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에 대한 벌은 나의 실패 뿐만 아니라 타인의 성공에 있다.
- 쥘 느나르
고백하건대, 글쓰기를 좋아한다. 내 글을 좋아하고, 누가 내 글을 좋아해주는게 좋다. 좋은 글을 만드는 일은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일이다. 많은 작가들을 동경하고, 어떤 글들을 가슴에 간직하며 살아간다. 글이 주는 안도감과 충만감은 내가 가진 다른 즐거움들에 비견해도 절대 지지 않는다. 시작이 늦었지만, 남은 인생은 내내 글을 쓰다 가고 싶다.
그런 글쓰기가 싫어질 때가 있다. 역설적이게도, 글을 쓰기 시작할 때다. 빈 창에 커서 하나를 띄워놓고, 내 첫 문장을 기다리며 속없이 깜빡거리는 그 순간이 끔찍히도 싫다. 그럴싸한 글을 써야한다는 부담감, 누군가에게 통찰을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 잘 쓴 글에 대한 질투감... 여러 감정에 휩싸여 말문을 못 연다. -나는 이것이 사람들이 매번 대화를 시작할 때 '아니,', '저기', '그러니까' 같은 쓸데 없는 도입구를 들이는 이유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글쓰기 뿐 아니라, 모든 일의 시작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 근사하게 해내고 싶은 마음. 좋은 의도로 시작된 망설임은, 이내 곧 싫증과 게으름으로 흑화하고 만다. 유예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일을 모른체 하게 되는데 이 쯤 되면 헷갈린다. 어라... 이 일을 억지로 하고 있던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던가...? 나는 그토록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는 내내 죽상이 되어있다.
몸을 일으키는 건 항상 열등감이다. 한때 내 책 출판이라는 꿈을 같이 꾸던 내 또래들이 하나 둘 작가가 되었다. 꽤나 어른스럽게 자신의 결과물을 세상에 낸다. 나는 여기 꼼짝 없이 서서 부지런히도 멀어져가는 그들을 멀찍이 바라보다가, 고개 떨군 시선에서 능글능글 웃으며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게으름을 또 마주한다. 책을 내겠다고는 내가 한참 먼저 선언 했었는데… 친구의 책이 세상에 나온 날, 나는 책을 사다가 그 자리에서 후루룩 완독해내고는 내 실패를 안주 삼아 일주일 내내 혼자 술을 마셨다. 부끄러워 누구랑 나눠먹지도 못할 안주였다. 몇 달을 쉬고서 다시 글을 쓰게 된 것도, ‘너 왜 아직도 거깄어?’ 꼭 그렇게 나에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앞사람 뒤통수를 보며 하는 달리기가 더욱 고되듯, 열등감으로 힘을 짜낸다는 건 고독하고 힘에 부치는 일이다. 어쩌겠는가. 힘이 센 내 게으름의 유일한 대항마는 아무래도 이것 뿐이다.
오늘도 필사적으로 딴짓을 하고 있는 나에게, 한숨을 한 번 쉬고 타이르듯 묻는다. '그게 그렇게 하기 싫니?' 곧이어 뒤통수 몇 개가 아른거린다. 그러면 아른아른 첫 문장이 어떻게든 피어오른다. 오늘도 뒤통수가 되어준 나의 위대한 벗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내 문장에 한 줄 한 줄 아주 매콤한 겨자를 듬뿍 올린다. 이해해달라. 나에 대한 반성으로 내 글은 매번 찌푸려지도록 맵다. 울며 마무리 문장을 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