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교사 임용장을 받아 든 나이는 대학을 갓 졸업한 겨우 스물넷.
24년간 부모님의 딸, 누군가의 제자.
피보호자의 포지션이 훨씬 익숙했던 나였다.
대학 졸업장을 받은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교단에 섰고,
나이차가 고작 한 자릿수였던 중학교의 첫 제자들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었다.
1학년 중 몇몇은 그나마 초등학생의 풋풋함이 남아 있는 어린이로 보였지만
방학을 보내고 오면 통통하던 젖살과 보송한 솜털은 2차 성징의 폭풍 속에 사라져 있었다.
2학년이 되면 대부분 내 키와 몸무게를 훌쩍 넘어서 버려서 (나는 체구가 꽤 작은 편이다.)
공손하게 꾸벅 인사하는 아이들을 우러러보아야 할 지경이었다.
학기 단위로 급격히 성장하는 아이들의 외모와 함께
정신적 사고의 깊이나 공감 능력도 정비례로 쑥쑥 자랄 거라고 착각했던 시절이었다.
독서와 사색을 즐기며 취미로 글을 썼던 나의 중학생 시절을 기준 삼아
십 대 초중반인 중학생들은 이미 반쯤 큰 어른으로 여겨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
교사인 나와 몇 년 차이 나지 않는 그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확하게 판단할 줄 알며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그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충분히 안다고 생각했다.
마땅히 따라야 할 기준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은
그저 아이 개인의 의지부족과 게으름, 성품의 결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일부 그런 면이 있기는 하다)
몇몇 아이들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이십 대 초반이었던 나보다도 훨씬 성숙한 면이 있어
담임인 내가 심리적으로 의지하게 되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다수의 아이들은 게으르고 무책임하며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책임감 없는 행동에 따르는 불이익이 있음을 분명히 가르치는 것이 교사의 본분이라 생각해서
참작의 여지는 1센티도 허용하지 않는 엄격한 기준으로 아이들을 지도했다.
지각을 하면 그만큼의 시간을 학교에 더 머무르게 했고,
숙제나 수업 중의 과제수행이 미흡하면 그 분량만큼 쉬는 시간을 반납하게 했다.
불이익이 따르는 것을 경험하면 행동이 쉽게 고쳐지겠거니 했지만
1년 내내 조금의 변화도 보이지 않는 버티기 앞에 결국 내가 KO패를 선언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훈육 실패의 책임까지도 그 아이들의 몫이라 생각하며
중학생에 대한 높은 기대치를 조금도 낮출 생각이 없었다.
교단을 떠나 있는 동안 기질도 성별도 다른 세 아이들을 양육하는 과정 중에
지난 시절 마음으로 들이댔던 잣대가 꽤 가혹하고 무정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영유아기와 아동기, 청소년기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은 나의 기대보다 훨씬 더디 자랐다.
자신의 팔다리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해 공중에 허우적대는 갓난아기를 포대기로 꽁꽁 싸매어주며
인간의 시작이 이렇게나 불완전함에 깜짝 놀랐다.
수십 번 수백 번 잔소리에도 어김없이 널려 있는 장난감과 옷가지들을 주우며
삼세번만에 행동이 바뀌어지지 않는 이유는 나의 육아방식 탓인지, 아이의 결함 때문인지 고민했다.
육아전문가의 책이나 강의를 늘 끼고 살며 답답함과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 애썼지만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아이들의 성장을 쭉쭉 잡아 늘릴 수는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깨닫게 되었다.
수백 번의 잔소리가 모두 땅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밭에 이슬비 내리듯 젖어들고 있었음을.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한참 지켜보고 있을 때는 흙 한 톨도 꿈쩍 않더니
잠시 고개 들어 하늘을 보는 사이 연한 싹이 틔워져 있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은 잔소리들이 아이의 귓바퀴도 건드리지 못하고 튕겨져 나간다고 생각했지만
아이의 사고가 깊어지는 어느 지점에 다다르는 순간,
차곡차곡 쌓인 잔소리 중 옳다고 판단된 가르침 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오는 것을 경험했다.
아직 그 성장점에 이르지 못한 아이의 시야는 어른인 나보다 훨씬 좁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아이가 경험하고 상상할 수 있는 세계는 딱 그 시야만큼인 것도 아이를 양육하며 알게 되었다.
미숙한 판단과 무책임한 행동 또한 시야가 불완전한 아이에게는 최선의 행동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중학생 나이만큼의 시간을 엄마로 살아보니,
교복을 입고 의젓한 척 앉아 있는 중학생들은 더 이상 반쯤 큰 어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제 막 아동기 성장점을 지나서 다음 단계의 성장점까지 한참 달려가는 중인 아이들이었다.
그 모습이 더 이상 답답하거나 미련해 보이기보다, 허술한 헛걸음질 마저 사랑스럽게 보였다.
성장점이 모두 다른 아이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끌어주고 의지하며 함께 자라 가는 모습은
어른인 나에게도 건강한 성장을 계속해서 꿈꾸게 하는 이유가 되어 주었다.
지각이나 과제 미완료 등이 습관이 된 아이들에게는 그에 응당한 규칙으로 지도하지만,
무책임과 게으름의 표본을 바라보는 듯한 나의 냉랭한 눈빛은 사라졌다.
더디지만 결국에는 다다르게 될 성장점이 자신들에게도 분명히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성장을 향한 여정을 멈추지 않도록 잔소리 샤워 끝에 따뜻한 격려의 타월을 감싸준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천방지축 첫째 아들은 뜬금없는 고백을 툭 던졌다.
"지나고 보니 엄마 말이 다 맞았어."
뭐든 늘 삐딱하고 보는 첫째에게서 예상 못한 고백이 튀어나오자
당황함과 감동이 섞인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언제 자랄까 늘 위에서 내려다보던 시선이 한껏 낮아져 아이와 마주 보게 되니
작은 성장도 놓치지 않고 미소로 화답하는 여유가 생겼다.
오늘도 엄마의 렌즈를 착용하고 교실에 들어선다.
어느 순간 여기저기서 자라난 아이들의 연한 싹들이 바람에 산들거리며 나를 맞아준다.
+
참, 엄마 말이 다 맞다던 그 장남은 며칠 뒤 이런 말을 건넸다, 아니 던졌다.
"선생님의 아들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엄마는 중학생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서 탈이야."
역시 어떻게든 삐딱해져 보는 십 대다.
너무 고분고분하지 않아서 사랑스럽기도 한 사춘기 아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