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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리 Oct 09. 2022

과학자의 마음으로

Writer's block Diary: 10일째

Photo by Julia Koblitz on Unsplash


개그맨 박명수가 남긴 말 중에명언이 꽤 많다.

요즘 붙들고 사는 문구는 "어려운 길은 길이 아니다." 인데 곱씹을수록 명문이다. 그러나 길에 비유한다면, 그 길은 쉽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어렵지 않은 길은 길이 아니다." 적당히 어려운 것들이 닥쳐오지 않으면 이야기는 금세 김이 빠지기 때문이다.

   

장애물이 뜻밖일수록, 힘이 셀수록 이야기도 덩달아 재미있어진다. 등장인물의 대처 방식을 보며 우리는 상상에 의해 삶의 유사한 상황을 떠올리고, 이런 때는 이렇게 대답하면 겠구나 하며 유추법에 따나름의 선택지를 늘려나간다.


내가 들었던 창작 수업에서는 분기마다 항상 똑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야 했다: 설 쓰기는 무엇일까? 언젠가 나는 소설 쓰기란 실험의 구성이라 대답한 적 있다.


가상의 무대를 배경으로 특정한 상황에서 누가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 반응의 이유는 무엇이고 연쇄작용으로 일어날 다음 상황은 또 무엇인가. 과학실에서의 그것처럼 정밀한 수치와 논리적인 법칙을 통해서는 아닐지라도 가급적 실제와 유사하게 구축한 소설이라는 실험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이 처해보지 않은, 또는 이미 비슷하게 당했던 일에 대한 실마리를 얻는다.


그 실험이 유의미하기 위해서 삶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제를 택하거나 굳이 까다롭고 골치아픈 문제를 다룰 필요는 없다. 그저 본인이 겪거나 아는 범위를 약간의 극적 요소를 섞어 기술하기만 해도 족하다. 사람들은 자기 세계 바깥의 일에 정말로 무지하고 무심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래야만 한다.


우리는 모든 문제에 대해 똑같은 강도로 깊이를 가질 순 없다. 우리에겐 체력도 정신력도 경제력도 한정되어 있으므로. 게다가 우리는 이르든 늦든 언젠가 모든 기회를 박탈당하고 죽음의 세계로 떠나게 되어있으므로.


분명히 유사 이래 유사한 갈등이 되풀이 되었을텐데도 선배들의 성공이나 실패 사례가 후대로 전승되지 못한다면 인류 전체에게 무척이나 소모적인 일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주어진 능력 안에서, 급적 명한 선택지를 마련하기 위해 잘 만든 이야기는 필요하다. 디에 집중하고 무엇을 버릴지 결정하기 위해 필요하다. 은 기억을 늘리고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필요하다. 때로는 불필요한 관계를 접고 때로는 잘못 택한 직업을 바꾸고 때로는 병마와 싸워 이기기 위해 필요하다. 지금보다 나은 상태로 가기 위해 필요하다.


그렇기에 소설 하나하나를 실험 하나하나라 믿었고, 지금도 그 믿음은 크게 변함이 없다. 어떤 실험이든 의미는 남는다. 괴성과 함께 폭발하여 산산조각 잿더미가 되었다 할지라도 그 무의미하고 끔찍한 실험에마저 삶에 대한 실낱 같은 힌트가 숨겨져 있다고 믿는다.


자, 그러니 이제 그만 눈물을 거두자. 살아있는 한 백지는 늘 충분하다. 새로운 실험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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