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는 동안 얼마나 많은 말을 하며 살아갈까.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말에는 선한 것과 나쁜 것이 담겨 있다. 선한 말은 되로 주고 말로 받고, 나쁜 말은 화가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사람은 피부색이 다르다고 말을 함부로 하면 뒷일을 책임져야 한다.
김포공항에서 입국심사를 할 때다. 내 앞에 근무하는 동료가 얼굴이 검은 외국인에게 겉으로는 웃는 척 표정을 지으며 “야! 인마, 이리 와, 야! 너 이쪽으로 와”라고 손짓으로 불러가며 심사를 해주고 내보냈다. 앞에서 동료를 지켜보던 나는 자리가 좌불안석이 되어 불안 불안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흑인 한 명이 입국심사를 마치고 “야! 너 왜 나한테 욕하느냐.”며 따졌다. 한국말을 하던 흑인은 한국에 주둔하는 주한미군이었다. 동료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쩔 줄 몰라하며 당황했다.
흑인이 공항을 나간 후 세 시간쯤 지나자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동료에게 당장 사무실로 올라오라는 것이다. 흑인은 심사를 받고 주미대사관에 전화로 공항에 들어올 때 입국심사관이 욕을 하는 등 불친절하다며 민원을 넣고 주미대사관은 외무부로 외무부에서는 사무실로 연락이 왔다. 사무실로 호출받은 직원은 ‘경위서’를 쓰고 경고를 받았다.
동료는 사람의 피부색을 보고 교육을 받지 못해 한국어를 하지 못할 거란 섣부른 판단이 화를 부른 것이다. 겉과 속이 다른 얼굴은 언제가 진실이 드러난다. 얼굴에 웃는 표정을 지었다면 좋은 말이 따라야 하는데 사람을 무시하는 듯한 반말과 욕이 ‘경위서’라는 사달을 가져왔다.
공직에서 전화로 민원인과 애매한 말투로 대화하면 싸움을 부르고 또 다른 민원을 낳는다.
청사에 근무할 때다. 건축물대장 시스템을 구축해서 건축인허가를 시스템을 통해 처리하는 문제로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언젠가 하루는 같이 근무하는 동료가 전화를 받는데 영 불편했다. 동료는 말끝마다 “걸랑요”를 붙여가며 전화를 받았다. "걸랑요'는 표준어이지만 서울 경기에서 사용하는 사투리다. 민원인은 말끝마다 “걸랑요”를 붙이는 동료에게 지금 무슨 대화를 나누자는 것인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동료와 전화를 하던 민원인은 전화가 끝난 후 민원실에 전화를 걸어 동료를 문책하라고 민원을 제기했다. 민원실은 동료를 불러 주의를 주고 인재개발원에 가서 일주인간 친절교육을 받고 오도록 조치했다.
동료는 민원인과 전화 응대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이다. 전화에서 “걸랑요”는 일반적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 직장 내라면 조용히 넘어가겠지만 대외적으로 말을 해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했다.
가까운 친척일수록 말은 조심해야 하고 감정이 들어가면 누구나 저항한다.
장모님 상(喪)을 마치고 충주의 한 식당에서 처남들과 외삼촌이 모여 식사할 때다. 장모님은 시집오기 전 농사일로 갖은 고생을 했지만 유산을 제대로 물려받지 못한 서운한 감정을 처남이 외삼촌에게 터트렸다. 나는 대화를 듣는 순간 속으로 “한판 크게 붙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외삼촌이 처남들에게 “이놈들 봐라, 그간 잘 봐주었더니 대드네, 어디 두고 보자.”라는 험한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처남들은 외삼촌과 헤어지고 근 십여 년을 소원하게 지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구석으로 몰리면 자신을 대변하고 핑계를 댄다. 사람은 본래 타인의 입장과 관점에서 남을 배려하는 말에 서툴다.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다. 사람은 불편한 말을 들거나 감정이 실린 말을 들으면 누구나 화부터 내고 성질을 부린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라는 속담처럼 사람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말고 말조심해야 한다. 말에 가시가 박히거나 감정이 담기면 누구든 저항한다. 대화의 상대방이 누구든 피부색도 권력도 지위도 가리지 말고 진심을 담아 대화해야 한다. 평등을 넘어 불평등이나 무시나 거들먹거리는 말을 하는 순간 원치 않는 씨앗을 남기고 성처만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