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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리 Oct 07. 2022

현실적으로 지속 가능한 쓰기법을 찾아보기

Writer's block Diary: 9일째

Photo by freestocks on Unsplash


변명부터 시작하자.


어젯밤에는 결국 한 자도 쓰지 못했다. 퇴근 후 청소, 빨래, 설거지 3종 세트에다가 우동도 먹었고 고양이 보리의 화장실 청소, 그리고 녀석에게 내일 먹일 닭안심살을 삶고 망고스틴 화분 찬란이에게 물을 주고나니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어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는 온갖 거칠고 험한 말을 허공에 내던지면서 부디 제발 잠깐만 눈을 붙이고 일어나 한 줄이라도 쓰자! 라고 했는데 눈 떠보니 자정이 넘은데다 일어날 에너지가 1도 없어서 걍 계속 자기로 했다. 내게 딸린 수마란 놈은 힘이 아주아주 세다.


한때는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글을 썼었다.


아직 지망생이었던 시절, 분기당 한 편의 단편소설이 과제였던 강좌를 수강하면서도 줄곧 일을 했는데 그때도 여전히 시간은 없었고 일을 나가기 전 새벽 시간을 긁어모으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물가의 돌의 반짝거림을 사금파리로 긁어 순금을 모으려는 몸부림 같은 거였는데 용케도 몇 편의 글이 그렇게 태어날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러고 살았나 몰라. 이제는 죽었다 깨도 미라클 모닝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편도 1.5시간이 소요되기에 출근 시간 자체가 이미 새벽이기 때문이다. 더 일찍 자면 더 일찍 일어나긴 하겠지만 몇 차례 해본 끝에 포기하기로 했다. 피곤해서 커피를 마셔대고, 마셔댄 커피 때문에 늦게야 잠드는 패턴을 깨기는 역부족이었다.


대신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핸드폰으로 세 문장을 썼다. 생각해보니까 평일에는 이 방식으로 쓰는 게 거의 유일하게 가능한 방식이라는 걸 깨달았고, 언발에 오줌 눈 강아지마냥 5초간 몸서리를 쳤다. 이 방식이 내게 맞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퇴근길 지하철은 앉는 게 불가능할 수도 있고 이미 방전되어 있기 십상이니까 포기하더라도 출근길에는 무조건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는데다 지하철 21개 구간을 지나는 42분은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2.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배터리가 짱짱하다(고 해두자, 일단).


3. 쉽게 질리고 잘 집중을 하지 못하기에-유행하는 식으로 말하면 ADHD 끼가 있기에- 각을 잡고 하는 일에 취약하다. 그래서 허를 찌르는 식으로 편안하게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 예를 들어 책상에 앉아서 엉덩이로 쓰는 게 글이라고들 하지만 그건 모두에게 통용되는 법칙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게는 그런 각 잡는 시간이 리터럴리 지옥불에 튀겨지는 고문 시간이었다. 이전 글에서 소개한 책 레인지Range에서도 지적했듯, 이야기를 창작해내는 글쓰기의 영역은 체스나 골프, 피아노처럼 정해진 패턴을 반복할수록 기술이 정교해지는 종류의 일이 아니(라고 믿는다, 나는)니까.


스티븐 킹 영감님은 소싯적에 세탁소에서 일하면서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에 타이프라이터를 휘두르고, 온갖 곳의 대기시간을 책읽기로 메꾸었다고 했다. 그가 쓴 작법서는 머릿속 어딘가에 눌어붙은 스티커자국처럼 아직도 내게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는데, 그 말들을 전부 흡수해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게 패인이라고 지금껏 믿어왔다. 하지만 그게 아닌지도 모른다.


기린은 기린처럼 울고, 매미는 매미처럼 울며, 사자는 사자처럼 운다. 그리고 각자는 서로를 절대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스티븐 킹은 스티븐 킹처럼 울겠지. 그러니까 나도 나처럼 울란다!


핸드폰으로 문자 메시지 보내듯 써갈기는 몇 줄이 볼품 없어보이기는 해도, 내게는 이게 현실적으로 지속 가능한 방법이고, 최선이다. 어쨌거나 시간 안에 완성해서 제출을 하면 그만 아니겠는가. 젠장, 그것만이 중요하다. 다른 건 생각 말고 그것에만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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