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지 않은 길(최종)

by 이상역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선택에 따라 갈 방향이 정해진다. 현재의 나는 선택에 의해 나타난 현현이고, 선택하지 않은 길은 과거로 사라졌다. 내 삶에서 선택하지 않은 길은 고향의 언덕에 새겨져 있다.


중학교 진학이란 배움의 길과 농사짓는 현실의 길에서 어떤 선택이 나은 것이었을까.


초등 졸업이 다가올 무렵 선생님은 중학교 진학 상담을 해야 하니 부모님을 모셔오라고 했다. 아버지께 “선생님이 내일 오시래요?”라고 말씀을 드렸으나 아버지는 학교에 오시지 않았다. 농가에서 자식은 농사일을 더는 존재라서 그랬던 것일까.


결국 선생님이 아버지를 만나러 시골집을 방문하셨다. 그날 아버지는 벼를 탈곡하고 광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셨다. 선생님은 아버지에게 “쟤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으셨다. 선생님의 거듭된 재촉에 아버지는 “그럼, 선생님 마음대로 하셔유?”라는 충청도 말투로 진학을 허락했다.


나는 중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종종 초등 졸업하면 농사나 짓고 살겠다고 했다. 그때 중학교에 가지 않고 농사를 짓고 살았다면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부모님과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농부로 살아가고 있지 않았을까.


대학이란 학문의 길과 읍사무소라는 현실의 길에서 어떤 선택이 나은 것이었을까.


고교 졸업 후 재수하다 지방직 공무원에 합격했다. 공무원 교육을 받고 고향의 읍사무소에 발령을 받았다. 고향에서 직장 생활하며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다 그해 가을 친구와 대학 예비고사 원서를 제출하고 시험을 보았다. 예비고사 점수는 대학 진학이 가능한 점수였다.


대학 진학을 위해 읍사무소를 그만두겠노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반대했다. 대학에 가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 어려운데 굳이 힘든 길을 선택해서 가느냐는 것이다. 주간에 읍사무소에 다니고 야간에 대학에 다니는 길은 없는지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어렵게 붙은 시험이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길을 가려니 불확실과 불안함이 따랐다. 오랜 고민 끝에 대학에 가고 싶다고 부모님을 설득해서 사표 냈다. 읍사무소에 사표 내지 않고 근무했다면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고향의 읍사무소나 군청에 근무하면서 여유롭게 살아가고 있지 않았을까.


출입국 공무원의 길과 다시 시험을 보고 공무원이 되는 길에서 어떤 선택이 나은 것이었을까.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어느 날 어머니가 찾아오셨다. 시험이 서너 달 밖에 남지 않았고 대학에 한 번도 찾아온 적 없었다. 말씀인즉 아버지가 마을 사람과 언쟁하다 무릎을 다쳤단다. 어머니는 내게 이번 시험을 포기하고 농사를 짓자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께 시험이 코앞인데 팔 남매나 되는 자식 중에 나밖에 없느냐며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일할 사람이 너밖에 없다."라며 강하게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재활 치료와 어머님과 농사를 지으며 가을걷이가 끝날 때쯤 공부를 시작해서 이듬해 봄 출입국관리직에 합격했다. 첫 발령지인 김포공항에서 인생의 동반자인 아내까지 만나 결혼했다. 그런데 결혼 후 이듬해 제주공항으로 인사발령이 났다. 신혼이고 아내와 맞벌이를 해서 제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선택을 해야 했다. 장인은 출입국에 사표 내는 것을 반대했다. 제주 가기 전 표를 건네며 그곳에 근무하다 일 년 후 육지로 나오라고 하셨다.


장인어른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상의해서 제주공항에 사표 내고 공무원 시험을 다시 보기로 했다. 처갓집 눈치를 살펴 가며 일 년간 공부한 끝에 총무처에서 실시하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첫 발령인 국방부에서 몇 년 근무하다 국토교통부로 자리를 옮겨 삼십여 년 근무하다 몇 해 전 퇴직했다.


출입국에서 제주로 발령 난 것에 항의도 하고 총무처에 인사고충도 제기했다. 그러나 개인의 사정을 고려한 인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사표를 냈다. 그때 제주공항에 사표 내지 않고 근무했다면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전국의 공항과 항만을 돌아다니며 출입국 공무원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았을까


인생은 연극이라 했던가.


삶이 대본처럼 흘러간다면 고민이나 갈등이 따르지 않는다. 어떤 선택이나 고민과 갈등이 따르고 한번 선택하면 되돌릴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다. 지금도 내 삶에서 선택하지 않은 길이 자기를 선택해 달라며 고향의 언덕 위에서 나를 원망하듯 바라보는 것만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문우와 점심 한 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