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멘타인

by 이상역

클레멘타인은 여성의 이름이다. 온후하고 관용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름의 유래야 어떠하든 클레멘타인 하면 어린 시절에 즐겨 부르던 동요가 먼저 생각난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 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딜 갔느냐(박태원 번안곡)


원래 이 노래는 1840년대 미국 민요로 서부 개척시대 골드러시를 배경으로 이주해 온 광부가 홀로 딸을 키우며 살다가 딸을 잃은 슬픔을 달래고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다.


동굴에서 협곡에서 금광 찾아 땅을 파며

광부는 딸 클레멘타인과 살았네

오 내 사랑 오 내 사랑 오 내 사랑 클레멘타인

네가 세상을 떠나 멀리 갔으니 너무나 슬프구나 (원곡 번역 가사)


이 노래는 1919년에 우리나라에 전해졌고 음악가 박태원이 번안했다. 한 때 클레멘타인은 국민 애창곡으로 소풍을 가거나 회식할 때 즐겨 불렀다.


이 노래를 부르면 마음이 애잔하고 쓸쓸해진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광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세상에서 가장 귀한 딸을 잃었으니 컴컴한 금광에 들어가 곡괭이질 하면서 슬픔을 달래기 위해 부르지 않았을까.


클레멘타인은 원곡과 번안곡의 가사를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어떤 곡이 좋은지는 나라별로 삶의 환경과 정서가 어떠하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우리나라 번안곡은 슬픔보다 약간 낭만이 들어간 듯한 생각이 든다.


오늘은 승상산에 올라가며 클레멘타인 노래를 불러 보았다. 이 노래는 반복해서 불러도 슬픈 감정보다 바닷가에서 철 모르는 딸과 고기 잡는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삶의 풍경으로만 다가온다.


그래서 국민 애창가요가 된 것일까. 반주를 들어보면 슬프지가 않다. 클레멘타인 동요를 부르면 고향과 관련한 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고향 무정', '나의 살던 고향', '머나먼 고향', 내 고향 충청도 등등.


승상산을 올라갈 때는 클레멘타인 노래를 부르다 내려올 때는 '고향 무정'을 부르며 내려왔다. 노래도 사람의 감정을 파고드는 것 같다. 노래를 부르면 주변의 것에서 벗어나 오롯이 노랫가락에 실린 가사에 마음이 집중된다.


그렇게 노래에 빠져 부르면 어느새 등산이 끝나고 인도를 걸어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노래는 첫째도 감정이요 둘째도 감정이다. 노랫가락에 감정이 집중되면 마음이 서서히 가사에 녹아든다.


사실 클레멘타인 노래는 먼 과거의 시간과 기억 속에서 머물던 가락이다. 그런 노래가 갑자기 왜 튀어나왔을까. 아마도 살아가는 날들이 애잔하고 쓸쓸해서 감정을 툭툭 건드린 것은 아닐까.


삶이 청년기와 중년기를 거쳐 장년기에 이르니 과거에 겪었던 청년기와 중년기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과거의 추억은 잊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가면서 하나하나 돋을무늬처럼 솟아나는 특성이 있는가 보다.


그렇다고 과거의 시간을 남들처럼 잘 보냈느냐 하고 묻는다면 나는 고개를 흔들며 아니다라고 대답하겠다. 그런 과거가 왜 그립고 애잔하게 떠오르는지는 나 자신도 모르고 이해할 수 없다.


요즘 시절이 평화롭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요동치며 요란하게 흘러만 간다. 사람살이가 나아지면 그와 더불어 사건이나 사고도 덜 나야 하는데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사람들의 가슴에 상처를 건드려서 문제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오히려 사람의 생명과 목숨을 가벼이 하는 것 같다. 툭하면 믿을 수 없는 사고가 일어나고 어하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곳에서 허망한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런 시대의 아픔과 마음을 댈래 주는 것은 노래 밖에 없다. 그런 마음을 달래려고 오늘은 아침부터 어린 시절에 즐겨 부르던 클레멘타인이 생각났고 종일토록 노래를 부르게 했나 보다.


오늘도 삶이란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그 짐을 덜어드리고 싶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 모르는 딸 있네…."라는 동요라도 부르며 힘내기를.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단월의 여름풍경(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