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왔네

by 이상역

여름의 더위가 물러날 것 같지 않더니 계절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어느새 밤에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이 서늘함을 넘어 약간 쌀쌀한 느낌이 들 정도다.


계절은 오고 가는 것이 분명하다. 사람도 계절처럼 오고 감이 분명해야 한다. 뒤끝을 남기는 사람치고 잘 되고 잘 사는 사람 없듯이 때가 되면 깨끗하게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


엊그제 손주를 보러 딸네 집에 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손주가 반갑다고 인사한다. 손주에게 바짝 다가가 얼굴을 대면하자 손주가 갑자기 "가을이 왔네"라는 말을 건넨다.


처음에는 손주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손주에게 "방금 뭐라고 했어요?"라고 말하자 손주가 다시 "가을이 왔네"라고 한다. 손주의 말을 듣고 한참을 웃었다.


두 돌이 된 아이가 첫인사로 "가을이 왔네"라고 인사를 건네니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서 웃기만 했다. 누군가 말하는 것을 엿듣고 내게 말을 건네니 귀엽기만 하다.


손주가 벌써 자기 생각인지 부모의 말을 듣고 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잠시 생각하게 하는 말을 한다. 부모나 할머니나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말들 가운데 생각나는 대로 표현하는 것 같다.


손주에게 "가을이 왔네"라는 말을 들으니 정말로 계절이 가을로 변한 느낌이 든다. 그런 손주를 안고 밖에 나와 걷는데 아스팔트 바닥에 나뭇잎이 바람에 흩날리자 "낙엽이 굴러가네"라는 말을 한다.


아기가 두 돌 때쯤 되면 물 먹는 스펀치처럼 언어의 습득 능력이 왕성해진다. 이제는 손주 앞에서 말도 조심하고 행동도 주의해야 할 것 같다.


요즘 손주를 안고 밖에 나가면 심심하지 않아 좋다. 어디서 누구한테 들은 말인지도 모르는 낯선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무럭무럭 성장하는 손주가 그저 귀엽고 대견하기만 하다.


개룡공원에 손주와 놀러 가서 밤나무를 찾아가서 밤을 주웠다. 괜찮은 밤송이가 눈에 보여 손주 손을 잡고 발로 발랐더니 벌레를 먹어 그런지 밤이 들어 있지 않았다.


내가 밤송이를 발로 바르는 모습을 본 손주는 집에 들어와 할아버지가 했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며 발로 밤송이 바르는 모습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집안에 손주가 태어나고 웃는 일이 많아졌다. 평소 무표정하던 얼굴이 늘 싱글벙글 밝은 표정으로 변했다. 손주가 하는 행동이나 표정이나 말로 인해 웃을 일이 자주 생기니 구김살도 없어지고 얼굴의 표정도 밝아졌다.


손주의 말대로 가을이 왔으니 올가을에는 새롭고 신기한 풍경과 과일과 경치를 실컷 구경해야 할 것 같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것은 자연의 이치고 가을이 가고 여름이 오는 것은 자연의 역류이다.


"가을이 왔네"라는 말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계절의 순환에 따라 가을이 다가온 의미도 들어있고, 무더운 여름을 이겨낸 안도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손주가 한 말이 어떤 의미의 가을인지는 모르지만 올가을에는 단풍이 익어가는 풍성하고 여유로운 멋진 가을을 손주와 함께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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