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때가 되어 죽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연이다. 그 길은 누구나 가야 하지만 어떤 식으로 맞이해서 갈 것인지는 살아생전에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지금까지 장례식은 사후에 집이나 장례식장에서 조문을 받으며 절차를 거쳐 매장하거나 화장해서 유골을 묻거나 뿌리는 방식으로 진행해 왔다.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사람에게 영혼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사람으로 태어나 현재까지 따라다닌 물음표이지만 아직도 그에 대한 정답을 모른다.
땅에 기대어 사는 사람 중에 죽음을 초월해서 사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그리고 죽음 너머에는 어떤 세상이 기다리는 것일까. 삶보다 죽음과 관련한 것에는 언제나 답은 없고 그저 의문투성이뿐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배우 박정자의 사전 장례식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사전 장례식이란 의미가 새롭고 어떤 장례식일까 하는 호기심과 궁금증에 한번 읽어보았다.
사전 장례식에서 박정자 씨는 빨간 구두를 신고 춤을 추며 앞서 가고 그 뒤를 초청받은 지인 150명이 만장을 펄럭이며 따라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만장에는 박정자 씨가 출연한 연극이나 영화나 드라마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만물이 초록으로 바뀌는 봄날에 노배우가 웃으며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전날 전야제에서 참석자들은 부의 대신 박정자 씨와 관련한 '오래된 이야기'나 '가벼운 농담'을 들고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틀간 장례식을 마친 박정자 씨는 “나의 삶을 배웅하는 사람들을 눈으로 보게 돼 행복하다”, "헤어지는 장면도 꼭 축제처럼 해보고 싶었는데, 웃으면서 보내주고 떠날 수 있어 너무 좋다”라고 말했다.
사전 장례식은 장례식이 아니라 축제처럼 참석한 사람들이 즐겁게 웃으면서 한 사람에 대한 인생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서 인간적인 따뜻함과 포근함이 느껴졌다.
박정자 씨의 사전 장례식은 지금까지 내가 보아왔던 장례식과는 정 반대다. 장례식이 엄숙하고 경건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존경하면서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는 과정이 특별했다.
요즈음 건강백세 시대를 맞아 웰다잉이 화두로 등장했다. 이제는 잘 살고 잘 먹고 잘 죽어야 하는 시대다. 글쎄다. 잘 죽어야 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가슴에 와닿지를 않는다.
웰다잉은 단순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넘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가치관과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완화하여 가족과 정리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이다.
결국 웰다잉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마지막을 풍요롭게 마무리하는 것이다. 죽음도 어쩔 수 없이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산 자가 자기 죽음의 존엄을 지키며 마무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박정자 씨의 사전 장례식이 향후 장례 문화를 바꾸는 하나의 사례가 될 것 같다. 사후가 아닌 사전에 자기가 세상을 어떻게 살다가 떠나겠다고 하는 것은 죽음을 소극적이 아닌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다.
앞으로 박정자 씨의 사전 장례식을 하나의 모델로 삼아 다양한 방식으로 개선해서 사람들이 자기에게 맞는 사전 장례식을 선택해서 행사를 치르게 하는 것도 장례 문화를 바꾸는 디딤돌이 될 것 같다.
장례식도 엄숙한 의식이 아닌 축제의 장처럼 진행하는 방식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죽은 사람이 아닌 죽을 사람에 대한 삶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나누는 것은 생각만 해도 흐뭇하고 그 사람을 존중해 주는 것이다.
박정자 씨의 사전 장례식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나는 어떤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해야 할까 하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직은 어떻게 하겠다는 방식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사전 장례식도 한 번쯤 고려해 보겠다.
앞으로 장례식은 죽은 자의 자손이 어쩔 수 없이 치르는 행사가 아닌 산 자가 미리 준비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도록 축제처럼 진행하는 시대가 도래할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고 생각해 보는 유월의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