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기 - 2] <BAAA: Books As Art As> 전시 관람
우선 첫 번째 코너부터 시간을 많이 할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벽면을 가득 채운 프로젝터 영상은 <방법으로서의 출판: 아시아에서 함께하기 방식들 / 미디어버스>의 출간에 기해 만들어진 짧은 영상이었습니다. 아시아의 다양한 국가의 아티스트북 제작자들의 인터뷰가 흘러나오던 이 영상에서는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 특히나 인쇄소에서 책이 ‘책'이라는 물성으로 구현되는 과정을 전반적으로 볼 수 있는 과정이 교차편집되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이 제작/기획자들이 구현하고자 하는 책이라는 것의 실제적인 제작 과정을 함께 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좀 더 구체화하여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국내외 여러 아트북페어 행사의 모습들도 함께 볼 수 있었습니다. 2019년 저희도 참가한 <언리미티드에디션 11>의 현장 모습도 볼 수 있어 반가웠고, 저 때 참가한 사람들은 과연 코로나 대유행을 예상이나 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습니다. 감염병의 걱정 없던 시절의 활기찬 국내외 아트북페어 행사를 보며, 그리고 각자의 현안과 고민을 각자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제작자들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제작의 근간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어떤 이야기를 담아내고 보여주기 위해 우리는 책이라는 것을 선택해 만들고 있는 걸까? 등 스스로를 향하는 다양한 질문을 이어가며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시청하였습니다. 물론 영상을 밀도 있게 관람하는 동안에도 주차비는 밀도 있게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사실 검은 암막 커튼 이후, 프로젝터 영상 관람 이후의 세상에서는 ‘흰 장갑’에 의지해야만 했습니다. 뉴욕과 파리에서 직접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실물 아티스트북을 전시장 직원분의 소개를 통해서만 관람이 가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보고 싶은 도서가 있으면 도슨트분께 요청을 해 직접 펼쳐주시는 모습을 관람하고, 직접 설명해 주시는 정보를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마음껏 자유롭게 보지 못한다는 점이 감질나긴 했지만, 책의 외형이나 내지 그리고 전반적인 감상을 하는 데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혼자 봤으면 몰랐을 내용들도 자세한 설명과 함께 볼 수 있어 어쩌면 더 유용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Printed matter(뉴욕), 미디어버스(서울), Westreich Wagner(뉴욕), Three Star Books(파리)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아티스트북을 (도슨트분께는 죄송했지만) 대부분 관람하였습니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를 소개해 보자면,
얼마 전 타계한 John Baldessari의 유작 <Nose Peak>은 인간의 코를 책 내부에 형상화하여 책장을 넘기는 행위를 할수록 그 코의 형체가 점점 더 뚜렷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작가는 이를 통해 어떤 걸 말하려 했는지 따라가는 과정이 사실 쉽진 않았습니다. 물론 예술이라는 것이 창작자의 의도와 별개로 수용자의 독립적인, 개별적인 방식으로 이해되어 다양한 해석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작가의 마음을 알고 싶었습니다. 이후 이 코가 러시아 작가 ‘고골'의 코를 상징한다는 캡션과 설명을 듣고 나자, 동명의 그의 단편이 떠올랐고 이후 이 책이 의미하는 바를 어렴풋하게나마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Maurizio Cattelan의 <Three Volume set>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인쇄된 것처럼 보이는 한 장 한 장이 사실 모두 손으로 그리고, 쓴 작업물이라는 데에 놀랐습니다. 마치 무한상사의 정 과장이 생각나기도 했던 이 작업물은 ADHD 성향이 있는 저 같은 사람은 시도는 해보겠지만 절대 마무리는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작품이었습니다. 작가의 자전적인 내용이 담겨있는 3권의 책이 엮여 있었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사진(사실 그림)과 문자(사실 손글씨)들이 가득했습니다.
박형진 작가의 <까마귀와 까치>도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색채표와 같아 보이는 그의 작업은 사실 하루하루 기록으로 남긴 색채 일기였습니다. 6개월간 매일 바라본 오동나무의 색을 그때의 감상을 담아 모두 기록한 이 작업은 작가가 지나온 시간과 그때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어 무척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이었던 작업은, Elvire Bonduelle의 <SO FAR SO GOOD>이었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독창적인 타이포를 패브릭이나 종이에 인쇄하여 자신만의 미감을 선보이고 있었습니다. 일상의 다양한 사물에 디자인적으로 잘 적용될 수 있겠다 생각하며 특히 전등갓에 입혀보면 어떨까 생각하는 와중에, 캡션을 통해 전등 디자인으로 이미 출시가 되었다는 내용을 본 순간은 약간 오늘 총 두 번의 소름 모먼트 중 하나였습니다. (물론 다른 하나는 주차 정산 모먼트였습니다.)
사실 Elvire Bonduelle의 작업은 전시장 입구 쪽 도서 전시/판매 공간에 설치된 스탠딩 스크린에서 먼저 볼 수 있었습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온 뒤에야 해당 영상이 그녀의 작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작품을 보고 나자, 영상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관련 영상을 보고 싶으신 분은 https://threestarbooks.com/ELVIRE-BONDUELLE-SO-FAR-SO-GOOD 여기를 참고해 주세요)
미디어버스의 전시 공간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마침맞게 좋은 날씨로 인해 한 면을 가득 채운 창을 통해 해운대 바다가 널리 보였습니다. 푸른 하늘과 짙은 바다색과 더불어 녹색의 전시 공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해수욕을 하는 사람과 전시를 보는 사람. 어쩌면 부산만이 가진 매력적인 특징이 아닐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