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달콤함에 대하여
지난 주 친한 동생 C와 함께 친구 J의 미술 개인 전시회를 보러 갔다. 사랑에 대한 자기 경험과 가치관을 주제로 한 추상미술 전시였다. 그녀의 사랑은 아프고 힘들고 익히 아는 그 것이었지만 캔버스에는 사람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추상적인 감정까지 표현되어 있어서 좀 더 깊게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사랑에 대해 한참 들여다보다가 한 군데에 눈길이 꽂혔다.
<사랑은 야경이다>
곰돌이 인형 마빡 한 가운데에 굵은 획으로 떡하니 적혀있다. '이건 뭐야?', ‘그거 오빠가 적은 거야. 지난번에 술 취했을 때’ C가 말했다. 필름이 끊기면 깨어나는 보성2가 쓴 모양인데, 전해듣자면 그 뜻은,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줄 알았겠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속이 썩고 있는 사람들만 들어있다는 뜻이란다. J는 그 때의 대화가 인상적이라 그 곰인형을 전시장 맨 앞에 뒀다고 한다. 참 내, 야경은 무슨. 사랑이 뭔지도 모르잖아. 기억에도 없는 보성2를 속으로 구박했다.
나는 사랑을 잘 모르겠다. 세상에 수없이 많은 사랑 노래들은 참 다양한 방법과 문장으로 사랑을 말한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아 이게 정답이었구나 싶은 것은 없다. 나의 경우, 내가 사랑이라는 말을 할 때는 이런 거다. 애인에게 좋아한다는 말보다 더 큰 표현을 하고 싶을 때. 아니, 쉽게 말할 순 없으니, 한 50일 정도가 지난 후부터? 왠지 사랑이란 말은 함부로 꺼내어주면 안 될 것 같아서,이리저리 피하다가, 최대한 결정적인 때에, 그 정도?
이거 봐, 내 사랑은 엉터리다. 대충 어림짐작하여 정의한다. 확실히 ‘좋아한다’의 단순 강조급은 아닌 것 같은데. 어렵다. 어떻게 다들 그걸 찰떡같이 이해하고 잘들 사랑하고, 사랑한다 말하는 걸까.
J의 지난 사랑을 들여다보며, 잠깐 나도 내 사랑의 역사를 돌이켜 따라가본다. 이 사람과 아프고 힘들던 기억, 저 사람과 속 썩었던 기억, 또 누군가와 아름다웠던 기억들을 지나 도착하는 곳은 스무살 대학교 1학년 시절. 내 사랑에 대해 알고 싶을 때면, ‘사랑의 역사 알고리즘’은 항상 모순되게도 가장 멋모르던 시절로 데리고 온다. 그 시절의 내 모습은 스무살이라는 자유로움과 캠퍼스라는 배경이 더해져, 일년을 마음껏 낭비했었다. 세상에 둘 뿐이라면, 아무 것도 없더라도 상관없었다. 매일 그 애를 생각하고 시키지 않아도 척척 사랑한다는 말을 참 잘했는데, 언제 이렇게 어른이 되어 사랑에 낯을 가리게 된걸까.
잘 알겠지만, ‘너만 있으면 돼’의 결과는 대부분 참담하다. 헤어지고선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아니 실제로 내 세상을 모두 다 잃어버리고, 세상 떠나가라 꺼이꺼이 울었다.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스무살 때보다 많은 것을 가진 내가 되었다. 바꿔 말하면, 잃을 것이 많아졌다. 다시 말하면, 정신 차리지 않으면 빼앗아가는 세상이다. 스무살 때에 비해 세상이 무서워졌고, 나는 겁이 많아졌다. 사랑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사랑이란걸 하기 위해 무언갈 빼앗겨야 한다면 그냥 혼자인 채로 좋지 않을까? 하나도 안 빼앗기고 사랑할 수 있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계산을 더하게 되었다.
이거, 사실 나는 사랑을 모른 척 하는 게 아닐까? 잃어버렸던 경험이 두려워서, 사랑을 단지 좋아하는 것보다 조금 더 좋아하는 마음 정도로 정해 놓고선, 그 이상은 겁이 나 아무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이제 나는 모르는 음식 앞에선 아무리 맛있다 해도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먹어보고 싶진 않은 어른이 되었다.
달콤한 말들에 빠졌죠.
조금만 맛 보아도 혀가 잘리는 세상에서
넌 나를 안고 케익 속으로
첨벙, 첨벙, 첨벙, 첨벙, 첨벙...
<Love in campus>, 권나무
권나무의 노래는 그 목소리에도 울림이 있지만 가사가 깊은 곳을 때릴 때가 많다. <Love in Campus>를 처음 들었을 때 얼마나 멍했는지 모른다. 그래, 겁이 많은 나에게도 과감하게 사랑에 빠져보자고, 달콤한 말로 내 가슴에 첨벙첨벙이던 사람이 있었지.
1학년 1학기 F 세 개로 학사경고를 맞고 멘붕이 온 나를 안아주며 그 애는 그렇게 말했다. ‘괜찮아. 나는 네가 나중에 트럭을 타고 배추 장사를 하더라도 너랑 함께라면 행복할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조그만 게 어디서 이런 구체적인 멘트를 배운건지. 깊숙히 박힌 그 말이 너무 아파서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만 멍해진다.
이렇게 무서운 세상에서도 용감하게 나를 안고서 괜찮다고, 사랑을 하자고 달콤하게 말해주던 사람이 있었지. 겁이 많아진 서른의 나는 지금 멀찍이 관망하며 ‘사랑이란 멀리서 보니 아름답구나...’ 입맛만 다시고 있는데.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 어릴 적 엄마는 무서운 얼굴로 한참 혼내신 뒤에 마지막에는 나를 안아주며 꼭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 나는 내 세상이었던 엄마를 잃었다가, 다시 되찾은 기분에 마음이 서러워 매번 울음을 터뜨렸다.
타인 때문에 울어본 게 마지막으로 언제였더라. 까마득해진 나는, 눈물 날 만큼 달콤한 사랑이 언젠가 오겠지 하고 고개를 돌려버린다. 겁이 많아진 나는 늘 쩝,하고 입맛만 다신다.
<Love in Campus>, 권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