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물러나고 동료들의 경조사는 소식지로 전해받는다. 며칠 전에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동료의 본인상이란 소식을 듣고 종일토록 안절부절 마음을 졸이며 보냈다.
소식지에는 직장 선후배의 결혼이나 부음 소식을 전해받는다. 본인상을 당한 사람은 나와 연배가 비슷해서 농담도 주고받고 안부도 물으면서 지내던 시절이 엊그제 같다.
육십 대 중반에 죽음이라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 같이 근무했던 다른 동료에게 전화로 물어보았다. 동료의 말인즉 공사 감리를 맡았다 사건에 휘말려 교도소에 구속되었다고 한다.
현재 대법원 최종 판결을 받고 교도소에서 복역 중 자의로 목숨을 끊었단다. 사고의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부고 소식을 전해 듣고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른다.
그날은 양재역에서 직장의 옛 동료를 만나 저녁을 먹던 중이었다. 식사 도중에 동료는 정권이 바뀌고 지난 정권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하여 국정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교도소에 구속된 것도 모자라 국정조사를 하게 되면 자신의 신분과 얼굴이 만 천하에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이 들었다.
대전에서 직장 다니던 시절 종종 식사도 나누던 사이다. 부인과 아들 둘에 부인과는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얇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언젠가 죽게 되지만 죽을 때까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사람이다. 교도소의 차가운 방에서 자살을 시도한 사람의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두렵고 무섭고 가슴 아프고 안타깝다. 돌아가신 분의 부인과 아들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남편이 아버지가 교도소에 간 것도 억울한데 자살까지 했으니 부인과 아들은 생각조차 하기 싫을 것이다.
가장과 아버지의 부재도 참기 어려운데 교도소에서 자살했으니 남은 가족에게 평생 업으로 따라다닐 것 같다. 평소 만나서 말할 때 곧잘 웃던 사람인데 왜 극단의 선택을 한 것일까.
교도소 형량도 끝나가는데 왜 강제로 죽음을 선택한 것인지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물어볼 데도 없다. 우리나라는 죽은 자만이 억울한 사회가 아니던가.
국정조사로 과거의 일을 들추어 책임질 자를 밝혀낼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국정조사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경찰 수사로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을 다시 조사하는 것은 그 사람을 몇 번 죽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허허벌판에 남겨진 가족들은 얼마나 억울할까. 남편이 아버지가 사고로 인해 감옥에 간 것도 모자라 자살할 정도면 우리 사회를 얼마나 원망하겠는가. 사람의 목숨은 한번 잃으면 그만이다.
소중한 목숨을 끊어버릴 정도로 마음을 먹은 사람이라면 자신에 대한 자존심이나 자격지심을 끝까지 지키려는 강인하고 올곧은 사람이다.
사람의 목숨을 소중하게 다루는 것이 선진국이다. 그런데 말만 선진국이고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것 같다. 한 사건에 연루된 사람을 주저 없이 깎아내리고 잘못으로 몰아가는 것이 우리의 민낯이다.
사회적 사건에 가해자가 되면 그간 알고 지내던 사이도 안면몰수하고 각종 비리와 잘못을 밝혀 내기 위해 혈안이 된다. 문제는 온갖 비리로 사람을 몰아가서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고 교도소에 수감되면 감옥에 당연히 가야 할 사람으로 규정해서 법적으로 매장시킨다.
그리고 교도소에서 자살하면 합당한 책임도 지지 않고 죽었다고 다시 언론으로 매장시키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되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도록 만들고 조장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헌법에 인간은 존엄하다는 문구는 단어로만 존재할뿐 우리 사회 어디에서도 사람을 인격적으로 존엄하게 취급하거나 다루는 곳은 없는 듯하다.
목숨을 잃은 직장 동료도 비록 죄를 지었다고는 하나 인간의 존엄은 지켜주어야 한다. 그러나 사건 발생부터 구속까지 심지어 죽어서까지도 인권과 존엄은 철저히 무시당하고 배제되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듯이 앞으로 살아갈 남은 가족이 안쓰럽고 안타까울 뿐이다. 가장을 잃은 가족은 온갖 불편한 시선과 불안감을 안고 험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그간 기둥 같은 남편이자 아버지를 의지하고 살아왔는데 기둥이 무너져 사라졌으니 무엇에 의지해서 살아가야 할까 막막하고 답답할 것이다.
부디 남은 가족들은 용기를 내어 서로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남편이 아버지가 남긴 삶의 유산을 지키면서 꿋꿋하게 살아가기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