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레시피 ep.006

기묘한 뱅쇼

by 김묘한
마음 어딘가 애잔하게 뚫려있던 작은 구멍에 따뜻한 온기를 채워주는 기묘한 뱅쇼
KakaoTalk_20231211_153626566_22.jpg 따뜻하고 향기로운 뱅소-

마리아쥬라는 게 음식과 와인의 좋은 밸런스를 이야기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음악, 영화, 책이 주는 무드, 혹은 날씨와 꼭 맞는 짝꿍을 찾아도 굉장한 마리아쥬가 아닐까 싶다.

흙 맛 나는 공기를 일주일째 마시다 어제의 퇴근길은 그럼에도 유난히 맑고 예뻤다. 구름도, 별도, 구름에 반쯤 가려진 달도 그렇게 예쁜 하늘을 구경하다 으슬으슬 오신 한기에 따끈한 뱅쇼가 몹시도 당겼다.

향신료 러버에 와인 러버인 내가 뱅쇼를 싫어할 리는 만무하지만 시중에서 판매하는 뱅쇼를 절대 마시질 않는데, 가장 큰 이유는 입맛에 안 맞고(보통은 너무 달다), 더 큰 이유는 시트러스류 과일의 필(껍질)이 뱅쇼의 생명인데 보통은 수입산인 그 과일들에 묻어 있을 농약이나 왁스 등을 제대로 세척했을 거라 믿지 못하는 나의 오만한 불신이다.

그 불신은 나를 주방에서 살게 한다. 얼마 전에 배운 단어인 '니팔니꼰'이 딱 맞는 나의 하루하루는 그렇게 으슬으슬한 몸을 이끌고 굳이 한밤중에 뱅쇼를 끓이게 만들었다.

마침 내게는 제주에서 온 친환경 레몬과 천혜향, 한라봉, 귤이 잔뜩 있었고, 달콤한 사과와 내가 좋아하는 온갖 향신료와 허브가 있었다. 이제 '집에 대체 이게 왜 있냐'라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뱅쇼를 한 솥 끓여 한 잔 덜어내고 소파에 앉았는데, 오랜만에 겨울비가 내렸다. 이럴 줄 알고 끓였나 싶게. 그리하여 이날의 마리아쥬는 겨울비와 겨울왕국2.

부족했던 비타민 잔뜩 충전하여 삼 년 정도는 감기가 들지 않을 맛, 몸을 따뜻하게 도와주는 효능의 온갖 향신료들은 제 역할을 충실히 하여 몸뿐 아니라 마음 어딘가 애잔하게 뚫려있던 작은 구멍에 따뜻한 온기를 채워주었던 기묘한 뱅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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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뱅쇼>

재료: 레드 와인, 친환경 사과, 친환경 시트러스류 과일(오렌지, 천혜향, 한라봉, 레드향, 귤 등), 친환경 레몬, 생강, 시나몬 스틱, 정향, 스타 아니스 (팔각), 감초, 바닐라빈, 생 타임, 생 로즈마리, 다시백, 베이킹 소다, 빈 병


+ 꿀

* 비율- 레드 와인 1병(750ml) : 사과 1개 : 오렌지 1개(or 천혜향 2개 or 귤 8개) : 레몬 작은 것 1개 : 생강 1 개 : 시나몬 스틱 1개 : 정향 2알 : 스타 아니스 1개 : 바닐라빈 껍질 1개 : 생 타임 3~4줄기


1. 빈 병을 미리 소독하고 말린다.

2. 과일을 베이킹소다나 식초를 푼 물에 담구어 깨끗이 세척한다.

3. 사과는 씨를 빼고 껍질을 포함한 과육만 쓴다.

4. 시트러스류 과일들은 쓴맛이 나는 양 끝을 제거한다.

5. 레몬 역시 양 끝과 씨를 모두 제거한다.

6. 모든 과일과 생강은 슬라이스한다.

7. 큰 팟에 6, 와인을 붓고 바닐라빈을 넣어 중불에서 끓인다. (5~10분)

8. 와인이 끓으면 뚜껑을 조금 열어 약중불에서 끓인다. (2~30분)

9. 정향, 팔각, 시나몬 스틱, 로즈마리, 생 타임 등을 넣은 향신료와 허브를 다시백에 넣는다.

10. 불을 끄고 9의 다시백을 넣고 뚜껑을 닫는다.

11. 1~20분 뜸 들이듯이 향이 배이도록 둔다.

12. 식으면 건더기를 건져낸다. (*** 이 건더기가 또 다른 마법을 부린다. 다음 레시피에서~)

13. 1에 뱅쇼를 부어 냉장고에서 보관한다.

14. 먹을 만큼 데우고 시나몬 스틱이나 레몬 슬라이스, 생 허브 등을 장식하여 서브한다.

15. 단 맛을 원한다면 먹기 전에 꿀을 넣는다.

- 레드 와인은 드라이, 스위트 관계없다. 단 맛은 꿀로 조절한다.

- 껍질을 모두 쓰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친환경 과일을 쓴다. 하다보면 과일 세척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든다는 것을 알게된다.

- 친환경 과일을 구하지 못했다면 사과나 귤 같은 국산 과일은 베이킹 소다로 겉을 닦은 뒤 베이킹 소다나 식초를 푼 물에 담가두어 세척한다.

- 레몬이나 오렌지 같은 수입 과일은 위의 과정을 두세 번 반복한 뒤 끓는 물에 통째로 2~30초 데친다. 찬물에 담그고 굵은소금으로 다시 세척한다.

- 내 몸에 들어가는 음식, 꼭 세척 과정에 진심이길...

- 사과나 시트러스류 과일들은 맛으로도 와인과의 밸련스가 좋지만, 겨울철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을 풀충전하기에 훌륭한 재료들이다. 특히 시트러스류 과일 껍질에는 소화나 호흡기에 좋은 영양소들이 풍부하다. 정향은 위장을 보호하고 소화에 도움을 주며, 시나몬 스틱, 팔각은 감기나 호흡기 질환에 좋은 약재이다. 타임은 방부작용도 하지만 빈혈이나 피로회복에도 좋은 허브이다. 이런 천연 약재들은 잘 쓰면 훌륭한 약이지만 과하게 쓰거나 잘 못 쓰면 독이 되기도 한다. 본인의 몸에 잘 맞게 적당히 사용하여 겨울철 면역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 향신료가 몸에 맞지 않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은 뱅쇼를 기본적으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취향에 따라 넣는데, 개인적으로 향신료 러버이므로 정향과 스타 아니스, 시나몬 스틱은 직구를 통해 유기농을 사용한다. 저렴한 중국산 향신료와 비교해 보면 향의 깊이가 차이가 크다. 직구가 어렵다면 정향이나 시나몬 스틱은 한국 대형마트에서, 스타 아니스(팔각)는 중국 마트에서 구할 수 있다.

- 바닐라빈 껍질과 생 허브는 기묘한 뱅쇼의 킥이다. 킥은 안 써도 되지만 말 그대로 다른 레시피와는 절대적으로 다른 맛을 내는 나만의 비밀 재료이다. 나는 베이킹을 많이 하기 때문에 바닐라빈을 종종 쓰는데, 껍질을 모아 냉동실에 보관하여 이럴 때 사용한다. 허브는 생 타임이 이질적이지 않게 가장 안정적인 향을 낸다. 건조 월계수잎은 너무 강하고, 파우더리한 건조 허브들은 절대 본연의 향을 내지 못한다.

- 사용하는 와인, 과일 등의 당도에 따라 만든 뱅쇼의 단 맛이 결정될 것이다. 단 맛이 필요하다면 꿀을 넣는데, 끓이는 과정에서 꿀을 넣으면 꿀이 가진 좋은 영양소들이 파괴되므로 꼭 먹기 직전에 더한다. 설탕으로 단 맛을 내는 것도 가능하지만 꿀이 주는 풍미가 아주 훌륭하다.

- 많은 사람들이 잼이나 청을 힘들게 만들어 놓고 빨리 상하는 바람에 고민하는데, 보통은 빈 병 소독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일이다. 뱅쇼를 만들 때는 소독한 빈 병 대신 재료로 사용했던 레드 와인의 빈 병을 소독과정 없이 그대로 이용하면 편하게 보관할 수 있다.

* 정말 귀찮다면 사과만 넣고 시트러스류 과일은 유자청, 모과청 등으로, 생강은 생강청으로 대체하여 만든다. 깊은 맛을 내긴 어렵지만 충분히 근사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KakaoTalk_20231211_161526735.jpg 근사한 음료-
KakaoTalk_20231211_155926545.jpg 디저트 음료로도-
KakaoTalk_20231211_155531957_28.jpg 크로플, 떡과도 잘 어울려요.
KakaoTalk_20231211_155531957_26.jpg 시나몬 스틱으로 저어서 더 은은한 향기를 내요.
KakaoTalk_20231211_155531957_23.jpg 껍찔까지 다 넣으니, 좋은 재료들로-
KakaoTalk_20231211_155531957_19.jpg 작은 향신료들은 건져내기 쉽게 다시백에 넣어 퐁당-
KakaoTalk_20231211_155531957_15.jpg 재료에 얽매이지 말고, 그때그때 있는 것들로-
KakaoTalk_20231211_155531957_05.jpg 단 맛을 위해 파인애플도 넣고-
KakaoTalk_20231211_153626566_14.jpg 포근-
KakaoTalk_20231211_153626566_21.jpg 향긋-
KakaoTalk_20231211_153626566_18.jpg 따뜻-
KakaoTalk_20231211_153626566_17.jpg 달콤-
KakaoTalk_20231211_153626566_09.jpg 이날은 귤과 천혜향을 잔뜩-
KakaoTalk_20231211_153626566_08.jpg 가지런히-
KakaoTalk_20231211_153626566_06.jpg 이날은 생강청을 만들고 건져낸 생강을 넣고-
KakaoTalk_20231211_153626566_03.jpg 친환경이어도 세척은 깨끗이-
KakaoTalk_20231211_153626566.jpg 이날은 좀 소소하게-
KakaoTalk_20231211_153626566_15.jpg 모두가 따뜻한 연말 보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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