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삶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防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단풍 드는 날", 도종환)
아침에 산책 가기 위해 아파트 공동현관문을 나서자 현관 앞 목백합나무에서 빨갛게 물들어 가는 나뭇잎이 눈에 들어온다. 그 나뭇잎 사이로 아침 햇살이 비취면서 나뭇잎이 더욱 빨갛게 바람에 펄럭인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도로의 횡단보도를 건너 초등학교 앞에 이르자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와 빨간색을 띄우며 물들어 가는 화살나무가 자신의 아름다운 단풍을 보아달라며 두 팔을 활짝 펴고 반겨준다.
시인의 시구처럼 나무는 나뭇잎을 떨구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황홀한 빛깔로 몸을 태우기 시작한다. 봄에는 싹과 꽃을 피워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면 자신의 몸을 태우기로 결심한 순간 절정에 서는 것이다.
가을이 깊어가자 산과 들녘에서 나뭇잎이 곱게 물들어 가면서 낙엽도 하나둘씩 쌓여간다. 나뭇잎이 단풍으로 물들고 생명을 다한 낙엽이 거리를 배회하는 아침이다.
시인은 단풍이 물드는 시기를 나무가 생의 절정에 서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사람도 나무처럼 생의 절정에서 아름답게 물들이며 보란 듯이 "나 이렇게 살았노라"라며 노래할 수는 없는 것일까.
가을은 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모두가 자신의 미를 발산하는 계절이다. 가을에 아름답지 않은 것은 사람 외에는 없는 것 같다. 사람만이 가을이 되어도 자연 앞에 내어놓을 것이 없어 초라해 보인다.
아침에 내딛는 발걸음이 깊어갈수록 주변 고목에서 물들어 가는 단풍이 부럽기만 하다. 나무는 계절의 사라짐을 노래하며 물들어 가는데 난 언제 저런 시절이 있었나 하는 반성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사람이나 나무나 한평생 사는 것은 같은데 나무는 매년 자신의 삶을 물들이며 화려하게 장식하며 살아가고 사람은 해가 갈수록 주름이 생기고 나이테만 두터워진다.
나무도 집 주변과 산자락이 대조적이다. 집 주변은 단풍으로 한창 물들어 가는데 산자락은 단풍이 멀었다는 듯 짙은 초록에서 엷은 초록색으로 변해간다.
가을을 아름답게 빛내는 것은 단풍이다. 가을에 나뭇잎이 단풍으로 물들지 않는다면 넓은 자연을 바라봐도 색깔이 밋밋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재미도 덜 할 듯하다.
단풍도 먼 곳을 보는 것과 가까이 다가가서 보는 맛이 서로 다르다. 멀리서 보면 산자락이 울긋불긋 물들어 가는 풍경으로 다가오고 가까이 다가가면 나뭇잎에서 물감이 뚝뚝 떨어지는 그림처럼 다가온다.
나뭇잎이 어떤 과정을 거쳐 분홍색과 주황색과 빨간색의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지는 모르지만 나뭇잎이 노랗고 빨갛고 주황색으로 온통 물들이면 나무가 아닌 멋진 자연의 그림처럼 바라보인다.
그런 모습이 신기하고 황홀해서 나무를 바라보며 한참을 서서 구경한다. 나무가 물들어 가는 모습은 아무리 훌륭한 화가도 그림으로 그릴 수 없는 미적인 영역이다.
단풍의 계절 가을은 여행하기에 좋다. 봄에 꽃피는 시기가 여행하기에 좋듯이 나뭇잎이 물드는 가을도 여행하기 좋고 사람의 외출을 유혹하고 자극한다.
올가을에는 나뭇잎이 단풍으로 물드는 지도를 따라 북에서 남으로 바람처럼 여행이나 다니고 싶다. 그 여행을 통해 인생에서 단풍처럼 곱게 물들었던 때는 언제였을까에 대한 답을 찾아 멋진 수필이나 한편 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