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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임 Jun 26. 2023

너의 화는 내가 받아줄게. 5

산천 요리생 .....

“그리야. 그리야! 칼날 안쪽 면과 재료를 잡은 손 사이로 보이는 재료의 면을 자르면 칼이 흔들고 크기도 알 수 없어."

"재료를 잡은 손가락을 구부려 칼 안쪽 면에 붙이고 바깥쪽에 튀어나와 있는 크기를 가늠해서 자르는 거야.” 그리의 무를 잡은 손과 칼을 잡은 손을 위에 내 손을 올리고, 하나씩 다시 설명해 나갔다. 뒤에서 보면 난 아주 친절한 선생님으로 보이겠지.


작년 ‘요리 축제’ 참가 후, 아이들과 우리 집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를 했다. 같이 솥 밥을 짓고, 김치찌개를 끓이고, 숯을 피우고, 고기를 구웠다.

3일간, 부스에서 아이들이 개발한 음식을 만들어 판매를 하기까지, 길고 길었던 6개월간의 여정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그리가 나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선생님, 내년에 칼 쓰는 법 다시 배우고 싶어요. 다지기는 생각이 나는데 다른 건 생각이 안 나요.”


난 몹시 놀랐다. 그리가 이리도 기특한 의견을 낼 줄이야!

"아니에요. 할 말 없어요. 생각이 안 나요. 생각해 보고 얘기할게요."라며 나와의 대화를 피하던 그리가 처음으로 자기 의견을 냈다.

하긴 축제 기간 동안 유난히 말이 많아져 은근슬쩍 피해 다니기도 했던 일이 떠오른다.

“당연하지, 만약 내년에도 동아리가 유지된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알려줄게. 걱정 마!”


모르는 사람들은 ‘이건 무슨 소리! 다지는 것밖에 모른다면서 어떻게 요리 축제에 나갔지! 6개월이라며’라 겠지만,

난 ’됐구나 됐어!‘라 탄성을 지르고 싶었다.

그리, 이 아이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이 처음 생겼다.


옛날에 그리는

짜장면을 먹고 싶어 만든 요리 동아리에 그리가 있다.

말을 걸어도 대꾸를 안 하고 생각만 하는 녀석이다. 처음엔 쑥스러워서 그러나, 말수가 적어 그러나 답답하던 차에 여러 번 선생님들께 혼나고 있는 그리를 보았다. 오늘도 주먹다짐이 있었나 보다.


하루는 기가 (가정·기술) 선생님 앞에서 울음을 참으려 하지만 눈물과 콧물이 새어 나오는 그리의 얼굴을 못 본 척하려 했다.

그리의 얼굴근육이 어찌나 격렬하게 움직이는지, 눈은 같이 싸웠던 놈을 생각하며 째리고 있었고, 부들거리며 불끈 쥔 주먹은 ‘이 잔소리가 끝나면 달려가겠어.’라는 듯 다리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학교에 가장 젊은 남자 선생님인 기가 쌤이 그리에게 타이르는듯한 훈계를 이어가며 주먹다짐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으려 했지만 그리가 말을 안 한다.

닫힌 그리 귀 주변에서 기가 쌤 말들이 흩어져 없어지고 있었다.

내가 말할 때도 안 듣는구나…. 그래서 대답하지 못하는 거였다.


“기가 쌤, 그리가 자주 싸워?” 그래도 진로 체험을 시작하면서부터 몇 년을 보던 사이라 편하게 물어봤다.

“네. 오늘은 발길질까지 오고 갔다네요. 평소엔 순한데 한번 화가 나면 통제가 안 돼요.”


요리라는 것이 생각보다 흉기가 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이 쓴다. 예를 들어 칼, 가위, 뜨거운 물과 기름 등과 같은 기구들과 재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보조 선생님을 지원받을 수 없으니, 동아리 담당 선생님(난 회계와 하교만 책임지면 된다고 말을 했지만)과 수학 선생님(나는 동아리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했지만 네가 날 불러들였으니 책임지라고)께 수업 참여를 부탁했었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생각하는 동아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 노력했다.


 나를 요리동아리에 끌어들인 수학 쌤에게 찾아갔다.

그리는 언제부터 화를 통제 못 하기 시작한 거야?”

“무슨 문제가 있어요?”

문제가 있지, 흉기로 가득한 주방에서 화를 주체 못 하는 사람, 특히 아직 통제력이 부족한 학생은 주의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아이가 동아리에서 탈퇴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정보는 필요하다 설명했다.


수학 선생님은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는 구개열로 초등학교 때 수술을 2번 받았다. 한참 말을 많이 할 나이였는데 부끄러움에 말을 안 하고, 수술 후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없어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훈련이 안 되어있는 상태라고 했다. 아버지는 배 만드는 곳에서 기술자로 일하시다 크게 다쳐 이 마을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고 한다. 외국에서 시집온 엄마는 지금 옆 마을에서 식당을 하고 있고 집에는 가끔 들리시는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2살 정도 많은 누나가 있고 아주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동생과 식구들에겐 관심이 없고 말도 섞지 않아 그리와 누나는 사이가 안 좋다고 다.

와우~ 세상에, 세상엔 행복한 사람들도 많은데 왜 내 주위엔 이런 일들이 많은 거지?


조리실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준비는 안 하고 장난만 치고 있었다.

“주방 사용 시 주의 사항 읽어봤어?”

눈을 말똥 거기만 했다.

“오늘부터 한 번씩 더 읽고 시작한다.”

“얘들아, 오늘은 10시 전에 집에 가자. 제발”

“저희 늦게 가도 뭐라고 하는 사람 없어요.”

“선생님은 일찍 가고 싶어.”


사실 처음엔 한 달에 1번, 2시간 수업을 정하고 시작했다. 그러다 주에 2시간으로 늘어났다. 아이들은 2시간 안에 재료 준비도 끝내지 못했다. 재료를 다 준비해 주었고 다듬고 까면 될 수 있게 했다. 그래도 2시간 안에 수업을 끝낸다는 건  무리였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난 아이들에게 준비부터 마무리 청소까지 아이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아무리 짜장면이 먹고 싶어 만든 동아리지만 너희들이 만들었으니 책임을 져라.”

"난 너희들의 동아리를 도와주러 온 사람이다."

3시 반에 시작하던 수업을 4시에 시작하기 시작했다. 수업 전 30분을 아이들에게 주었다. 쌀 씻어 불리고, 마늘·양파 까고, 테이블 정리해서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정리해 놓는 것까지가 아이들끼리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4시부터 처음 보는 재료 준비 과정을 설명하고 솥 밥하는 것을 지켜보고 썰고 만들기 시작한다.


써는데 2시간,

그리는 어른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아이들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한다. 그러다 답답하면 나에게 물어본다. 그때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나머지 아이들이라고 잘할까! No.No.

나름 모범생이라는 부장 나범이 마저도 요리와 예술엔 재능이 없는 편이다.

너무 잘하려 하다 결국 망쳐버리는 일이 많다. 아마 양파 하나 써는데 5명이 적어도 2번 이상씩 물어보는 편이라 해야 할까? 

그래서 난 대형 컵에 담긴 아이스커피를 다섯 잔가량 마신다. 그렇다고 절대 대신 썰어주지 않는다.

‘난 기다린다. 난 기다릴 수 있다. 난 날 참을 수 있다.’


만들기 1시간,

우리는 짝지어 요리한다. 요리는 혼자도 하지만 여럿이 도와주며 하는 일이 많다는 걸 아이들에게 강조한다. 2인 1조, 한 사람이 요리를 시작하면 옆에서 도와준다. 순서에 맞는 재료와 조미료를 준비해 주는 일들을 서로 해주고 있다.

‘난 기다린다. 난 기다릴 수 있다. 난 날 참을 수 있다.’


먹기 1시간

아이들이 가장 공들여 보내는 시간이다. 2학년 담임 선생님이 콜라·사이다·환타 같은 탄산음료를 학급비로 지원해 주시는 덕에 늦은 식사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절대 혼자 먹지 않는다. 상을 차려 선생님들을 모시고 다 같이 식사한다.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일 거다.

아마도 이 시간 덕분에 아이들이 귀찮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 같다.

‘난 기다린다. 난 기다릴 수 있다. 난 날 참을 수 있다.’


청소 1시간

다 같이 쓰는 공간은 깨끗이 써야 한다고 잔소리를 하며 따라다닌다. 환기는 필수고 앞치마나 행주 같은 빨래도 아이들이 직접 한다.

"난 기다린다. 난 기다릴 수 있다. 난 날 참을 수 있다."  

  

그리고 담당 선생님과 나는 두 팀으로 나뉘어 아이들 각자의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지친 내 몸을 질질 끌며 집에 돌아간다. 12시 전에만 돌아와도 좋겠다.


수업이 길어 수입이 많을 것 같지만, 교육청에서 정해진 금액대로 2시간 비용 받는다. 그런 걸 왜 하느냐고, 그냥 간단한 재료 주고, 만들고 끝내라고 사람들이 나에게 말을 한다.

나도 모르겠다. 내가 왜 그런지.


그리랑 탕비실에 앉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리야~ 선생님 눈을 좀 봐줄래?” 절대 볼 리가 없다. 그래도 기다렸다. 살짝 보더니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요즘 화낼 일이 많아?”

"아니요."  끝!

"기다려줄게."

‘그래 난 기다린다. 난 기다릴 수 있다. 난 날 참을 수 있다.’

기다렸다.

“제가 너무 못해서요. 제가 제일 느려서요. 저 때문에 항상 늦게 끝나잖아요.” 그리가 겨우 들리는 목소리로 말을 한다.

이 녀석 내 말을 들었다.

“누가 그래 네가 제일 느리다고? 선생님 눈엔 니들  다 똑같이 보이는데.”

“솔직히 너희가 좀 느린 건 사실이잖아.”

“선생님도 너희 나이 땐 그랬다. 다 잘하면 천재지. 너도나도 저기 있는 못난이들도 다 천재가 아니잖아. 그래도 너 요즘은 마늘 잘 까더라.”

“그리고 이쁜 얼굴 가리지 말고, 찡그리지 말고 웃지!”

그리곤 안아주었다.


점점 그리는 싸우는 일이 잦아들었고, 점심시간에 아이들과 재료 준비를 시작했다.

조리실 문을 열며 “니들 아직도 준비 중이지? 저 쓰레기는 뭐야? 빨래는 접어 놨어?”하며 소리 지르는 나를 이제는 무서워하지 않는다.


우리의 동아리는 올해 다시 문을 열었다.

1년 동안 고생하면서도 밝아진 아이들 덕인지, 울며 겨자 먹는 마음으로 교장선생님이 1년 재료비 딸랑 300만 원과 기물비 100만 원 그리고 보조선생님이 표함 된 동아리를 허가해 주셨다.  

신입 부원도 들어왔다.

그리 의견에 따라 신입 부원이 들어오기 전 2주 정도 기존 부원들 위한 수업을 만들어 달라고 선생님께 애원은 안 했다. 걍 해달라고 우겼다. 그리고 아이들은 2주 동안 죽도록 무를 썰었다.

선배 체면이 있지.


작년까지 끓어오르는 화를 삭이라고 그리에겐 다지기를 열심히 시켰었다. 얼마나 잘 다지는지 죽을 만들어 놓았다.

어젠가부터 아이들과 싸우지 않는 그리는 올해부터 열심히 를 치는 걸 몇 달째 연습하고 있다.


음~ 잘할 거야!

내 속은 문 드러 지지만

그래~  얘들아 선생님이 기다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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