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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묘한 Jun 19. 2024

기묘한 레시피 ep.056 & 와인 페어링

기묘한 빌드업 수육

중국인 친구에게 하우스 파티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다.


동거를 하던 중국인 커플이었는데, 큰 테이블 제일 상석에 여자친구가 앉았다. 남자친구는 우리가 들어간 이후부터 그 집에서 나오는 순간까지 쉴 새 없이 음식을 해다 나르고, 술을 내고, 재떨이를 비웠다. 쌀로 만들었다는 머리가 띵하도록 달던 디저트까지 내주고도 그는 쉴 틈 없이 분주했다. 그가 며칠을 준비했다는 요리 중 하나는 돼지뼈를 푹 고아 만든 슾이었는데, 난 안타깝게도 먹을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에도 돼지뼈를 고아 만든 요리들이 있지만, 우리와는 다른 향신료와 요리법 때문인지, 그가 훌륭한 셰프가 아니었던 탓인지 모르겠지만, 난 당최 삼킬 수가 없었다.


돼지고기 육수라고 하면 그 이후로 먹질 못했다. 그 비릿한 냄새와 미끄덩한 국물의 식감과 질감은 날 혼미하게 했고, 그래서인지 수육도 삼겹살로 만든 수육은 힘들어했다. 므슈가 내게 온 것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지방이 적은 앞다리나 뒷다리, 사태 등으로 만든 수육으로 녀석과 나는 몸보신을 하곤 했으니까.


어느 날 동친 형부의 초대로 식사를 했는데, 형부는 늘 그렇듯이 다양한 음식으로 우리를 배불리 먹였다. 그중 하나가 수육이었는데, 그걸 다 먹고 난 후 우리 앞에는 국수가 놓여있었다. 육수 끓이는 걸 못 봤는데, 이 감칠맛 폭발하는 국물은 뭐람...


형부는 갖은 채소 등과 함께 고기를 삶아 우리에게 수육을 내주고, 그 육수로 국수까지 삶아 내어준 것이었는데, 난 그때 새로운 세상을 맛보았다. 돼지뼈 육수 이후 절대 못 먹었던 돼지고기 육수(물론 뼈로 고아 낸 육수와 고기로 낸 육수는 아주 많이 다르다.) 베이스를 너무나도 맛있게 먹은 뒤, 난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어 냈다.


내 스타일대로 기름기가 적은 부위의 돼지고기를, 삶은 육수를 다른 요리로 쓸 테니 무항생제로 쓰고, 너무 비릿해도 안 되지만, 적당한 감칠맛과 풍미를 줄 수 있는 다양한 재료들과 향신료들을 더해 만들어낸 기묘한 수육. 이것은 어떤 음식을 배불리 먹여도 마지막에는 늘 라면을 찾는 나의 친구들(우리만 그래요?)을 위해 시원한 된장 국수를 끓이기 위한 빌드업 요리이다. 특히 김장이나 겉절이를 했다면 꼭 만들어야 하고, 특별히 가리는 사람 없이 다 같이 신나고 배부르게 먹기 참 괜찮은 음식이다. 따뜻한 국물 요리를 할 예정이니, 요즘같이 추운 날 아주 잘 어울리고. 연말, 소중한 사람들과 소박하지만 따스한 요리를 만들어보자. (지난 겨울에 쓴 글이다.)


* 팬데믹 2년간 엄마이자 시엄마 같은 마음으로 우리를 거둬먹여 주고, 여전히 그래주는... 인류애 말고 酒류애를 가진, 나의 형부이자 동친인 형동 님께 이 레시피를 바칩니다. (분명 레시피 말고 리얼 음식을 내놓으라고 하시겠지만...)


<기묘한 빌드업 수육>


재료: 무항생제 돼지고기 앞다리 1kg, 디포리 1/2줌, 국물용 멸치 1/2줌, 다시마 크게 하나, 대파 1대 (흰 부분), 양파 반 개, 무 1/3개, 당근 1조각, 샐러리 밑둥 1조각, 말린 표고버섯 한 줌, 통마늘 한 줌, 팔각 1개, 정향 2개, 월계수잎 2개, 통후추 1 Ts, 된장 2 Ts, 다시백 큰 것 2개, 다시백 작은 것 1개, 요리용 실


1. 팔각, 정향, 월계수잎, 통후추를 작은 다시백에 넣고 요리실로 묶는다.

2. 디포리, 멸치를 큰 다시백에 1과 함께 넣어 요리실로 묶는다.

3. 대파, 양파, 샐러리, 통마늘을 다른 큰 다시백에 넣고 요리실로 묶는다.

4. 건지기 쉬운 다시마와 푹 삶아서 먹을 무, 당근, 표고를 큰 팟에 넣는다.

5. 돼지고기를 흐르는 물에 씻고 4에 넣는다.

  - 육향을 많이 거북해 한다면 찬물에 1~20분 정도 담근 후 쓴다.

6. 2,3을 4에 더하고 물을 재료 부피의 2.5배 정도 넣는다.

7. 뚜껑을 닫고 센 불에 끓이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된장을 풀어 더한다.

8. 뚜껑을 열고 중불에서 40분을 더 삶는다.

9. 불을 끄고 뚜껑을 닫아 10분을 뜸 들인다.

10. 다시백 두 개와 다시마를 건져낸다.

11. 고기를 먹기 좋게 썰어 서브한다.

기묘한 와인 페어링: 다양한 향신료와 채소, 된장의 조합으로 삶아진 돼지고기 수육은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넘친다. 우리에게 익숙한 된장의 향은 중식에서 많이 쓰는 팔각이나 정향 같은 향신료에 묻히게 되지만 그렇다고 그 향들이 이기적으로 돋보이진 않는다. 한 가지 요리에서도 우리는 밸런스를 필요로 한다. 적당한 양의 향신료가 주는 그 깊지만 산뜻함은 경험해 보지 않는다면 알 수 없다. 한식과 중식, 양식 그 어딘가의 이 기묘한 수육에는 독일리슬링이 아주 근사한 페어링을 낸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샤르도네나 소비뇽 블랑과 함께 3대 화이트 와인 품종이 드는 리슬링, 그중에서도 독일 모젤 지역의 리슬링은 토양의 산도가 낮아 아주 섬세하면서도 프레쉬한 미네랄리티, 가벼지만 풍부한 바디감, 잘 익은 핵과류와 흰 꽃, 은은하게 풍기는 허브 등의 다채로운 향이 주는 즐거움이 가득한 와인이다. 다른 지역의 무거운 바디감의 리슬링보다 기름기가 많은 부위의 수육이 주는 기름짐 없이 담백한 기묘한 수육과 잘 어울리는 이유다. 참, 스윗한 리슬링이 아닌 드라이한 리슬링으로 고르는 것, 잊지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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