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암 가는 길(수정)

by 이상역

백련암이 폐사지로 변한 지는 오래다. 지금도 깨진 기와나 절구가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폐사지에는 무심한 바람만이 불어오고 불어 간다. 그나마 황량한 폐사지를 찾아오는 것은 산나물을 뜯어 생계를 유지하는 나그네와 텃새와 산짐승과 바람에 실려 가는 구름뿐이다.

충북 진천 멱수 마을의 깊은 산골에는 폐사지로 변한 유명한 절(백련암)터가 남아 현존한다.


백련암은 전국에서 찾아오는 스님의 밥을 해주기 위해 미역을 씻었는데 떨어진 미역 줄기가 냇가에 지천을 이루었다. 폐사지는 과거에 화려했던 산사의 흔적을 자랑하듯이 성벽처럼 웅장하게 세워진 석조 벽과 주인을 잃고 이리저리 뒹구는 깨진 기와나 절구 등 절터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백련암에 걸려 있던 ‘영산회괘불탱’은 진천 초평 두타산 영수사에 보관되어 있다. 이 보물은 초대형 걸개용 괘불 탱화로 석가탄신일에만 공개하는데 백련암이 폐사지가 되고 괘불만 영수사로 옮겼다.


이 탱화는 석가모니가 제자를 모아 놓고 말씀하는 모습을 그린 ‘영산회상도’로 조선 효종 4년(1653) 명옥, 소읍, 현욱, 법능 등 4명의 승려 화가가 모시에 그린 것이다. 밝은 채색과 부드러운 필치, 매끄럽고 인물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17세기 ‘영산회상도’ 가치가 인정되어 문화재청에서 보물로 지정했다.


유홍준 씨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마음이 울적하고 힘들 때나 상념에 잠기고 싶은 사람에게 폐사지를 찾아갈 것을 권한다.


내게 폐사지는 산사의 내력이나 사연보다 배고픈 입에 풀칠하는 농토였다. 스님은 불법을 공부하러 산사를 찾아가지만, 농부는 사시사철 농작물을 심고 거두기 위해 절터를 찾아간다.


멱수 마을에서 서쪽의 대감 산소를 바라보면 느티나무가 선 언덕이 보인다. 그곳에서 대감 산소를 우측에 끼고 돌아가면 절 안의 넓은 뜰이 펼쳐지고 폐사지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다.


대감 산소를 지나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고목의 고욤나무가 나타나고 산길 끝자락에 다다른다. 그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백련암을 떠받치던 석조 벽과 감나무 몇 그루가 보인다.


백련암 가는 길은 고목의 아름드리가 안내하는 숲이 우거진 길이 아니고 보릿고개를 해결하러 가는 길이다. 폐사지에 올라서면 옛 시절의 영광은 사라지고 저 멀리로 문안산과 봉화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뒤로는 길상산이 계절의 바람을 막아주고 앞에는 무변광대한 산자락이 펼쳐진다.


조선 후기 성리학자인 채지홍에 의하면 충북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 상목마을에서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시루봉이란 산에 이른다. 이 산의 동쪽에 버려진 밭을 따라 5부 능선까지 올라가면 높이 6∼7m, 길이 약 60m의 성벽과 같은 높고 긴 석축이 보인다.


그 석축은 옛 시절 영광을 자랑하듯 높고 정교하게 깎아 쌓은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석축 위로는 넓은 평지가 펼쳐지는데 그곳이 백련암 폐사지다.


폐사지에는 고향 마을 전설과 함께 흔적만 남아 있을 뿐 사연이나 전설을 전해 들은 것은 별로 없고 이곳저곳에 조각으로 기록된 절 이름과 간단한 사연만 전해온다.


상산지에 의하면 백련암은 진천의 서쪽 20리 지점에 자리했고, 비록 10여 칸에 불과한 작은 암자이지만 ‘삼한고찰’ 또는 ‘나대고찰’이라 하여 역사가 오래된 사찰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폐사지는 경작지로 이용해서 뚜렷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곳곳에 건물의 단으로 보이는 석축이 보이는데, 이들 석단은 절터 전체로 보아 크게 2∼3층으로 나누어졌고 드문드문 끊어져 마치 돌무지처럼 보인다.


석단 주위에 주춧돌로 보이는 석재가 흩어져 있고, 이들 중 한쪽 측면에 ‘한산주’라고 새긴 석재는 사람의 이름일 것으로 추정되고, 절터 아래 밭부터 절터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서 기와 조각이 채집되었다.


특히 1970년대 후반 조사에서 금당터로 추정되는 나한상으로 보이는 소조불상의 파편과 ‘가청’이 조각된 기와조각이 발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내가 백련암 폐사지를 찾아가는 것은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걸어간 길을 따라가려고 가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농사짓는 가업을 내게 물려주지 않았다. 폐사지 주변에는 멱수 마을에서 가장 넓은 밭이 산자락에 펼쳐져 있다.


마을에 사는 사람은 절 안의 밭을 이용하지 않고는 먹고 살아갈 수 없다. 폐사지 사연이 어찌 되었든 고향에서 태어나 온갖 농사일을 하며 살았다.


폐사지 아래 천여 평에 이르는 밭에는 아버지가 매년 담배를 심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절 안에서 담배를 심고 순을 따고 제초제도 뿌리고 담뱃잎을 따곤 했다.


고향에 들어서면 폐사지는 보이지 않는다. 대감 산소가 자리한 언덕을 돌아서야 백련암이 자리했던 웅장한 석조 벽과 폐사지가 시야로 들어온다.


지금은 몇 해 전 산사태로 폐사지로 올라가는 작은 산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산길이 사라지면서 폐사지를 일구고 땀을 흘리며 농사짓던 농부들도 다른 세상으로 건너갔다.


백련암은 마을 사람 머릿속에 남아 전해질뿐 길상산을 넘어오고 넘어가는 바람에 실려 잊은 지 오래다.


폐사지로 변한 산사로 가는 길은 산을 넘어가는 구름만 알고 있을 뿐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런 길이 있는 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잊지 않고 기억해 주는 것이 고마울 뿐이다.


내가 백련암을 찾아가는 것은 폐사지의 사연이나 연혁보다 배고픈 보릿고개를 어떻게 해결하고 지금까지 삶을 살아왔는가에 대한 고달픈 사연과 곡절이 궁금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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