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뒤에서 끌어안고 손으로 입을 막자 바둥거리더니 ‘킥킥킥’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앞으로 고꾸라지는 척 굽히더니 뱅글뱅글 돌아 내 손을 피해 빠져나간 디엔이.
긴 다리로 성큼성큼 도망가면서 “할머니가 일 시키는 것도 싫은데.”라고 소리친다
“이루와 일루 와 이놈 어딜 도망가. 연로한 할머니가 도와달라 안 해도 나가서 도와야지. 그걸 싫다고 해. 넌 죽순 다섯 개 따와.”
그나저나 양준이는 어디 있지?
두리번거리다 찾은 양준이는 심각하게 죽순 앞에 앉아 나뭇가지로 떨어져 쌓인 댓잎을 걷어내고, 파고 또 파고 있는 모양새가 커다란 대나무로 이어진 뿌리줄기까지 찾아내 뽑아낼 것 같다.
“양준아, 대나무 뿌리까지 찾아 뽑으려고?”
“아니요. 그냥 파보고 있어요.”
이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대나무 뿌리가 생각보다 깊고 얼기설기 꼬여있어서 파내기 힘들걸. 다음에 삽이나 다른 커다란 도구 가져와서 파보기로 하고 오늘은 죽순만 따서 들어갈까?”
“네.”
“양준이가 해봐. 칼끝을 죽순에 대고 폭 누르고 손잡이 부분을 돌리듯 반 이상 잘라서 꺾어 봅시다. 옳지 잘하네.”
양준이와 함께 앉아 죽을 따고 일어나 아이들을 찾았다.
우왕~ 재범이와 그리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서로 잡겠다고 난리고, 래도는 아이들을 향해 그만하라고 소리치고, 디엔이 한 손은 뒷짐 지고 나머지 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가 흔들며 깔깔 웃으면서 그 아이들을 구경하고 있다.
아! 그런데 칼은? 죽순을 따서 모아두었던 자리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숨을 내쉬며 기지개를 켰다.
“2학년 다 모여. 양준이랑 3학년 형아들도 이리 오시오.”
래도가 흐물흐물한 재범이와 화가 잔뜩 난 그리를 끌고 오고 있다.
“그리는 얼굴이 왜 그래?”
재범이를 툭 치더니 “얘가 자꾸 약 올리잖아요.”라며 주먹을 불끈 쥐며 눈에 힘을 주고 바들바들 떨고 있다.
“니들 둘이 다를 게 없는데. 재범이는 뭘 가지고 그리를 약 올렸어? 못생겼다고?”
아이들이 킥킥대고 웃고 재범이와 그리는 그것은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며 다가온다.
“다가오지 마. 거기 딱 서.”라며 몸을 45도로 비틀자 아이들이 멈추어 선다.
“죽순 껍질을 까서 들어갈까? 들어가서 까고 다시 버리러 나올까?”
“까서 버리고 들어가요.”
“앉아봐.” 잠시 기다렸다가 “팔 물건이 아니니 형태 잡지 않고 쉽게 깔 거야. 반으로 요렇게 길게 잘라.”
반으로 썰린 죽순을 보여 줬다.
“죽순 안쪽이 노르스름 하얗지? 죽순 알맹이 옆으로 감싸고 있는 껍질이 보이지. 요걸 양손으로 잡고 쓸어내듯 벗기는 거야. 겉은 솜털이 나 있고 단단해 거칠어 보여도 속은 야들야들해서 잘 벗겨져. 선생님이 잘라 줄 테니까 벗겨봐.”
아이들이 반으로 길이로 자른 죽순을 들고 힘을 준 미간이, 삐죽 내민 입이, 껍질을 벗길 때마다 실룩샐룩 움직이더니 모두 벗겨 냈다.
“Good job. 이제 들어갑시다. 나범아, 행정실에서 자루 받아왔어?”라며 고개를 돌려 나범이를 찾는데 “내가 가져왔으요.”라며 봉쌤이 자루를 건넨다.
“뭐여? 왔으면 죽순을 땄어야지.”
“저거 반은 내가 땄는디.”
“그려, 고마워.”
“커피 줘?”
“응 시원한 거. 기가실로.”
“까만 얼굴 더 탔네.”
“이미 포기한 얼굴이여.”
“애들은?”
“애들이 눈을 못 마주쳐.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웅얼거리고. 집중력은 ZERO. 애들이 다 따로 놀아. 애들은 멀쩡해 보이는데 뭐가 문제야? 쌤 애들을 어떻게 키운겨?”
봉쌤이 입을 쭉 내밀고 코끝을 땅기더니 저 위 대나무 끝을 찾고 있다.
농사일이나 바다일로 바쁜 부모님은 아이들을 학교 병설 유치원에 맡기고 일을 나간다.
방과 후엔 동네 공부방으로 직행.
그렇게 초등학교, 중학교를 졸업하면 읍에 있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기숙사에서 지내게 된다. 더군다나 하교후나 주말엔 면에 있는공부방에서 숙제하고 저녁까지 먹고 집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집보다는 학교나 공부방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아이들에 대해선, 부모님이나 선생님보다 그들이 다녔고 다니는 학교나 공부방에 있는 학생기록부가 더 잘 알지도 모르겠다.
“얘들아, 다 담았어?”
“네.”
“칼은 선생님이 가져갈게. 기가실로 들어가자.”
아이들이 자루를 들고 또 뛰어간다.
“나 바뻐 들어가자고.” 봉쌩을 끌어당겨 터벅터벅 걸어 학교 건물로 들어갔다.
기가실로 돌아와 커다란 냄비를 꺼내 닦고 물을 담았다.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 냄비를 올리고 물이 담긴 냄비를 올려 불을 켰다.
“냄비에 끓이고 있는 물은 죽순을 삶을 물이야. 팔팔 끓으면 된장을 풀고 죽순을 넣는다. 이제 죽순을 닦을까?”
싱크에 자루에 담아왔던 죽순을 쏟아붓고 다른 한쪽 싱크에 커다란 통을 넣어 물을 받아 죽순을 넣었다.
“금방 껍질을 깐 거라 더럽지 않지만, 껍질에 있던 솜털 하고 잠깐 사이 묻어난 이물질을 닦아 낼 거야. 손으로 살살 털어 주듯 닦아줘. 그리고 다른 통에 넣고 다시 물을 받아서 한 번 더 씻어줘. 잘할 수 있지?”
“네.”
아이들이 죽순을 닦는 사이 나는 벽장을 열어 이리저리 살펴봤다. 저 위에는 커다란 전기 프라이팬이 두 개, 커다란 냄비 2개는 왜 샀을까? 쌓여있던 포장을 벗기지도 않은 칼, 숟가락, 젓가락, 접시, 컵을 꺼내며 두 선생님들께 물어봐도 모른다는 대답뿐. 도마는 쓸 수가 없어 구매목록에 추가. 플라스틱으로 된 국자, 뒤집게, 집게, 거품기가 포함된 조리도구 세트는 힘이 없어 무용지물. 냄비는 작고 숫자도 부족하며, 크고 작은 프라이팬이 여섯 개, 웍 3개. 어떤 음식을 만들었는지 가늠도 할 수 없는 조리도구와 쿠키틀 크기가 들쑥날쑥한 플라스틱 계량컵과 계량스푼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