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걸려 온 전화

한 밤 중에 걸려 온 전화만큼이나 긴장되는.

by 엄마교사

우리 집 장남은 인생살이 11개월 차에 두 발로 직립보행을 성공한 이후

두 발을 땅에 딛고 차분히 걷는 법이 없었다.

장난기 가득한 눈빛과 언제든 도약할 준비를 갖춘 두 발로 늘 내 마음을 졸이게 했다.

집이나 유치원보다는 활동범위가 좀 더 제한될 초등 입학을 앞두고

교실현장에서 아들의 대활약(?)을 미리 염려하는 마음에 며칠간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입학식날 빳빳한 셔츠와 바지를 입고도 제법 의젓하게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며

초등학생 명찰을 다니 아이 스스로도 달라지려고 노력하나 보다, 하는 마음에 울컥 눈물까지 고였더랬다.

차분해 보이는 담임선생님을 보며 안심되는 마음도 들었다.

조용한 일주일이 지나가며 입학 전의 긴장과 염려가 서서히 가라앉을 즈음.

뒤늦게 확인한 휴대폰에 담임선생님의 전화번호가 부재중 목록에 떠 있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교사가 학부모의 전화번호를 굳이 누를 일이 없다.

누구보다 더 잘 아는 나였기에 그 짧은 순간 머릿속에 여러 시나리오들이 전개된다.

친구와 실랑이 끝에 주먹다짐을 했을까.(이제까지 그런 문제상황은 없었는데)

학교 활동 중에 크게 다쳐서 병원이송이 필요한 걸까.(불쾌한 상상력이 폭주할까 봐 질끈 눈을 감았다)

교사 시절 굳이 학부모님께 내키지 않는 전화를 드려야 했던 사례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주저하면서도 다급하게 통화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이 살짝 떨렸다.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우리 oo이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 네. 00 이가 일주일간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었어요. 발표도 잘하고요."


긍정적인 멘트로 말문을 여셨지만 아직 방심할 타이밍은 아니다.

긴장한 목소리의 학부모에게 아이의 문제상황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지금 담임선생님도 살짝 주저되는 순간일 것이기에.


"아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늘 점심급식이 끝나고 먼저 교실로 돌아간 oo가 안 보여서 찾아보다 보니

저희 학급이 돌봄 교실로 쓰여서 냉장고가 있는데 그 냉장고 위에 올라가 있더라고요."


냉장고 위라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긴장을 풀어야 할지, 높여야 할지 판단도 서지 않았다.

다행히 이어지는 선생님의 말씀에, 푸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다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서 지도했어요.

평소 얌전하게 앉아 있던 00이라서 저도 놀랐어요. 그냥 재미로 그래봤다고 웃더라고요."


고지를 정복하려는 본능이 충만한 아이의 눈에 초등입학 기념 등반 장소로

교실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지점인 냉장고가 선정되었나 보다.

가장 적절한 등반 타이밍을 잡느라 1주일간 머리를 굴렸을 아이를 생각하니 한숨 어린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 네 선생님도 너무 놀라셨겠어요. 가정에서도 잘 지도하겠습니다."

"네 그 외에는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잘 적응하고 있으니 걱정 마셔요."


한결 편안해진 목소리의 엄마와 교사는 훈훈한 멘트를 주고받으며 웃음으로 첫 통화를 마무리했다.

다행히 그 이후로는 초등 고학년까지 아이의 담임선생님의 전화가 먼저 걸려오는 일은 없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들이 정말 아무런 사건사고 없이 얌전하게 지냈다고 생각되진 않았지만

한 번의 큰 철렁함을 겪고 나니, 아들의 학교생활을 낱낱이 알게 되는 부담은 피하고 싶었다.

매년 학기 초와 학기말에 선생님께 선제적으로 전화를 드려서

아이의 전반적인 학교 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만 점검했다.

학기 중에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여기며 부디 어떤 전화도 오고 갈 일이 없기를 바랐다.



이런 엄마의 마음을 몰랐던 미혼교사 시절,

담임을 맡은 학급에 개구쟁이들이 많았고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그중에 한 남학생이 크고 작은 사건사고 외에도 다소 반항적인 태도까지 이어지게 되어

각기 다른 사안으로 연달아 3일을 학부모님께 전화드리게 되는 일이 있었다.


이틀째까지는 나직하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주의시키겠다고 말씀하시던 어머님은

삼일 째 담임의 전화를 받은 날, 끝내 목소리가 날카로워지시고 말았다.

'선생님. 지금 제가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이렇게 매일 전화를 하시니 저도 며칠간 잠도 제대로 못 잤다구요"


갑작스러운 날 선 반응에 얼어버린 나는 너무 당황해서

학교에서 더 잘 지도하겠다는 맺음말로 서둘러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교사로서 아이의 학교생활을 제대로 전달드리고 가정에서의 협조를 구하는 목적이었는데,

도리어 교사에게 자신의 스트레스를 쏟아내는 어머님의 태도를 그 당시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학부모가 되고 나서 학교에서 걸려온 전화의 위력을 몸소 체험한 후에는 종종 그 어머님이 떠올랐다.

3일 연속 각기 다른 사건사고로 학교생활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아들의 소식을 어느 부모가 반가워하랴.

당연히 내 아이의 실수나 잘못을 회피하지 않고 바로 잡을 기회가 있음을 반갑게 여겨야겠지만,

도무지 속내를 점점 알기 힘들어지는 십 대 아들의 등교하는 뒷모습만 바라보는 엄마는 늘 불안하다.

그 불안을 애써 다스리려고 러닝머신을 열심히 뛰거나 옷장을 다 뒤집어 정리에 골몰하는 날도 있다.

그러나 삼일 연속 담임을 통해 아이의 일탈소식이 들려오면,

애써 다스리던 불안감을 더 이상 통제할 수 없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학기말 그 어머님은 다른 일로 통화하며 기가 꺾인 목소리로 사과말씀을 건네셨다.

"선생님 죄송해요. 제가 그땐 너무 예민해졌었어요. 아이가 클수록 부모로서 마음 다스리기가 참 쉽지가 않네요."


우리 집 장남이 중학교 1학년이 된 올해, 그 어머님의 떨리는 목소리에 나의 마음이 덧입혀진다.

아이의 학교생활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으니 일말의 불안감과 늘 동행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전해 듣는 담임의 한마디가 막연한 불안감의 실체로 다가오는 것이 엄마의 마음이다.




학기 초 교사의 촉으로 1년간 부모님께 전화를 많이 드리게 될 것 같은 아이를 발견했다.

이미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이의 일탈행동을 전달하는 학교 전화에 지친 학부모는

학교와 교사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태도로 반응한다는 소문도 들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학기 시작부터 아이의 사소한 일에도 칭찬세례를 가득 담아 문자를 보내드렸다.

어머님의 반응은 살짝 당황하면서도 감사하다며 방어기제가 느슨해진 느낌이었다.


이내 아이의 문제 행동이 시작되어 전화를 자주 드리게 될 때마다,

위로와 격려의 말을 먼저 건네고 아이의 성장을 위해 함께 협력하자고 다독여드린다.

" 어머님, 많이 힘드셨죠. 그래도 이제까지 잘해오셨어요. 자녀를 키운다는 건 장거리 마라톤이잖아요.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포기하지만 않으신다면 아이도 결국에는 방향을 찾게 되더라고요."

이 위로의 말에 어머님은 정말 많은 용기를 얻으셨다고 한다.

이후에 학교의 여러 지도상황에도 매우 호의적이고 협조적인 태도를 취하시고

정말 아이를 위한 선택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시더니 대안학교를 선택하셨다.


특정한 아이가 아니더라도, 특별한 사안이 없을 때에도 학부모님들께 아이에 대한 칭찬문자를 보낸다.

전화를 드리는 일이 생기면 항상 아이에 대한 칭찬으로 말문을 연다.

문제 상황은 아이의 학교생활의 다각적인 면 중 일부이며, 개선 가능성이 충분함을 강조한다.


'학교에서 걸려온 전화'가 한 밤 중 울리는 전화소리 같은 불안함으로 전해지지 않기를,

집에서는 알 수 없는 아이의 새로운 면모들을 발견하는 통로가 되기를,

아이의 성장을 위해 건강하게 협력하는 교사와 학부모의 반가운 소통창구가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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