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도 인생이라(2)
먹다 남은 육개장이 냉장고에 있다. 국물이 좀 부족해 보인다.
맹물을 넣으려다가 서랍에서 사골곰탕 즉석식품을 발견한다.
사골곰탕을 넣어 육개장을 다시 끓였다.
와. 어제보다 맛있다.
여기서 문제.
이 사골곰탕을 넣은 육개장은 합병(Merger)일까 인수(Acquisition)일까?
합병인지 인수인지 모르겠다면, 이 거래의 특징을 먼저 짚어보자.
첫째. 사골곰탕을 넣었지만, 이 음식의 정체성은 여전히 '육개장'이다.
둘째. 사골곰탕을 넣지 않아도, 이 음식의 정체성은 '육개장'이다.
셋째. 사골곰탕을 일단 넣은 후에는 넣기 전과 동일한 상태로 돌이킬 수 없다.
정답은 합병이다.
사골곰탕은 뚝배기에 들어간 이후 다시는 '사골곰탕'이 아니게 됐다. 즉, 원래의 정체성이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뚝배기 그 놈은 육개장이다. 대신, 사골곰탕의 그 '구수함'을 부여받았다.
합병은 그런거다. 구수함이라는 시너지를 위해 하나로 합치는 것.
사골곰탕의 형체(형식)과 맛(내용)은 사라진 채, 기존의 육개장 정체성 안으로 흡수되는 것.
실제로 법인 간에 이 합병이 이루어지는 경우, PMI(Post-merger Integration; 합병 후 통합과정)라고 해서 기존의 육개장에 사골곰탕이 잘 스며들고 융화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몇 년 간 실시한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회사 로고를 바꾸거나, 직급과 호칭 체계를 변경하거나, 조직적 통합을 위해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다든지 하는 것이 있다.
회사 간 합병의 성공 관건은 이 PMI에 있다. 사골곰탕이 기존 육개장에서 자꾸 분리되거나, 기존보다 맛이 더 구려진다면... 결국 그 음식은 맹물을 넣은 것만 못한 음식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합병. 이제 감이 오지 않으신가?
합병 후에는 쪼개기가 참 힘들다.
물론 법인에서는 합병 후에도 사골곰탕 부서를 별도 구분해두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하지만, 애초 목적이 완벽한 통합을 통한 시너지 발휘가 아니었다면, 합병 아닌 인수만으로도 충분히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실제로 합병보다는 인수 사례가 훨씬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