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책읽기와 글쓰기

2-2) 독서모임, 상처 치유의 시간

by 김혜주 비올라


독서모임에서 함께 책을 읽고, 글쓰기를 하는 것이 어떻게 나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을까?


나는 불평불만이 많았다. 결혼하면 외롭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남편과 대화가 안 되니 혼자인 것보다 함께 있는 시간이 오히려 더 외로웠다.


아빠라는 존재가 밤새 놀다가 새벽에 와서 아침 내내 잠만 잤다. ‘육아는 엄마 혼자 하는 거니?’라는 생각으로 억울했다. 새로운 전집 주문하려고 하면, 집에 있는 책 다 읽고 사라. 육아에 무관심하다가, 조기 영어교육에 반대한다고 영어 하지 말라고 하지. 영어 듣기 싫다고 CD 플레이어를 꺼버리는, 그런 남편에 대하여 ‘남의 편’이라고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불만을 하소연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렇게 욕이라도 해야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경제적으로 많이 도와주시는 시댁이지만,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며, 결정적일 때는 아들 편이었다. 친정에서는 옛날에 비해 요즘은 하는 일이 뭐가 있다고 맨날 힘들다고 하냐고 화를 내셨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밥은 밥통이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하고 애는 그냥 알아서 큰다고 하셨다.


나는 어디에서도 위안을 받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한 사람 마냥, 누군가를 만나면 ‘너무 힘들다’고 미운 5살 아이처럼 징징거렸다. 다른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들이 내 마음속에 외로움과 원망으로 커다란 돌덩이가 되어 꽉 차 있었다.


엄마들과 함께 독서모임을 하면서, 나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만 혼자, 홀로 외롭고 불행한 줄 알았는데, 우리는 참 비슷하였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있고, 육아가 힘들고, 남편과의 관계 속에 소통이 잘 안 되었다. 각자의 SNS 속 사진들은 다양한 경험과 맛있는 외식, 새로운 여행으로 늘 밝고 행복한데, 독서모임에서 서로가 마주하는 내면의 모습은 상처 가득 불안한 모습이었다.


엄마들은 왜 불안할까? 왜 이렇게 사소한 일에 신경 쓰는 걸까? 왜 이렇게 타인과의 관계가 힘든 걸까? 작은 일에 화를 내고 미안해하는 실수를 반복하는 걸까?


우리 엄마들은 다람쥐 쳇바퀴 같이 뱅글뱅글 도는, 늘 반복되는 같은 문제 속에 갇혀 있었다. 1주일 중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쉬기 어려웠다. 엄마라서 이런 삶은 어쩔 수 없는 건 줄 알았다.


엄마가 되기 전, 나의 공부는 좋은 성적, 대학, 직장, 승진, 성공을 위한 투자였다. 그때의 공부는 경제적으로 가난한 삶을 좀 더 부유하게 바꾸기 위한 ‘수단’이었다.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 엄마의 표정, 행동, 습관, 말투를 보고 들으면서 자란다. 엄마가 불안하고 불행하다면, 그런 삶에 대한 태도 역시 엄마를 보고 배운다.


엄마가 된 후, 엄마들과 함께하는 독서모임을 통한 공부는 ‘어떻게 아이에게 행복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라는 목적으로 바뀌었다. 어떤 엄마가 행복할까?


‘오늘 저녁은 뭐 먹지?’, ‘내일 아침은 어떻게 하지?’, ‘아이 숙제는?’, ‘부모님 생일은?’, ‘남편의 건강은?’ 등등. 내가 던지는 질문이 <아이, 남편, 가족>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반복될 때, 나의 문제가 아닌 것에 대한 해결책을 열심히 생각할수록 무급 노동자의 일상이 반복된다. 보수도 인정도 감사도 없는 노동의 반복은 피곤과 불안을 야기한다. 피곤과 불안 속에서 행복하기는 어렵다.


내면에 다양한 나무들이 자라야 생명력이 넘치는 생태계가 형성이 되고, 그래야 강한 비바람을 견딜 수 있다. 그런데 한 종류의 나무만 있다면, 그리고 그 나무가 심지어 몇 개 안 된다면 사소한 자극에 흔들리고 쉽게 무너진다. 나의 내면에 다양한 나무를 심어두는 것. 그것은 다양한 분야에 대한 공부이다. 일본 메이지대 교수인 사이토 다카시는 공부를 “정신적인 대피소”라고 불렀다. 대피소를 여러 곳에 가지고 있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스트레스가 심할 때 도움이 된다.


나와 비슷한 상황이지만, 좋아하는 영역이 다르고, 성격과 가치관이 다른 엄마들이 추천하는 책은 새로운 에너지를 주었다. 책 속에서 얻은 에너지는 나에게 너무 억울하던 문제에서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주었다. 답이 없어 보이던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보니 내가 문제 속에 놓치고 있던 부분이 보였다.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은 “만약 당신이 가진 도구가 망치 하나뿐이라면 당신은 모든 문제를 못으로 보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사고법이 한 가지라면 문제를 정확하게 보지 못한다. 계속 탓을 하게 된다. 내 가치관에서만 바라보니 남편 탓, 아이 탓, 그리고 내가 사랑받지 못하고 상처받은 환경 탓을 하고 있었다.


서로가 추천하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평소에 보지 못했던 세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점점 내가 쓸 도구가 많아지면서 삶에 대한 시선이 조금씩 바뀌게 되었다. 계속 반복되던 문제가 어쩌면 내가 하나의 사고법만 고집하면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저러는 거야?”라던 나의 시선은 “그래,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로 바뀌어 갔다.


내가 느끼게 된 것들과 과거에 상처받았던 일들을 글로 써서 함께 나누면서 우리는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런 시간이 반복되자 점점 질문이 나 자신에 대한 것으로 깊어졌다. “나는 왜 이거밖에 안되지?”라던 자책과 비난이 “그래 어린 내가 어쩔 수 없었구나!”로 바뀌어 갔다. 온전히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렇게 조금씩 나를 보듬고 상처들을 치유해 갔다.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고, 그 후에 글을 쓰는 시간은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나에 대한 글을 계속 써 가면서, 점점 나를 이해하게 되고, 용서하게 되고,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나 자신과 화해를 하자, 조금씩 아이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야 어른으로 부끄럽지 않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신의 내면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었다.


내 마음속에 친정엄마에 대한 서운함과 남편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면, 그 커다란 돌덩이가 아이를 제대로 사랑하는 것을 방해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 과정을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나누면서 그 경험 속에서 위로를 받으면서 내 마음속의 자갈과 돌들을 걷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내 마음의 밭이 기름지고 풍성해지자 나는 아이에게 행복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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