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레시피 ep.007

기묘한 단호박슾

by 김묘한
보고 싶다. 보면 참 좋겠다.
KakaoTalk_20231211_154501366_07.jpg 노오랗게 예쁜 단호박슾-

스프는 아프다.


스프를 만든다는 것은 시간을 내어야 하고, 정성을 들여야 하고, 온전한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얘기한다. 재료를 손질하고, 끓이고, 졸여가는 과정. 그렇게 만들어 낸 음식은 먹는 사람이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깊은 울림이 있다. 적어도 난 그렇게 믿는다. 내게 스프란 소울푸드이다.


아침저녁으로 늘 엄마의 따뜻한 집밥을 드셨던 아빠는 항암치료 시작과 동시에 그 무엇도 드시지 못했다. 암 환자에게 좋은 음식 따위는 고사하고 사탕 하나로 하루를 나기도 하면서 점점 야위어져만 갔다. 음식을 씹는 행위 자체가 에너지 소비가 되니 먹는 것 자체가 고된 일이었다. 그래서 끼니 대용으로 후루룩 마실 수 있는 음료나 슾을 그렇게도 많이 만들었다.


온갖 국물 음식을 만들어도 보았고, 심지어 라면 국물도 드렸다. 아빠가 그중 가장(그나마) 좋아하셨던 건 나의 단호박 슾이었다. 단호박 슾을 드시고 기력이 살아나서부터는 버섯 크림 슾도 감자 슾도 토마토 슾도 드셨다. 그렇다고 매번 같은 레시피의 단호박 슾을 해드릴 수는 없었다. 한 번은 생크림, 한 번은 코코넛 밀크, 한 번은 견과류를 넣고, 한 번은 당근을 넣고... 새로움을 주기 위해 이런저런 향신료도 써보았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한여름에는 살얼음 지게 차갑게 만들어 스무디처럼 달콤한 디저트로도 드리고,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드는 한겨울에는 따뜻하게 데워 부드러운 빵을 적셔 슾으로도 드렸다. 그렇게 탄생한 나의 단호박 슾은 그래서... 아프다.


그렇게 단련된 나의 스킬은 고스란히 므슈에게 그 혜택이 돌아갔다. 간을 하지 않은 그 슾을 녀석은 계절이 바뀌어 면역이 쉽게 떨어지는 즈음 시원하게도 따뜻하게도 먹어가며 기력을 유지했다. 당근, 사과, 파프리카, 브로컬리, 그리고 견과류 등을 넣어 더욱 건강하고 맛있게-


그들이 떠난 후 한 번도 만들지 않았다 그렇게 지겨울 만큼 엄청나게도 끓여댔다. 꼴도 보기 싫은 음식. 보면 아픈 음식. 하지만 그리운 음식. 그리고 고마운 음식.


보고 싶다. 보면 참 좋겠다. 하얀 눈이 예쁘게도 내려앉은 맞은편 산을 바라보며 그렇게 오랜만에 노란 단호박 슾을 끓였다.


<기묘한 단호박 슾>

재료: 친환경 단호박, 우유(생크림), 시나몬 스틱, 소금


+ 시나몬 파우더, 넛맥

+ 사과, 당근, 고구마

+ 꿀 or 메이플 시럽

- 비율: 단호박 1 : 우유 1 : 생크림 0.3


1. 단호박을 찐다. (당근이나 고구마를 첨가하려면 이때 함께 찐다.)

2. 1이 익으면 한 김 식힌 뒤 재료가 거의 잠길 정도로 우유를 넣고 시나몬 파우더, 넛맥 등을 더해 믹서에 갈아낸다.

3. 2에 생크림과 시나몬 스틱을 넣고 뭉근하게 한 번 더 끓인다.

4. 플레이팅 하고 시나몬 파우더를 한 번 더 뿌린다. (당근, 사과를 넣었다면 체에 꼭 걸러낸다.)

5. 단 맛이 부족하다면 서브 직전에 꿀을 더한다.


- 영양가 높은 단호박 껍질을 함께 섭취하기 위해서는 국산 유기농 단호박을 쓰자.

- 유기농 단호박을 구하기 어렵다면 껍질은 제거한다. 색은 더 예쁜 노란빛이다. :)

- 단호박과 잘 어울리는 사과, 당근, 고구마 등을 함께 쓰면 향과 맛이 좋아진다.

- 단 음식은 소금 간으로 단맛을 극대화한다. 설탕을 쓰지 말자. 원한다면 먹기 전에 꿀 조금.

- 단호박과 시나몬, 넛맥 등은 궁합이 좋은 재료들이다. 향신료와 친해지면 맛의 세계가 넓어진다.

- 우유, 생크림 대신 코코넛 밀크나 아몬드 밀크를 써도 좋다.

- 믹서에 갈아준 재료를 체에 걸러주면 보기도 먹기도 훨씬 좋아진다.

- 냉장고에 차게 보관하여 먹으면 달콤하고 부드러운 디저트가 된다.

KakaoTalk_20231211_194336669_02.jpg 가만 들여다보면 참 예쁘다.
KakaoTalk_20231211_194336669.jpg 영양가가 많은 껍질까지 쓰기 위해 되도록이면 친환경을 쓴다.
KakaoTalk_20231211_154501366_09.jpg 껍질까지 쓰면 컬러감은 좀 탁해질 수 있지만, 충분히 감사하게 예쁜 노랑이다.
KakaoTalk_20231211_154501366_08.jpg 이날은 단호박이 달지 않아 메이플 시럽을 뿌렸다.
KakaoTalk_20231211_154501366_06.jpg 더 맛있어지게 노랑 스푼으로 먹어야지-
KakaoTalk_20231211_154501366_04.jpg 시나몬 파우더 잔뜩-


KakaoTalk_20231211_154501366_03.jpg 진노랑의 단호박슾-
KakaoTalk_20231211_154501366_02.jpg 기묘한 소다브레드 (기묘한 레시피 ep.008)와 함께-
KakaoTalk_20231211_154501366.jpg 근사한 마리아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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