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1]교사에서 엄마가 되어보니

휴직과 복직 사이, 정체성의 혼란기

by 엄마교사

"와. 이런 건 처음 보네요."


적지 않은 금액의 생애 첫 대출을 앞두고 나는 잔뜩 긴장해 있었다.

대출 서류들을 검토하던 상담사는 나의 경력증명서를 들고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다.

15년 남짓의 길지 않은 경력 안에 휴직, 출산휴가, 복직이

후크송의 중독적인 후렴구처럼 반복되며 2페이지를 빼곡이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2년 터울 세 아이의 출산과 육아, 복직으로 수놓아진 내 경력증명서는,

말 그대로 치열한 '워킹맘의 경력''증명'하고 있었다.

날짜와 반복되는 두 세 단어들로 간결하게 명시된 증명서였지만,

교사와 엄마의 역할을 넘나드는 정체성 혼란기의 시간들은 결코 간결하지 않았다.





엄마가 되기 전, 나는 5년 경력의 열정 넘치던 중학교 신규 교사였다.

학급운영과 수업연구가 내 인생의 유일한 사명인 것처럼 모든 것을 쏟아붓던 시절이었다.

5년을 불태우고 나니 조금 쉬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즈음에

결혼과 임신, 출산이 논스톱으로 이어졌다.


첫째 아이의 휴직계를 제출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긴 휴가를 떠나는 듯 경쾌했다.

그 시절의 나는 호칭도 생소한 '엄마'이기보다 '육아'라는 연수를 위해 잠시 출장을 떠나는 '교사'였다.

아침 조회 종소리가 울릴 시간에 꼬물거리는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칠판앞에서 분필을 드는 대신 이유식 재료를 썰어가며,

새로운 배움의 기회에 참여한 듯 흥미와 열정으로 채워나갔다.

18개월의 행복한 출장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을 때, 이제야 나의 원래 자리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복직한 지 1년이 채 안되어 두번째 휴직계를 제출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뒤통수가 조금 당겼다.

4인가족 프로젝트의 기본요건을 달성했으니 둘째아이의 첫 걸음마가 최종마감일이라 생각하고

조금 더 힘을 내어 보기로 했다.

아쉬움 없이 완수하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지.

교무실 책상을 너무 오래 비워두는 건 아닌가 하는 약간의 조급함에 웃음기는 조금 약해졌지만,

지금 내게 주어진 과업은 육아였기에 선택과 집중을 잃지 않는 프로다운 태도로 최선을 다했다.


드디어 둘째아이도 어린이집 생활을 즐기게 될 무렵 복직계를 제출했다.

장기 해외파견을 마치고 영구 귀국하는 듯한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을 준비하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셋째 임신을 맞닥뜨린 그 자리에서 나는 주저앉고 말았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레이스의 출발선에서 스타트가 울리자마자 세게 넘어진 느낌이랄까.


흐르는 눈물의 의미가 스스로도 다 이해되지 않는 그 순간에도 머릿속으로는 출산일을 계산하고 있었다.

이미 제출한 복직계는 철회할 수 없어, 두 아이의 육아와 임산부 교사 생활을 겸하며 9개월을 버텨내야 했다.

셋째의 출산일이 가까워질 수록 교무실 책상과 거실 곳곳은 내 정체성만큼이나 혼돈 그 자체였다.

학교에서는 어린이집의 키즈노트에 답글을 달고, 집에서는 학부모 전화상담을 하며

엄마와 교사, 두 역할 사이의 정체성의 혼란이 시작되었다.


출산휴가 결재를 올리고 돌아오는 마지막 퇴근길에, 더이상 뒤통수는 당기지도 않았다.

거실에 털썩 주저앉아 어질러진 장난감들을 바라보며

내가 돌아올 곳도, 꽤 한참을 머물러야 할 것도 이 곳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순하디 순한 셋째는 발달속도도 너무 순했다. 17개월에야 겨우 직립보행이 완성되며 애를 태웠다.

교실과 복도를 활기차게 오가던 내 걸음은 셋째의 언어 치료와 오빠들의 유치원 등하원길에 고정되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던 낭랑한 목소리는 삼남매의 웃고 우는 소리에 질세라 점점 날카로워져갔다.

블라우스와 정장바지가 갖춰진 옷장은 최대한 편한 티셔츠와 고무줄 바지 외에는 추가되는 신상이 없었다.

현장에서 부지런히 커리어를 쌓아가는 임용 동기들과의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에는,

왠지 모를 박탈감이 양손에 들린 장바구니에 우울한 무게감을 더했다.


엄마의 자리가 목 늘어난 티셔츠처럼 애처롭게 편안해질 수록,

교사라는 이름은 빛바랜 액자 속 리즈시절 사진처럼 한 때의 영광으로만 기억되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