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책을 번역하는 일은 익숙한 세상이 조금씩 물러나고 낯선 세상이 천천히 스며드는 경험이었다. 조금씩 물러날 뿐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라서 남들에겐 평범하지만 나에겐 유일무이했던 5년간의 직장 생활은 아직도 가끔 꿈에서 나를 찾아온다. 퇴사했다가 개인 사정으로 다시 입사해 멋쩍게 사람들과 인사 나누는 꿈, 회사에 늦었다며 헐레벌떡 준비하는 꿈을 나는 여전히 주기적으로 꾼다. 나의 바람과는 달리 내 삶의 한 시절은 더디게 물러나는 중이다.
2010년 여름, 대학원 1학기를 마치고 맞이한 방학에 처음으로 책이란 걸 번역해 돈을 벌었다. 젊지 않은 혹은 그렇다고 생각한 나이에 새로운 세상에 뛰어든 거라 나는 이 바닥에서 내가 번역으로 정말 돈을 벌 수 있을지 무진장 궁금했다. 얼마를 받는 게 적정한 건지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첫 책을 덜컥 받은 나는 며칠 후 에이전시 사장의 부름을 받고 사무실에 찾아갔다.
지금은 위치조차 생각나지 않는 그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던 서른 살의 나는 바짝 얼어 있었다. 모든 시작이 그렇듯 나는 설렘과 두려움을 반반씩 얹은 어정쩡한 표정으로 사장을 찾아갔고 나를 본 그는 다짜고짜 나의 번역 원고가 담긴 파일을 열어 교정을 보기 시작했다.
“자, 이렇게. 이런 식으로 하는 거지. 이래서는 안 된다 이거야.”
그건 좋다 혹은 싫다는 감정이 수반되지 않은 그야말로 날 것의 경험이었다. 한 학기 수업만으로 내가 번역가가 되었을 리 만무했고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사실 반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 다 알아들은 척 고개를 주억거리며 수정해서 다시 보내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곳을 나섰다. 방금 개인 교습을 받은 건가? 이 바닥은 원래 다 이렇게 돌아가는 건가? 신선한데? 내가 돈을 받으면서 일하는 건데 강의도 해 주고 나쁘지 않은데? 그때의 나는 순수했다.
그 후로도 몇 권의 책을 더 준 거 봐서 나는 생각보다 그의 강의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었나 보다. 비로소 회사를 그만두기 전 막연하게나마 그려봤던 나의 미래가 조금은 또렷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랬다. 나는 책을 번역해 돈을 벌 수 있었고 그 책은 나의 이름이 찍혀서 몇 달 후 출간되기까지 했다! 그 책을 처음 서점에서 보았던 마약과도 같은 강렬한 기억은 나를 다음 책, 또 다른 책으로 꾸역꾸역 끌고 갔고 10년째 그 마약 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그놈의 돈이었다. 시간당 계산해 보니 최저시급의 반도 되지 않았다. 나는 아르바이트로 이 일을 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 돈으로 반찬거리도 사고 커피도 사 마시고 나중에 아이들 장난감도 사줘야 했다. 한숨이 나왔지만 아직 내가 학생이니 그럴 거라고 애써 자신을 위로했다. 일단은 학생의 아르바이트로 생각하자. 실력이 쌓이고 경력이 쌓이면 번역료도 올라갈 테니 지금은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자고. 그때만 해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 사장에게 몇 달 후 나의 번역료를 떼일 줄은. 그 후로 여러 에이전시와 출판사를 전전한 끝에야 비로소 어느 정도의 안정 비스므리한 게 찾아왔지만 그 안정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 같은 거라 조금도 방심할 수 없었다.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이 쓴 <읽는 직업>에서 “그들은 가난하다”라는 꼭지를 읽을 때마다 어김없이 눈물이 난다. 번역가 H는 철학을 전공했지만 “돈이 되기 때문에” 트렌드를 좇고 겉치레에 능한 책들을 주로 번역한다. 자기 관심사인 철학책을 번역하면 금전상의 손해를 입기에 그가 걸어온 행로에는 “뚜렷한 방향성”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분윳값과 기저귀 값을 사려면 하루에 몇 장을 번역해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10년이 지나도록 제자리걸음인 번역료로 생계를 유지하려고, 가정을 책임지려고 번역가들은 저마다 발버둥이다. 말미에 등장하는 번역가 P는 번역을 하면서 밤에는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러면서 계란찜은 눌어붙어서 설거지하기 힘드므로 지인들에게 식당에 가면 계란찜을 시키지 말라고 당부한다. 여기까지 읽는데 또 눈물이 차오른다.
번역으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건 정말 힘들고 눈물겨운 일이다. 가장으로서 번역을 하는 이들이 이런저런 다른 일들도 함께 하는 이유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가장은 아니지만 늘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지 궁리하는 편이다. 물론 돈을 모든 것의 잣대로 삼고 싶은 마음은 없다. 돈이 된다면야 이것저것 해보고 싶기도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기준 하나만은 지키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줏대 없이 휘청거릴 수 있다는 걸 돈이 된다고 웹소설까지 기웃거려본 결과 깨달았다.
갈팡질팡하는 동안 내가 살펴본 선택지는 참으로 많았다. 통번역대학원 입시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다시 빡세게 공부를 해서 뉴욕에서 사법 통역사로 활동하는 것부터 취미를 살려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람들처럼 뭔가를 만들어 파는 일까지.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사이드 프로젝트 100>이라는 책을 읽다가 귀뚜라미를 파는 사람을 보며 소오름이 돋아 그만 책장을 덮고 말았지만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기준에서 벗어나지 말지어다.
괜히 한눈팔지 말고 번역이라는 내 일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는 게 가장 효율적인 일일 거라는 걸 나도 안다. 그래서 나는 늘 갈등한다. 내가 하고 싶은 책과 돈이 되는 책 사이에서. 들여오고 싶은 책과 잘 팔릴 것 같은 책 사이에서 고민하는 동네 책방 사장처럼. 에이전시에서 소설을 의뢰하면 하고 싶지만 40퍼센트의 수수료를 생각하며 결국 빨리 번역할 수 있는 자기 계발서만 승낙한다. 일이 꾸준히 있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중요한 건 그 시간에 얼마를 벌었느냐다. 작년에 에이전시를 통해 내 관심 분야의 책을 세 권 연속 번역했는데 내 손에 들어온 번역료는 출판사와 책 한 권 계약했을 때의 번역료에 불과했다. 그 돈이 나에게 전달된 건 번역문을 넘긴 지 3개월 후였으니 내가 가장이었다면 나는 기저귀 값도 우윳값도 벌지 못하는 무능한 가장이 되었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나 역시 내가 번역한 역서들만 펼쳐놓고 보면 “뚜렷한 방향성” 같은 건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다. 그야말로 돈 되는 대로 닥치는 대로 번역을 했던 터라 자기 계발서, 경제경영서, 아동서, 역사, 철학, 건축 및 인테리어, 소설 등 가히 다양하다. 생계형 번역가에게 돈은 절대적인 기준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가난한 번역가로 불리기를 거부한다. 그렇게 이미지가 고정되어 버리면 절대적인 번역료가 앞으로도 절대로 오르지 않을 것만 같다.
가끔 어려운 책은 번역료를 조금 더 주면 어떠할까 싶기도 하지만 어려운 책이라는 기준은 누가 정하며 또 그 경계에 있는 책들을 두고 얼마나 많은 논쟁이 벌어질지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게다가 그렇게 되면 쉬운 책을 번역해서 번역료를 더 챙기려는 꼼수조차 부리지 못하니 번역가들의 숨통을 더욱 옥죄는 해결책이 되어버릴 소지도 있다.
가난한 번역가를 구출할 방법을 나는 정말이지 모르겠다. 번역가가 주인공인 드라마까지 나오는 마당에 이 직업의 대우도 좀 달라져야 하는 거 아닌가 이상적인 소리를 해보지만 쥐꼬리보다도 적은 코딱지 만한 번역료를 받고도 책을 번역하려는 사람들이 자꾸 어딘가에서 꾸준히 나오는 한 번역료는 오르지 않을 것이다. 잔인하지만 시장의 논리가 그렇다. 그렇담 우리는 서로의 가난을 위로하며 서로의 역서가 출간될 때마다 박수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수밖에 없는 건가. 일개 번역가 한 명이 거대한 시장을 움직일 힘은 없겠지만 우리 번역가가 ‘선생님’ 소리를 듣는 또 다른 호구에 머물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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