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연애 편지 첫 통
좋아한다는 말은 만만하다. 친숙하고 헤프다. 그냥 기분이 좋을 때 겪는 모든 것들에 대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받침이 없어서 발음도 쉽다. 내가 살아오며 해왔던 연애들에서도 ‘좋아해’의 쉬운 접근성으로 그 복잡한 서사를 시작해오곤 했다. 사실은 너에게도 마찬가지다. 꼭집어 고백을 말하는 게 아니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부터 너와의 대화에서 얼마나 많은 ‘좋아해’들로 군데군데 호감을 뿌렸는지 모른다. 니가 좋아하는 이 노래를 좋아한다고, 우리가 같이 걷는 이 길을 좋아한다고, 널 좋아하는 만큼 좋아한다는 말에 수없이 헤펐다.
사랑한다는 말은 어렵다. 곧잘 좋아한다 말하던 것들도 사랑 앞에서는 멈칫한다. 사랑이 맞는지 검열해본다. 혀가 입천장을 쓸며 ‘랑’ 발음을 할 때에도 나는 못 견디게 간지럽다. 여태껏 사랑은 복합적이고 고차원적이고 헤퍼선 안되는 거라고 배웠다. 솔직히 말하면 사랑을 아직도 잘 모르겠다. 세상 사람들도 사랑을 설명할 땐 봄꽃 같다느니 겨울비 같다느니, 정의보다 비유가 많았다. 나는 이것이 그들도 나처럼 사랑을 잘 모르는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한때는 너랑 나의 사랑에 대한 정의가 서로 달라서 그 간극으로 실망하거나 어색해질까봐 더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 영어 선생님이 Like와 Love의 뜻 차이를 가르쳐준 적이 있었다. 'I ____ an apple'에는 Like와 Love 중 뭐가 들어갈까? Like가 정답이지.’ 사과는 일반적인 대상이기에 '좋아하다'라는 뜻의 Like를 써야한다고 했다. 나는 두 단어의 용례보다는 엉뚱하게도 왜 사과를 사랑할 수 없는지에 대해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나이를 꽤 먹고 어른이 된 후에도 이 문제에 답을 찾지 못해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될 때면 그 사이 빈칸이 떠오르곤 했다. 이 감정이 일반적인지 특별한지 구분하는 것은 사랑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너무 어려웠다.
얼마 정도가 되어야 ‘좋아한다’는 ‘사랑한다’가 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너 만나기 전 몇몇 연애에서도 사랑한다고 말했었다. 나는 사랑을 가늠해보려고 '날짜'로 정량적인 기준을 둬봤다. 100일? 그 정도 좋아한다 말했다면 101일차부터는 사랑한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그 쯤이면 사랑의 고결한 속성도 지키고 상호간 다른 사랑의 정의를 가졌대도 합의 가능한 범위일거라고 어림 잡았다. 나도 어쨋든 어엿한 성인으로서 계속 유치하게 '좋아'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100일 간, 때로는 더 오래 숙성을 시켜봐도 사랑한다는 말은 맛이 없었다. 어떤 때에는 좋아한다의 최상급 표현으로 사랑을 말한 적도 있었다. 상대방이 더 기분이 좋았음 해서 혹은 특별한 날에 툭, 변화구처럼 '사랑한다'를 활용했다. 사랑의 정말 적절한 용례는 찾기 어려웠다. 아무리 눈치껏 이리저리 대조해본다고 참뜻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강조하지만, 이전의 만남들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다며 변명하려는 수작이 아니다.
너를 사랑한다.
분명히 느끼고 하는 말이다. 이제 1년 가까이 만나서도, 너의 기분을 좋게 하고 싶어서 애쓴 것도 아니다. 사랑이란 게 맛있는 걸 먹을 때 나오는 탄성처럼 나도 모르게 올라오는 표현이란 걸 너를 만나고 처음 알았다. 시시콜콜한 장난을 칠 때, 우리의 말과 생각이 겹칠 때, 다행이라는 안도가 드는 모든 때에 사랑을 느끼고 있다. 이 느낌이 못 견디게 좋아서 나는 매일 너를 보러 간다. 사랑한다고 말하러 간다.
만약 정말 날짜가 사랑의 기준이라면, 과거의 날짜가 아닌 미래의 날짜로 살짝 정정해본다. 자꾸만 하나씩 내 일상에 모든 날들, 순간들을 함께하고 싶어지는 것. 지나온 행복들이 기준에 채워져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행복에 대한 기대가 늘어나는 마음. 나는 요즘 그렇게 매일을 보낸다. 내 앞에 무수한 날들이 너로 예약되고 있다. 그러니까 뜬금없이 너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때마다 왜 사랑하느냐 되묻지 말아라. 나도 이유는 모른다. 사실 누가 그랬는데, 사랑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면 그건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닌 그 이유를 사랑하는 거랬다. 너는 사랑한다고 말하는 나를 보며, 그저 또 내가 미래의 어떤 일을 예약완료 했구나, 그렇게 생각해주면 된다. 알겠다고 승낙만 해주면 된다.
선생님은 An apple 은 사랑할 수 없다고 했지만 The apple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The- 하며 떠올린 그 사과의 기억 속에 복합적이고 고차원적인 것이 지칭되었을 수 있다. 그것이 일반적인지 특별한지는 화자만 알 일이다. 나는 여전히 사랑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좋아한다가 사랑한다가 되는 일은, 100일이나 1년을 채우는 일보다는 A가 The로 변하는 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부정관사가 정관사로 바뀌는 일. 나를 둘러싸던 좋아하는 것들이 어느새 모두 너와 함께를 지칭하고 있음을 느끼는 요즘, 나는 너에게 사랑에 빠져있음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