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 교사 시절에는 '아이들'의 기준이 매일 교실에서 마주하는 중학생들이었다.
그 이하 연령대의 아이들을 가까이서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기에
중학생 아이들은 처음부터 그 모습으로 이 세상에 뚝 떨어진 것처럼 생각되는 평면적인 관점에 머물러 있었다.
출생부터 십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육체적, 정서적, 지적인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저 교육학시간에 배운 이론 그 이상으로 다가오지 않았었다.
그러나 첫 아이의 심장소리를 듣게 된 날부터 너무나 자연스레 알아버렸다.
작은 심장으로 시작해 중학생의 형상을 갖추기까지 통과하는 그 모든 과정이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경이로움 그 자체인 것을.
한 달이 지날 때마다 생겨나 있는 머리와 몸, 팔과 다리, 발가락과 손가락들.
초음파에 찍혀나오는 형상이 온전한 사람의 모양을 갖추어 가기까지,
혹시 이상은 없는지 마음을 졸이며, 화면을 주시하는 의사선생님의 표정을 살피기 바쁜 열 달이었다.
세상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한시름 놓겠지 했건만, 본격적인 마음 졸임은 그 때부터였다.
작은 충격에도 산산조각 날 것 같은 유리그릇을 다루듯, 그 작은 몸을 안아올릴 때마다 마른 침을 삼켰다.
아이의 조그만 몸에 뜨끈뜨끈 열이 오르면 밤새 뜬 눈으로 열보초를 서는 것은 월중 행사가 되어갔다.
뉴스에서 유아들의 안타까운 안전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얼굴도 모르는 그 아이, 그 엄마아빠가 너무나 안타까워 눈물이 났다.
집 바깥, 아니 내 집 거실마저 포함한 모든 장소가 위험 요소로 가득한 것처럼 느껴져
어쩌면 가장 안전한 자궁 속으로 아이를 다시 집어 넣고 싶을만큼 불안에 몸을 떠는 날도 있었다.
잠깐 사이에 서툰 걸음마로 넘어져 얼굴이며 팔다리에 작은 상처라도 나게 되면,
울고 있는 아이보다 더한 통증을 마음으로 느끼는 초보 엄마는 늘 자책의 눈물 바람이었다.
한창 현장에서 커리어를 쌓으며 자기 계발에 열일하고 있는 동기들과 선후배 소식을 들을 때면
그들 못지 않게 치열한 나의 삼십대는 아이들의 쌓여가는 성장앨범 속에서 증명되리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오롯이 엄마만을 의지하고 있는 이 어린 생명들의 성장과 유지를 위해,
기꺼이 연료로 내어 준 나의 생명력과 시간들을 전소시키며 아까운 줄도 몰랐다.
몇 년의 육아 휴직 후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
어느 한 아이도 처음부터 그 모습 그대로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었음이 새삼 깨달아졌다.
지금의 성적표의 숫자와는 상관없이 그들의 심장은 엄마 뱃속에서 동일한 리듬으로 뛰었으리라.
학급 친구들 사이에서의 인기와 상관없이 그들은 모두 어딜가나 서로 한번만 안아보려는 사람들의 구애를 한몸에 받았던 시절이 있었으리라.
서툰 화장으로 민낯을 가리고픈 십대 소녀들도 그저 눈 두개, 코 하나, 입 하나를 갖춘 것만으로도 미모의 극찬세례가 쏟아졌던 때가 있었으리라.
옆반과의 축구대항전에 선발되지 못한 왜소한 남학생도 인생의 첫 걸음마를 내딛는 것만으로 수만 관중의 환호 못지 않은 기쁨과 축하의 포옹을 받았으리라.
십여년 남짓 큰 탈 없이 살아남아 중학교 교실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아이들은
그렇게 엄마 아빠의 숱한 밤을 삼키고 그들의 눈물과 웃음, 생명력을 수혈받으며 자라났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공부를 잘해야만, 외모가 뛰어나야만, 재능이 출중해야만 잘 자란 것이 아님을,
엄마 아빠의 젊은 시절, 수많은 기회비용을 아낌없이 지불하고 얻은 아이들의 성장은
다른 어떤 조건도 필요없이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경이롭고 가치가 있음을,
나는 엄마가 되어서야 교사로서 깨달았다.
아이들을 바라볼 때마다 그들의 엄마 또는 아빠의 눈부셨던 청춘이 그들 속에 녹아있음을 본다.
그래서 때때로 의기소침하고 주눅들어 있는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준다.
너희의 엄마 또는 아빠가 그들의 가장 아름답던 시절의 생명력을 아낌없이 너에게 흘려보낸 만큼
너는 너무나 존귀하고 경이로운 존재라고.
비록 지금은 서툴고 미숙하고 부족한 모습일지라도,
지금의 모습으로 너를 키워낸 사랑의 생명력이 이미 너를 환하게 빛나게 하고 있다고.
그리고 언젠가 네가 그 청춘의 나이가 되었을 때에는
인생의 그 아름다운 시절을 온전히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을 기꺼이 포기하고,
오롯이 내어 준 그 사랑이 얼만큼인지 깨닫게 될 거라고,
너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다시 한번 기억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