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말이 터지는 순간은 갑자기 찾아오는 것 같다. 아이가 하지 않던 말을 갑자기 하면 놀랍고 신기하고 어디서 누구한테 배웠는지 하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손주가 이십삼 개월이 되어가는데 갑자기 말문이 터졌다. 그간 단어는 하나씩 구사하다가 단어와 단어를 연결 짓고 하나의 문장을 구사해서 말을 한다.
손주를 안고 밖에 나가면서 "어디 가요.", "여기가 어디예요.", "아빠 어디 갔어요." 등등을 물어본다. 그러면 손주가 "공원에 가요.", "얘기 집", "아빠 회사 갔어요", "바퀴가 굴러가요", "할머니 좋아요." 등등 가르쳐 주지 않은 말을 문장으로 구사하면 놀라움과 함께 손주를 칭찬해 준다.
아이가 자라는 시기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언어가 발달하는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말문이 트이는 게 신비할 뿐이다. 아이는 자기 주변 환경과 부모 등이 나누는 대화를 살펴가며 언어를 습득하는 것 같다.
손주가 말을 하니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해서 편해졌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표현하니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손주로 인해 저절로 가려진다.
지금까지 손주의 입과 얼굴 표정을 바라보고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 눈치껏 살펴가며 말을 하거나 행동했는데 이제는 말로 표현하니 손주와 노는 것도 한결 편해졌다.
아이의 언어 습득 능력은 무서울 만큼 빠르게 성장한다. 이제는 아이 옆에서 말도 조심해야 하고 행동도 조심해야 한다. 아이는 부모가 나누는 대화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거나 체득한다.
내가 태어났을 때 몇 개월부터 말을 했을까. 손주가 말을 하기 시작하니 내 어릴 적 일들이 궁금하다. 내 딸도 손주처럼 말을 빨리 배운 것 같은데 나에 대한 것만 잘 모르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손주가 말이 터지자 아이에서 어린이로 성장했다는 기분이 든다. 지금까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로 생각하고 행동했는데 말이 터지니 어린이로 대우해 말도 조심 행동도 주의해야겠다.
손주가 자라는 과정을 나이 들어 지켜보게 된 것도 축복이란 생각이 된다. 나날이 성장하는 모습을 하나하나 옆에서 바라보며 사는 것도 아무에게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내게 소중한 기회를 주었으니 손주와 오손도손 이런저런 사연을 엮어 만들어 가고 싶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손주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자 길이다.
손주는 말문이 터지면서 거절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해졌다. 거절할 때는 자신이 "아니야"라고 말하고 시크하게 돌아서버리고, 싫어하는 것을 하라고 하면 큰 소리로 울어버린다.
그리고 말문이 터지면서 변한 것은 엄마의 껌딱지가 된 점이다. 그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책을 읽어주면 무릎에 앉아 같이 읽곤 했는데 이제는 엄마한테만 책을 갖다주고 읽어달라고 한다.
할아버지가 책을 읽어주겠다고 하면 "아니야."를 외치며 엄마에게 달려간다. 아이가 엄마를 찾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행동에 변화가 오니 왜 그렇게 되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인다.
지금은 손주가 낮잠 자는 시간이다. 더운 날에 어깨띠를 두르고 밖에 나가 이리저리 돌아다니자 잠이 들었다. 잠든 아이를 데리고 들어와 재워 놓고 나는 커피 한잔 마시며 무언가를 끄적이는 중이다.
내 자식을 키울 때 아내를 제대로 도와주지 못한 마음이 손주에게로 향하는 것 같다. 그때는 너무 몰랐고 철이 들지 않았다. 아내가 이 글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몰라도 너무 몰랐고 자식보다 부모 밖에 모르던 철부지였다고 흉이나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손주가 말문이 트여서 보상받는 기분이 든다. 아침에 아내가 손주와 통화를 하는데 손주가 "할머니 좋아해"라고 말하자 아내는 기쁨과 함께 함박웃음을 지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쁘다. 손주가 내 대신 할머니에게 "할머니 좋아해"란 말을 해주니 나도 좋고 아내도 기뻐하니 사는 맛이 난다.
손주가 부지런히 자라서 집안에 행복과 웃음을 퍼트리는 전도사로 자라기를 기도하며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