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 대신 국영수

2-3) 행복하게 공부하기

by 김혜주 비올라


아이가 잠들면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나에게 잠이 든 아이와 드라마, 그리고 맥주는 완벽한 3종 선물세트였다. 너무 재미있게 열심히 보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제9 화 자물쇠 학원을 보기 전까지. 물론 드라마이니 과장된 부분도 있겠지만 실제 많은 초등학생들이 아주 긴 시간을 학원에서 보내고 있다. 함께 독서모임을 하던 엄마들에게 물어봐도, 학원을 안 다니는 아이는 없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는 나는 아이가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시키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걱정이 되었다. 아이는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어도, 한글을 읽지 못하던 1학년을 지나고, 학교에 잘 적응했다. 그러면 되는 줄 알았다. 대한민국에서 학부모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드라마를 보고 난 후, 나는 이제는 부모에서 학부모가 되어야 할 것 같았다. 학원에 아이를 억지로 보내지는 않더라도 그곳에서 다른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는지 알고 싶었다. 학원 설명회에 참석하고 입시설명회도 들었다. 그곳에서 만나는 엄마들과 학원과 문제집에 대하여 정보를 수집했다. 그리고 무언가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


“한두 사람이 빠졌을 때는 함정이라는 것을 알고 밖에 있는 사람들이 구원의 손을 뻗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빠져 있으면 아예 함정 자체가 보이지 않게 된다." (신성욱, 조급한 부모가 아이 뇌를 망친다.)


혹시 대한민국 학부모 모두가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학원에 가지 않으면 공부가 안될까? 하루 종일 자물쇠가 채워진 교실 안에서 배고프고 졸린 상태로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 과연 아이의 뇌에 어떤 영향을 줄까? 그런 경험이 공부를 싫어지게 하지는 않을까?


그러나 나는 그곳이 함정이라도, 같이 함정에 빠지고 싶었다. 나만 혼자 학원을 안 보내서 내 아이만 뒤처질 수 있다는 생각은 나를 너무나 불안하게 했다. 소크라테스는 독약을 마시면서도 당당했다. 자신의 신념대로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로 행동했다. 그러나 나는 소크라테스가 아니다. 나도 내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싶었다.


다운로드 (41).jpg


주말 오전 느긋하게 늦잠을 자고, 가족이 식당에서 배부르게 점심을 먹고 나오다 학원가 근처를 가면 버스들이 가득 있다. 주말에도 아이들은 아침부터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집 아들만 이렇게 여유롭게 보내도 되는 걸까? 아들에게 묻는다. “아들아 같은 반에 학원 안다니는 아이가 너 말고 또 있니?” 아들이 당당하게 대답한다. “아무도 없지. 나 혼자 안다녀서 친구들이 엄청 부러워 해.” 아들은 편안한데, 어미인 나는 다시 불안해 졌다.


최진석 교수는 <인간이 그리는 무늬>에서 신념과 이념과 가치관은 나의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 ‘우리의 것’ 즉 집단이 공유하는 것 속에 나를 가두는 것은 ‘우리라는 감옥’에 갇힌 상태이다. 다른 사람들과 같아야만 된다고 생각하는 것. 주변에서 다 학원을 보내고 있으니 나도 같이 보내야 마음이 편하다. 내가 주인이 아니고 집단의 가치관이 주인인 상태이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면 나의 욕망이 사라진다. 무엇을 먹고 싶은지 모르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른다. 아이들도 그저 시키는 문제집 풀고, 가라는 학원에 가고, 그게 끝나면 바로 게임의 세계로 빠져든다. 이 모습이 현재 우리 아이들의 상황이다.


나는 ‘도대체 공부를 왜 하는 걸까?’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시작했다. 학생이니까 공부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일까? 그렇다면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공부를 안 해도 되는 걸까?


“부동산에 투자하고 싶어요. 어떤 지역이 좋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전문가들은 늘 같은 대답을 한다. “투자하기 전에 먼저, 지역에 대해서, 부동산에 대하여, 경제 흐름에 대하여 공부를 하세요.” 주식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기업의 주식을 살까요? 언제 매도할까요?”라는 질문을 하면 전문가들은 늘 같은 대답이다. “먼저 기업에 대하여 공부를 하세요. 그 기업의 손익계산서를 볼 줄 알아야 해요.”


모든 것은 먼저 공부를 해야 한다. 부동산 투자를 하고 싶다는 질문에, 세금 문제가 있으니 비규제 지역의 경매에 투자하라고 조언하는 사람은 결코 전문가가 아니다. 주식 투자를 하고 싶다는 질문에 삼성전자를 사라고 하는 사람은 주식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아니다. 모든 것의 기본이 공부이다.


엄마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를 양육한다는 것은 공부가 필요하다. 이럴 때는 이렇게 훈계하고, 명확한 기준과 허용범위를 설명해주고 하는 기술적인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엄마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공부는 ‘사랑’이다. 어떻게 아이를 사랑할 것인가. 엄마가 알고 있는 방식대로 하는 사랑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학대일지도 모른다.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려면, 먼저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사랑하려면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제대로 아는 공부야 말고 공부 중에 가장 어려운 공부이다.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에서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말한다.


“왜 부모들은 공부하지 않는가? 사교육비를 벌기 위해 갖은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심지어 기러기 아빠가 되는 일까지 다 감수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왜 공부하지 않는가? 공부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부모들이 앞장서서 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들은 공부를 접었으면서 자식들한테만 공부를 강조하는 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자식들이 정말 공부를 통해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면, 부모도 자식과 함께 공부를 해야 한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기를 바란다면,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기 전에 엄마가 먼저 공부를 해야 한다. 무슨 공부를 할까? 부동산과 주식 공부는 엄마가 아니라도 가능하다.


아이를 양육한다는 것은 나를 키우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일이 나와 내 아이, 그리고 타인을 사랑하는 일이다. 아이가 한 살이면 엄마도 한 살이 되어 내면 속에 있는 어린아이를 키워야 한다. 아이가 10살이 되면, 엄마 나이도 같이 10살이다. 내 안에 어린 시절 10살에 받았던 상처들을 꺼내서 마주하고 보살펴 줘야 한다.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시작하면, 엄마이기에 아이와 함께 다시 학교 공부를 할 수 있다. 우리는 대체로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전공과 관련한 사고법만 사용하고 살아간다. 나는 심리학을 전공하였다. 대인관계에 대한 관심이 많고, 감정적 에너지를 사용하는 사고법에 익숙하다. 그러니 수학이나 과학 같은 논리적인 사고법이나, 음악이나 체육과 같은 본능적인 사고법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국어, 수학, 과학, 음악, 미술, 체육 등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과목은 그 분야만이 가진 특수한 사고법이 있다. 체육은 대체로 신체활동을 통한 사고법을 익힌다. 다시 학부모가 되면서 아이와 모든 과목을 함께 공부해 가다 보면 학창 시절 이후로 사용하지 않았던 사고법들을 다시 되살리는 시회가 된다.


1학년이 되면 같이 교과서들을 살펴보고, 같이 숙제들을 하고 같이 색종이를 접고, 리코더 연습하고, 줄넘기도 같이 해보자.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고 부모를 그대로 따라 한다. 아이에게 ‘숙제해라, 책 읽어라, 문제집 풀어라’ 하는 말은 잔소리가 되기 쉽다. 엄마가 먼저 아이의 교과서를 소리 내어 읽어보고 수행과제들을 즐겁게 도전해 보자. 그렇게 3학년이 되고, 5학년이 되면 엄마도 다양한 뇌를 사용하면서 머리가 좋아진다.


학교 공부는 지식을 습득하는 게 목표가 아니다. 공부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평생학습의 시대에 나에게 적합한 공부 방법을 찾아가는 시기가 바로 학창 시절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공부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공부를 하는 것 자체가 머리를 좋아지게 하기 때문이다.


학교 공부가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사고를 확장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학부모가 된다는 것은 엄마에게 다시 학교 공부를 전체적으로 해보는 정말 좋은 기회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공부는 엄마를 행복하게 해준다. 행복한 엄마를 보는 아이도 행복할 것이다. 시간이 없다고? 하루에 1시간 투자하면 아이의 기본적인 진도를 체험해 볼 수 있다. 모든 문제집을 다 같이 풀어보지 않아도 된다. 전체적으로 흐름만 살펴봐도 사고의 확장이 가능해 진다.


그러나 학교 공부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것이고, 대학은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공부에는 때가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학교를 졸업했으니, 학교 공부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엄마는 드라마를 보면서 아이에게만 공부하라고 강요하게 된다. 학창 시절을 그때를 놓치면 공부를 못한다고.


하지만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기 바란다면, 매일 엄마가 공부를 해야 한다. 아이가 친구들과 잘 지냈으면 좋겠다면 엄마가 이웃들과 잘 지내야 하다.


오은영 박사가 어느 매체에서 강하게 한마디 하신 게 떠오른다.

“엄마가 서울대 가세요. 아이에게 가라고 강요하지 마시고.”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그러니 아이가 싫다면 억지로 아이를 공부시키지 말고, 지금이라도 엄마가 공부해서 서울대에 가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ps.

나는 학원에 보내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나는 학창 시절에 학원을 다녔던 기억이 좋다. 학교 선생님보다 학원 선생님들을 더 좋아했다.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가장 좋은 사교육 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아이가 원한다면 학원을 충분히 이용하라고 권하고 싶다. 다만 아이가 원하지 않는데 억지로 학원을 강요하는 것은, 혹은 아이가 잘 모르는데 부모의 잘 포장된 설득으로 학원으로 가는 것에 대하여 걱정한다.



ps2.

아이가 학원을 잘 다니더라도, 초등학교까지는 전체 내용과 어느 정도의 학업수준이 필요한지를 파악하고 있는 것이 좋다. 학원만 믿으면 중학교 가서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keyword
이전 08화함께 책읽기와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