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목요일 오전 10시, 책봄

2-1) 아이가 잠들면,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by 김혜주 비올라

매일 저녁 아이에게 잠자리 독서로 책을 읽어준다. 나의 목표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며 아이를 재우는 것인데, 거의 대부분 아이보다 엄마인 내가 먼저 잠이 들어버린다.


그러다 아이가 먼저 잠들 때가 있다. 아이가 잠들면, 살금살금 조용히 거실로 나간다. 냉장고를 열고 맥주를 꺼낸다. 냉동실에 미리 얼려둔 시원한 맥주잔도 꺼내고, 간단한 안주거리도 챙긴다. 그리고 TV를 켠다. 딱 1편만 봐야지. 맥주 한 캔만 해야지. 그렇게 시작한다. 시작은 미비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드라마는 ‘한편만 더’, ‘한편만 더’ 하다가 거의 끝이 보이자, 이왕 본거 결말을 봐야지. 하면 어느새 새벽이 되고, 그러는 동안 맥주 캔은 점점 쌓여 간다.


<오늘 엄마가 공부하는 이유>라는 책을 읽었다. 대치동 샤론코치로 유명한 ‘이미애’ 학습코치가 평범한 전업주부에서 인생역전을 하게 된 자신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저자는 자녀양육만 집중하다가 어느 날, 밤 10시에는 엄마의 역할에서 퇴근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신데렐라처럼 12시까지 엄마 아닌 그냥 ‘이미애’라는 내 이름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밤 10시부터 12시까지, 2시간 동안 거실에서 책을 읽고 블로그 작업을 하였다.


책을 읽고 너무 놀랐다. 아니 이럴 수가. 나와는 너무 다르다. 내가 엄마의 역할에서 퇴근한다면, 나는 오락실에 가든지, 만화카페를 가던지, 아님 홍대 거리라도 혼자 걸어 다닐 것 같은데, 거실에서 공부를 하다니. 저자는 그렇게 혼자 매일 공부한 10년이 쌓여서 평범한 주부에서 유명한 샤론코치가 되었다고 한다.


나도 육아한 지 10년 차인데, 나는 그동안 뭘 한 걸까? 그 책을 읽고 반성했다. 그러나 바로 나를 위안했다. 저분은 나와는 다르잖아. 학벌 좋으시고, 대치동 거주하시고, 외국 유학도 다녀오시고. 나와는 다르니까 괜히 따라 하려고 애쓰지 말자.


어느 날 친구가 <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었다>라는 책을 선물해 줬다. 김슬기 작가라고 되어 있는데, 저자 소개가 그냥 평범한 주부라고 되어 있었다. 육아가 너무 힘겹고, 독박육아이고, 경력이 단절되었다는 작가의 이야기는 내가 처한 환경과 비슷해서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한 번 놀라고 반성했다. 이 작가도 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어서 열심히 독서를 했다. 공부를 했다. 그리고 그렇게 공부한 기록들을 엮어서 책을 출판했다.


만약 작가 소개에 ‘국문과 졸업’이라고 되어 있었다면, 또 이걸 핑계 삼아, ‘에잇 국문과잖아. 그러니 책을 쓰셨지.’하고 말았을 텐데... 평범한 주부라는 소개 한 구절에, 나는 결심했다. 정말 진지하게 결심했다. 꼭 공부할 거야. 그리고 나도 저 작가님처럼 책을 출판하겠어! 강하게 결심했다.


결심은 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무슨 공부를 해야 할까? 우선 책에서 소개한 방법들을 따라 하기로 했다. 도서관에서 육아서들을 모두 빌려와서 읽고 블로그에 기록했다. 육아서 1천 권을 읽고 나자 책이 모두 결국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은 결국 엄마가 계속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엄마인 나에게 거울을 되어 엄마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아이를 통해 배우려면 육아서만 보아서는 안 되었다. 다양한 책을 읽고 공부해야만 엄마인 나의 내면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양한 책을 읽기 위해서,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독서모임명은 “책봄” 이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와 같은 철학책부터 <삼국지>, <제인 에어> 같은 고전과 다양한 소설에 건축 관련 도서까지 함께 읽었다. 혼자서라면 결코 읽지 않았을 것 같은 다양한 종류의 책을 접하게 된 것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읽었기에 가능했다.


독서모임에서 처음 함께 나눈 책은 <나의 눈부신 친구>였다. 나폴리를 배경으로 두 소녀의 60년간의 우정을 다룬 4권의 책을 읽고, 한 권마다 각자 글쓰기를 하고, 합본을 해서 낭독하였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우리가 엄마이기 이전에 받았던 상처들을 함께 나누고, 할머니가 되어 있을 우리의 미래를 상상해 보았다.


독서모임이 어느새 2년째이다. 2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에 우리는 화상회의에서 만난다. 같은 책을 읽고 느낌을 나누고 그리고 글을 쓴다. 그리고 조금씩 나는 내가 받았던 어린 시절의 상처들이 치유되어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마음의 평안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제 나는 아이에게 화가 나지 않는다. 남편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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