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독일군에게 무참하게 짓밟힌 2차 세계대전 초반을 배경으로 한 영화 [스윗 프랑세즈]는 2015년 공개된 영화로서 이렌 네미로브스키의 소설《프랑스풍 스위트》를 원작으로 한다. 네미로프스키는 유럽의 부유한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나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녀는 사후 반세기가 지나서야『프랑스풍 스위트』원고가 발견되면서 재조명되기 시작한 작가다.
《프랑스풍 스위트》이 작품은 나치의 프랑스 점령 당시 쓰인 책으로 미완성으로 남았다. 인간의 나약함과 끝없는 갈망에 대한 예리함이 돋보이는 인간성의 승리를 풀어낸 섬세함까지 갖춘 소설이라 평가받는다.
2차 세계 대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무수히 많다. [쉰들러 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제이콥의 거짓말], [건지 감자 껍질 파이 북클럽]등 다 내 가슴 한 켠에 자리한 명작들이다. 그중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는 홀로코스트 유대인 영화 중 가장 가슴 졸이게 했고 그만큼 슬프고 가슴 아팠던 영화다.
주인공인 유대계 피아니스트 스필만이 굶주림과 추위를 이기며 폐건물에 은신해 있던 중 독일 장교에게 발각된다. 그의 앞에서 온 영혼을 손끝에 실어 지상에서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피아노 연주를 한다.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듣는 쇼팽 발라드 1번의 불안과 우울의 톤은 전쟁의 참상이 보여주는 암울함과 잘 어우러진다. 그러면서도 뒷부분으로 갈수록 맑은 선율 속에서 자유가 느껴지는 것도 같다. 유대인들이 나치의 학살에서 벗어나리라는 희망을 암시하는 장면 같아 울컥했다. 잔인한 전쟁터에서도 예술의 숭고함은 건재함을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영화[피아니스트]가 인간의 잔인함을 목도하며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자문하게 했던 영화라면 영화[스윗 프랑세즈]는 결이 조금 다른 영화였다. 전쟁 속에서 피어난 아름답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슬프고 가슴 먹먹한 사랑의 영화랄까.
프랑스의 ‘뷔시’라는 작은 마을에서 남편을 전쟁터로 떠나보내고 돈만 아는 냉정한 귀족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루실(미셸 윌리암스). 독일군이 이 마을을 점령하게 되면서 그녀가 살고 있는 저택에도 독일군이 묵게 된다. 루실의 집으로 배정받아 온 독일 장교 브루노(마티아스 쇼에나에츠)는 참전하기 전엔 작곡가였다. 밤마다 브루노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루실은 위로받는다. 그녀도 음악 전공자였던 것. 브루노와 루실은 그렇게 음악을 통해 서로 가까워진다.
마을에서는 예기치 않은 사건이 발생하고 그 와중에 독일군에 쫓기는 마을 사람을 탈출시키기 위해 용기를 내는 루실, 루실의 부탁으로 그녀에게 통행증을 만들어주지만 부하의 함정으로 위험에 처한 루실을 뒤쫓아가는 브루노. 서로의 마음을 알면서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건네보지 못한 두 사람의 마지막 장면은 정말 애틋하면서도 안타까웠고 또 많이 슬펐다.
[스윗 프랑세즈]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던 여자 주인공이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자기 안에 내재되어 있던 용기를 발견하며 성장해가는 모습이 인상적인 영화다. 로맨스 영화 그 이상의 여운을 준다. [스윗 프랑세즈]는 ‘프랑스 조곡’이라는 뜻으로서 영화 속에서 독일 장교 부르노가 작곡하고 연주하는 피아노곡 제목이다. 영화는 격동의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각자 가진 인간적 단점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을 통해 극한 상황 속에서 개인과 가족들 삶의 겉과 속 풍경을 보여준다.
인간의 본성을 알려면 전쟁을 하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만큼 극한의 상황이 되어보기 전에는 인간이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다.
우리는 전쟁 영화를 보면서는 대체로 감정 이입을 하기 어렵다. 감정 이입을 못하게 되면 관객들은 생각이라는 걸 하게 된다. '전쟁은 왜 일어날까', '전쟁에서 인간성은 어떤 방식으로 파괴되는가' 등 등장인물 안에서 그 역사성을 고찰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낯설게 하기 효과’라는 것인데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독특한 방식으로 사회 현실을 비판하는 관점에서 발전시킨 희곡 이론이다.
‘소외 효과’라는 극작 기법을 '낯설게 하기'로 바꾸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미학적 개념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객관적 세계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즉 그동안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이야기를 비판적으로 다시 보게 하는 것이다.
관객들은 ‘낯설게 하기 효과’를 통해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작품에 대해 단순한 감정적 카타르시스가 아닌 냉철한 판단을 하게 되고 더 나아가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갖게 된다. 감정 이입은 브레히트 이전까지 서구 미학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경계하면서 그것의 또 다른 미학적 효과로서 낯설게 하기 개념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 등장인물에게 쉽게 감정 이입이 되는 영화는 그것이 끝나면 금방 효과가 사라진다. 브레히트는 관객이 영화를 볼 때 감정 이입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효과를 중요시했다. 전쟁은 왜 일어나는지 차가운 이성으로 생각하고 비판하며 사회를 변혁시켜 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적 삶 속에서 친숙하게 느끼는 자본주의적 사회 배경이나 역사,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해 아주 당연한 것인 양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간다. 그러나 예술 작품을 보면서 거리두기 효과를 통해 현실을 비판할 수 있는 마르크스적 사유가 필요할 때가 있다.
전쟁 영화를 통해 잔혹하게 변해가는 인간 군상들과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우리는 인간을 좀 더 냉철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또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는 게 맞는 것 같다. 나만 보더라도 전쟁 영화만 보고 나면 한동안 인간 본성이나 선과 악에 대한 화두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생각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관객은 이처럼 영화를 감상하는 그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중층적으로 등장인물을 바라보게 되면서 인간의 무의식적인 그림자들을 상당히 많이 읽어낼 수 있게 된다. 의식을 가진 예술가들의 철학적 사유를 통해 관객 역시도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지금까지 당연시하던 것을 전혀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새롭게 인식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점진적인 변혁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술이 갖는 힘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