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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전화 한 통, 모든 것이 무너졌다.

25년7월22일의 기록

by 길고영

오늘, 내 이름으로 된 대포통장이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만약 그 전화를 5분만 더 받았더라면, 내 통장도, 정신도 송두리째 흔들렸을 것이다.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뭔가 잘못을 저질렀으니까 그렇게 당한 거 아니냐”며 쉽게 말한다.

하지만 시작은 너무도 평범한, 한가로운 오후의 전화였다.


지역 번호도 아닌, 낯선 핸드폰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등기를 수령하지 않으셔서 반송되어 연락드렸습니다. 새로운 수령지를 알려주세요.”


최근 오래된 차를 폐차시키고, 중고차를 새로 샀다.

관련하여 등기가 와야 되나 싶었다.


나는 물었다.

“등기를 꼭 직접 받아야 한다면 너무 어려울 것 같아요. 무슨 등기인데 전화까지 주셨을까요?”


"기소 등기이고, 저는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네요"

상대는 자신을 ‘사무관’이라 소개했고, 목소리는 군더더기 없이 차분했다.


그런데, ‘기소’라는 단어가 나왔다.

오랜 소송이 끝나고, 겨우 잊고 있던 ‘법정’ 용어가 다시 들려왔다.

긴 소송이 끝났다고 믿은 바로 그때, 그 단어는 내 안의 모든 공포를 다시 깨웠다.


"소장을 미리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그럼 URL창에 ‘법무법인 닷 com’을 입력해 보세요.”


나는 구글 검색창에 그 주소를 입력해 봤다.

관련 없는 사이트들만 잔뜩 나왔다.

다급한 마음에, 그런 주소가 없다는 사실조차 놓쳐버렸다.

오히려 내가 뭔가 잘못한 건 아닌지 자책이 밀려왔다.

내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심장은 점점 더 세차게 뛰었다.


그의 안내대로 URL창에 ‘법무법인 닷 com’을 입력하고,

제대로 접속함에 안도했다.


사무관의 안내에 따라 내 이름과 주민번호를 아무 의심 없이 입력했다.

곧 화면에는 매끄럽게 작성된 문서가 떴다.

내 이름, 별표 처리된 주민번호, 낯선 사람들의 직함과 서명, 마지막 장에는 이체 내역까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정신을 붙들고, 사무관의 이름을 메모하고 물었다.

“왜 핸드폰 번호로 전화하셨어요?”

그는 ‘녹취가 필요해서’라고 답했고, 나는 그럴듯하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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