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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의 일상

상대하기 버거운 시간

by 오각로 강성길

정년퇴직자 다른 말로 실업자 생활 가운데 유독 하루 보내기가 쉽지 않은 날이 종종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그다음에 하는 것이 양치질이다. 이상하게 양치질하는 동안 생각이 떠올라 양치질하면서 집사람에게 말을 건다. 그러면 집사람은 질색을 한다. 지저분하고 발음도 정확지 않아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아는데도 고쳐지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말을 할 기회는 아침밥을 먹을 때나 후식으로 과일이나 차를 마실 때 하면 되는 것이 왜 양치질하는 동안에 생각이 나 말을 하게 되는 걸까? 그 이유는 아마 이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의 세계에서도 영역은 생명유지에 절대적인 요소이기에 영역싸움은 심지어 같은 종이라도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과제이다. 사람들도 이 자연의 법칙에 벗어날 수가 없다. 직장에서 동료와의 관계에 있어서 겉보기에는 협동이지만 속내는 자기 영역 즉 자리를 지키려고 갖은 음모와 시기가 늘 존재한다. 국가와 국가 간에도 영토 분쟁은 쉽게 해결되는 것이 거의 없다. 억지를 써서라도 보다 나은 우위를 점하려고 하지 않는가 대표적인 예가 일본의 독도문제이다.


가족 간에도 다른 문제점으로 보이나 어찌 보면 본질은 영역문제가 의외로 많다. 가령 정년퇴직자인 남편과 전업주부와의 관계를 살펴보자 퇴직하기 전 남편은 아침 일찍 출근하면 좋든 나쁘든 직장이라는 영역에 생활한다. 다정한 아내도 남편 출근 후 가정이라는 영역을 차지하고 하루를 보낸다. 아침식사에 대한 뒤처리를 하고 자녀를 학교나 직장에 보내고 나면 점심시간과 오후 시간에는 아내의 영역인 집을 온전히 향유할 수 있다. 이렇게 지내온 어제와 달리 오늘은 남편이 직장이란 영역을 잃고 아내의 영역에 침범한 것이다. 처음에는 당황하고 불편하고 어색하고 처음 겪는 일이라 어찌할 바 모르고 허둥댔지만 그것이 하루 이틀 한 달까지는 인격의 무기로 버티지만 두 달이 넘어가면서는 아내도 인내가 한계점에 다다르게 된다. 내 역역에서 나가라는 것이다. 즉 어디든지 가라고 성화를 부린다. 훼손되고 쪼그라든 영역을 다시 회복하려고 잔소리가 시작되는 것이다.


퇴직자이고 실업자인 남편도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것은 스스로 지옥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때부터 남편은 자기의 영역을 찾으려 집 밖으로 나간다. 새로운 영역을 확보하려고 도서관도 가고 공원도 간다. 운동도 해야 하기 때문에 등산도 간다. 동네 저렴하고 오래된 헬스장도 알아본다. 주변 5일장도 열심히 다닌다. 강 뚝길에 산책도 한다. 그러다가 낚시하는 사람도 보고 낚시 도구도 알아본다. 초등학교 체육관에서 하는 배드민트도 기욱 거 린다. 자전거도 타러 나간다. 체육공원에 있는 테니스 장도 구경한다. 실업자나 퇴직 자을 위한 직업 교육 등도 관심을 갖는다. 지자체 하는 취미교실에도 들락거린다.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원의 팸플릿에도 주목해 본다. 그동안 연락이 와도 시쿵둥 했던 소연한 친구의 카톡도 본다. 등등 온갖 시도를 한다. 나름 일정한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영역을 확보하기가 그리 녹녹하지 않다. 취미로 붓글씨, 바둑, 장기, 자전거, 낚시, 골프, 배드민트, 테니스, 등 취미도 40대에 입문하지 않으면 노후 내내 비기너를 벗어나지 못한다. 나이 60 이후에 그 바닥에서 병아리 처지가 지속된다. 가는 곳마다 하는 곳마다 바닥인 셈이다.


나이 먹고 정년퇴직한 실업자가 있을만한 새로운 영역 확보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이 모든 것이 현실이라고 인식되거나 무력감이 스멀스멀 찾아올 때 정년 퇴직자나 실업자에게 과연 안전하고 포근한 영역은 존재는 하는가 의심하면서 멍하니 하늘을 쳐다본다. 이런 감정이 짙게 밀려오는 오늘 같은 날은 상대하기 버거운 특별한 일상이다. 오늘같이 무료한 날을 극복하려고 만만한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목적 없이 앞으로 앞으로 간다. 그 길은 강 뚝길이고 잊어져 가는 시골장터에 이어져 있다. 시간을 상대하기가 갈수록 버거워진다. 화창한 날씨마저 도움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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