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생각하는 그것 말고
십이 붙은 건 다 어렵다. 리더십 프렌드십 파트너십... 십은 그 뒤에 붙어서 그걸 통한 관계를 뜻한단다. 역시 사람 관계가 제일 어렵다. 그러나 그 중에도 나한테 가장 어려운 건 단연코 스킨십이다. 나는 스킨십이 서툴다.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십년지기 친구라도, 어깨동무라도 할라치면 신발 신은 고양이 짤방 마냥 어깨를 꼿꼿히 멈추고 팔이 내려갈 때까지 내내 바보같은 표정을 지었다.
어저께 점심시간에는 사내 식당에 걸어가는 내내 부장님의 뒤집어진 카라를 쳐다봤다. 뒤집어졌어요 말하기엔 너무 사소하고, 내가 뒤집어 드리기엔 스킨십이 너무 어려웠다. 지난번에 사람 좋은 웃음 지으면서 냉큼 카라 뒤집어드리고 어깨 한 번 탁탁 털어드리던 설 파트장님이 생각났다. 주변 사람과 관계 좋기로 정평이 난 분이었다. 어설픈 흉내라도 내볼까 몇 십 번 고민하는 새 식당에 도착해버렸다.
곰곰히 생각해봤다. 나는 언제부터 고장 났을까. 추행에 대한 엄격한 교육을 받았나. 스킨십으로 무안 당한 트라우마라도 있던 걸까. 어느 시점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생각나는 것은 중학생 때 엄마가 안아주었을 때 너무 부끄러워서 얼른 벗어나고 싶어 그 시간이 너무 길었던 기억이다. 나는 인과도 모른 채 스킨십이 어색한 것이 억울하여, 자식을 낳거든 나처럼 되지 않도록 매일 같이 안아주는 연습을 하자고 다짐을 했었다.
남에게 피해 주지 말자는 내 신조는 스킨십이 어색한 내 신체와 궁합이 좋다. 매너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늘 이만큼 거리를 벌려 타인과 독립한다. 결국엔 세상에 누구 하나 터울 없이 마음도 손길도 주지 못하고 혼자 사는 것이다. 세상 밖 사람들은 힘들 땐 어깨동무도 하고 웃길 땐 팔뚝도 잡고 서로 제 몸처럼 어울리는데 나는 내 고집 센 터울이나 쳐다보면서. 누가 공간에 들어오면 어김 없이 바보 같은 표정이나 지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