 송편을 빚고 차례를 지냈다.
이튿날 차례를 마치고 아버지 산소에 올라가 성묘를 드리고 시골집에 내려와 어머니께 내가 사는 곳으로 올라간다고 말씀드리자 어머니가 잠시만 기다리란다.
잠시 후 어머니는 안마당 뜰에 배추, 송편, 전, 오이, 호박, 쌀 등 손수 농사를 짓고 만든 것을 가져가라며 내놓으셨다. 어머니의 사랑이 흰 쌀의 투명한 빛깔처럼 맑고 곱게 빛난다.
어머니가 주신 사랑과 정성을 승용차에 싣고 나자 가슴 밑바닥에는 사랑의 샘물이 가득 차오른다. 나는 이런 은은한 사랑이 좋다. 직접적인 말보다 간접적으로 전해오는 은은한 사랑이 사람을 더욱 그립게 한다.
비록 속세의 값으로 따지면 그리 비싸지 않지만, 어머니가 베푼 사랑은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물건이다. 세월의 나이테가 더해갈수록 먼발치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유년기에는 어머니의 관심과 보살핌을 더욱 그리워했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은은한 사랑에 더 정이 간다. 나도 어느덧 부모님이 가르쳐 준 사랑의 방정식을 쫓아가며 살아간다.
가끔 아내가 자기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표현해 보라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만다. 내가 배운 사랑은 말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남에게 베풀고 얻는 마음의 충만감이다. 말로 건네는 사랑은 그저 짧은 감정의 스침일 뿐이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고향을 찾아가면 당신들이 먹어야 할 식량을 모두 자식 앞에 내놓으시고 가져가라고 하셨다. 그때는 부모님의 그런 사랑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부모님의 먹을거리를 가져가면 당신들은 무엇을 먹고 살아갈 것이냐고 반문하면 아버지는 그저 “허허허!” 웃으시며 “우린 괜찮다 걱정하지 마라.”라는 말씀뿐이었다.
나는 세월이 한참 지난 뒤에야 내가 가진 것을 베푸는 것이 참된 사랑이란 것을 알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이제는 어머니가 땀을 흘려 지으신 농산물을 바리바리 내어놓으신다.
나는 그것을 받아 들고 정에 굶주린 사람처럼 눈물을 쏟는다. 뒤늦게 철이 들어가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서야 ‘사랑이란 이런 것이다.’ 하는 삶의 철학을 깨닫는다.
어머니가 시골 담벼락에 붙어 있는 호박 한 개를 따서 내어놓으면 호박 같은 눈물이 나고, 마당에서 태양 볕에 말라가는 고추를 담아 주면 맵고 시큼한 눈물이 솟는다.
그리고 텃밭에 심어진 배추 몇 포기를 뽑아주시면 한 아름의 눈물을 뿌린다. 사랑에 대한 표현은 나이가 들수록 메말라가지만, 그 빈자리에는 감정이 들어서고 눈물이 표현을 대신한다.
내게 사랑의 메신저를 전해주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면 나는 무엇에 의지해서 사랑이란 은은한 감정을 맛볼 수 있을까. 부모님이 세상에 보이지 않으면 나는 회상이나 추억을 통해서나 옛사랑을 그리워해야 할 것 같다.
어머니가 주신 소중한 사랑과 정성을 집에 도착해서 옮기려니 가슴을 툭 치고 올라오는 뭉클함에 눈물이 다시 주르륵 쏟아진다.
나이를 먹으면 어쩔 수가 없나 보다. 큰 사랑에 눈물을 뿌려야 하는데 작고 여린 것에 눈물로 답을 하니 세월은 속일 수가 없는 것 같다.
뒤늦게 어머니에게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아서일까. 어머니와 헤어진 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다시 보고 싶다. 내가 느끼는 이런 마음이 사랑인가 아니면 아내의 말마따나 마마보이인가.
사랑이면 어떻고 마마보이면 어떠하랴. 내 마음에는 어머니가 주신 정성에 눈물까지 보태져 사랑이란 곡식으로 토실토실 영글어 버렸으니 살만한 세상이 아니던가.
어머니가 베푼 사랑만큼 나도 자식에게 사랑을 베풀고 전해주어야 하는 것이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사랑의 방정식이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부디 지금처럼 강건하게 오래오래 사시면서 자식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기를 그저 간절하고 간절하게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