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2]이제야 보이는 그 엄마의 사정

by 엄마교사

세 아이를 차례로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내기 시작하며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내 '귀'가 아닌 '입'에서 더욱 익숙해졌다.

선생님의 손에 아이를 맡기고 짧은 커피 타임을 누리는 동안,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시원한 해방감과 에스프레소의 씁쓰레한 죄책감을 동시에 느꼈다.

아이가 친구의 손등을 살짝이라도 긁은 날에는 선생님과의 통화 중에 머리를 연신 숙여댔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습지 선생님까지 수많은 선생님들을 대하고 만나며

전업 엄마의 정체성으로 무르익어 갈 무렵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가 교사 시절 만났던 수많은 학부모님들의 마음이 이랬겠구나.

'선생님'인 나의 말 한마디가 그들에게는 이렇게 들렸겠구나.


아침도 굶은 채 지각하던 그 아이의 어머니는

젖먹이 동생의 밤중 수유로 기상알람마저 놓친 게 아니었을까.

부모님의 사인을 받아 제출해야 할 가정통신문을 늘 빠트리던 그 아이의 어머니는,

늦은 퇴근과 쫓기는 저녁준비로 아이의 얼굴을 마주할 여유도 없던 건 아니었을까.

아이의 학교생활 문제로 상담 통화를 했던 그 어머니는

전화를 끊은 뒤 아이의 문제가 모두 자신의 탓인 양 눈물과 한숨으로 그날 밤을 꼬박 새우지 않았을까.


신규교사 시절 아이들에게만 꽂혀 있던 그 시선이 자연스레 어머니들의 마음으로 옮겨갔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던 그들의 모습이 지금 나의 일상에서 리플레이되고 있었으니까.

아이들을 살뜰히 챙기지 않는 것 같았던 그들도 어쩌면 사정이 있었겠구나.

엄마라는 이름에 자매품으로 묶인 아내와 며느리 등등의 명찰까지 주렁주렁 달고서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내고 있었겠구나.

늘 바쁜 엄마의 손길을 기다리다 지쳐 잠든 아이들을 애처롭게 쓰다듬으며

미안함의 눈물을 훔치는 밤이 많았겠구나.




육아휴직의 긴 터널을 통과하고 7년 만에 학교로 돌아온 나는

교사 명찰을 주섬주섬 목에 걸고, 신상 블라우스와 스커트로 옷장을 채우고,

교무실과 교실을 바쁘게 오가며 낭랑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지도했다.

휴직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듯 보였지만, 결코 그때와는 같지 않은 지금이었다.

막혀 있던 주파수가 연결된 듯, 이전에 미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였다.


교실에 앉아있는 아이들의 옷매무새에서 엄마들의 분초를 다투는 치열한 일상이 보였다.

자로 잰 듯 딱 떨어지는 아이들을 보면 든든한 엄마가 있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어딘가 어설픈 아이들을 보면 아이의 엄마가 놓친 손길과 눈길을 나라도 채워주어야 할 것 같았다.

생활지도 문제로 상담 전화를 할 때는, 아이에 대한 따뜻한 칭찬들을 첫인사로 건네며

교사의 전화에 철렁했을 어머니의 마음을 다독여 드렸다.


교사 명찰 뒷면에 엄마의 이름이 함께 새겨진 채 학교로 돌아온 나는,

온전히 학부모이기만 했던 때에 느꼈던 그 마음을 헤아려 보는 교사가 되어 있었다.




엄마와 교사, 아이에게 있어 닮은 듯하면서도 꽤 다르게 기능하는 두 역할.


최근 몇 년간 교권이슈로 인해 학부모와 교사가 대립구도로 보이는 것이 참 안타깝다.

일반적이지 않은 소수의 학부모 또는 교사들에 의해,

일반적인 양쪽의 다수는 간접적으로 상처를 입고 불신이 자란다.

아이들을 위해 협력해야 할 아군끼리 잔뜩 날이 선 경계 태세로 대치한다.

그 가운데 진솔한 배움과 성장의 기회는 사라지고,

가장 큰 피해자는 그 경계의 날 위에 서 있는 아이들이기에 더욱 안타깝다.


복직하고 수년이 지나는 동안 나에게는 작은 바람이 생겼다.

나의 교실에서만큼은 교사와 학부모들이 신뢰와 소통의 시선으로 마주하기를.

소중한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엄마와 교사가 든든한 연합군이 되어줄 수 있기를.


나의 이야기는,

그 바람이 사명으로 짙어지기까지 엄마 교사, 교사 엄마로 또 하루를 살아내는 이야기이다




브런치 새내기라 브런치북 발행에 오류가 있어서 연재가 늦었습니다 ㅠㅠ

일반 글로 발행되어서 브런치북에 다시 올려드립니다.

혹여나 기다리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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