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콩쿠르 직관의 여정이 끝났다, 폴란드 피아니스트들, 굿즈 득템기
# 쇼팽 콩쿠르 직관의 여정이 끝났다
1라운드 본선 5일차 아침 세션, 나의 두 번째 쇼팽 콩쿠르 본선 무대 직관이 끝났다. 언젠가는 꼭 바르샤바 필하모닉 홀에서 본선 무대 연주를 들어보고 싶다고 열망해 왔었기 때문에, 그 꿈을 이루고 콘서트홀을 나오면서는 그 어떤 연주회에서보다도 진한 여운이 있었다.
'이제 정말 바르샤바 필하모닉 홀에서의 쇼팽 콩쿠르 직관 여정이 끝났구나.'라고 생각하니 아쉬웠다. 한편으로는 가능한 여건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좋아하는 것을 좇아왔고, 실현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이성적이지 않은, 굉장히 무모한 계획을 실행해 보도록 북돋아주고 선뜻 동행해 준 짝꿍도 진심으로 고마웠다. 도무지 끝을 알 수 없는 망자의 덕질 세계에 짝꿍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인 것 또한 매우 기쁘다.
짝꿍은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필하모닉 홀을 충분히 둘러보고 나오라고 말했었다. 콘서트홀 옆쪽에 있는 굿즈샵은 전날 직관 후 한참을 살펴봤기 때문에 다시 둘러볼 필요는 없었고, 아쉬움을 달래며 차분하게 계단을 내려와서 입구 로비에서 나를 기다려주고 있는 짝꿍을 찾았다. 내가 2회차의 콩쿠르 직관을 즐기는 동안, 짝꿍은 바르샤바 국립미술관(Muzeum Narodowe w Warszawie)의 전시를 관람했다. 필하모닉 홀을 나서면서 따로 즐긴 서로의 오전 일정에 대해 감상을 나눴다. 우리는 오후의 행선지로 정해둔 바르샤바 구시가지를 향해 같이 걸었다.
# 폴란드 피아니스트들
본선 5일차 아침 세션에는 이번 제19회 쇼팽 콩쿠르 본선 기간 동안 꽤 주목을 받았던 참가자들이 무대에 올랐다. 특히 자국에서 열리는 콩쿠르에 참가하는 폴란드 피아니스트들이 돋보였는데, 바르샤바에 가기 전부터 주목했던 Yehuda Prokopowicz(예후다 프로코비츠)와 직관하면서 소리를 듣고 놀랐던 Piotr Pawlak(피오트르 파블라크)가 그들이다.
쇼팽 콩쿠르 본선이 시작되기 직전, 쇼팽 인스티튜트에서는 본선 참가자들이 피아노, 쇼팽 혹은 쇼팽 음악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인터뷰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려두었었다. 영상을 보면서 본선 무대에는 어떤 피아니스트들이 오르게 되는지 알 수 있었는데, 이전 회차 콩쿠르에서 좋은 연주로 빛났던 분들이 또 보여서 놀라기도 했고 기대감도 커졌다. 또한 본선 무대 연주를 듣기 전에 피아니스트들이 피아노와 쇼팽의 작품을 대하는 생각과 마음이 어떠한지 목소리로 들을 수 있어 좋았고, 인간적인 개성 또한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인터뷰 영상을 보고 바르샤바에 간 덕분에, 거리에서 우연히 우리의 귀인님¹을 마주친 후 바르샤바가 더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 비록 귀인님은 우리를 모르실지라도 - 우리나라 참가자는 아니지만 인상적인 인터뷰의 참가자를 기억하게 되어 본선 기간 동안 내내 응원하기도 했다.
폴란드 피아니스트 Yehuda Prokopowicz(예후다 프로코비츠)가 그런 분들 중 하나였다. 묶은 머리에 중절모를 쓰고 머플러를 두른 모습부터 인상적이었는데,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중절모를 쓰는 퍼포먼스가 더해진 인터뷰 영상이 흡사 배우의 프로필 영상처럼 보여서 많은 참가자들 중 꽤 분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이 폴란드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마주르카²가 어떨지도 궁금해졌다. 직관했던 1라운드 연주 중에서는 녹턴과 왈츠 연주가 잔상으로 남아 지금까지도 영상을 자주 본다. 3라운드까지 진출한 Yehuda Prokopowicz는, 2라운드에서 마주르카 Op.17, 3라운드에서 Op.33을 연주했는데, 결국 그는 마주르카 특별상(Polish Radio Award for the best performance of mazurkas)을 수상했다! 언젠가 다른 유수의 마주르카 연주도 직접 들어볼 기회를 만나길.
Piotr Pawlak(피오트르 파블라크)도 폴란드 피아니스트인데, 이 분에 대해서는 어떤 정보도 없었다가 1라운드 직관 무대에서 소리를 듣고 파이널까지 진출할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 파이널 진출에는 실패, 3라운드까지 진출했다. - 쇼팽에 빙의한 듯한 퍼포먼스와 소리의 명료함이 인상적이었는데 후에 찾아보니, 2023년에 개최되었던 국제 쇼팽 시대악기 콩쿠르(II International Chopin Competition on Period Instruments)에서 2위에 올랐던(!) 피아니스트였다. 그리고 콩쿠르 라이브 영상 댓글에서 언급되어서 찾아보고 또 한 번 놀랐던 건, 피아노만이 아니라 수학에도 상당한 재능이 있다는 사실, 수학 전공 석사 학위자라는 사실이다. 2014, 2015년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 폴란드 대표로 참가해서 동메달을 획득했다고 한다. "수학을 해야 할 사람이 피아노도 하고, 피아노를 해야 할 사람이 수학을 하는 이 불공평한 세상!"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며 감탄했다. 최근 국제 콩쿠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피아니스트들 중 Piotr Pawlak처럼 다른 분야에서도 낭중지추의 재능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점점 더 무서운(!) 인재들이 많아지고 있다.
¹우리나라 참가자 중 본선 무대에 오른 세 분 중 한 분, 피아니스트 이관욱님 * 관련 글: 표 없이 왔으니 해야 할 일을 해보자
²쇼팽의 작품 중 마주르카(Mazurka)는 대체로 악보를 읽기 어려운 작품으로 꼽지는 않지만, 쇼팽이 고향 폴란드를 생각하며 애정을 가지고 작곡했던 민속 춤곡이기 때문에 쇼팽 음악의 핵심 작품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기교적, 음악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숙련된 연주자들이라도 마주르카 고유의 리듬을 제대로 살려 연주하는 것이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 굿즈 득템기
참새가 방앗간 들르는 건 깜빡해도, 굿즈샵을 들르지 않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전날 밤의 불면으로 쌓인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직관 첫날 세션이 끝나기 전에 콘서트홀을 나와야 했을 때, 콘서트홀 옆쪽 굿즈샵에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던 것은 갑자기 얻은 또 하나의 행운이었다. 그 당시에는 다음날도 직관할 수 있다고 생각지 못했었고, 바르샤바 필하모닉 홀도, 이렇게 쇼팽 콩쿠르 공식 굿즈가 많은 굿즈샵도 다시 방문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굿즈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시간을 오래 들여서 구경했다.
전날 직관에서는 프로그램북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세션 인터미션에서 형제 피아니스트 이혁님, 이효님 인터뷰 후 프로그램북에 사인을 받는 인파를 부러움 가득한 시선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또 아쉬움을 느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직관에서는 콘서트홀에 들어가기 전에 굿즈샵에 들러 프로그램북부터 사기로 결심했고, 그렇게 한 덕분에 참가자의 정보와 프로그램도 수시로 살펴보며 본선 무대를 더 밀도 높게 즐길 수 있었다.
온라인으로도 쇼팽 콩쿠르 공식 굿즈를 판매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쇼팽 콩쿠르 본선 기간에 바르샤바에 간다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을 때 온라인 굿즈샵에서 제19회 쇼팽 콩쿠르 로고가 크게 찍혀있는 에코백을 봤었다. 주문하려고 했었는데 제일 마음에 들었던 기본색 에코백은 품절이었다. 그런데 현장 굿즈샵에서는 바로 구할 수 있었다.
쇼팽의 모습을 형상화한 로고의 모양도 예쁘고, 밝은 파란색과 남색의 색 조합도 예뻐서 로고 관련 상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머그컵, 핀배지, 키링과 볼펜도 샀다.
로고를 전면에 넣은 모자와, 로고와 함께 양면에 '쇼팽 콩쿠르'가 영어와 폴란드어로 들어가 있는 슬로건 타월도 구입했다. 쇼팽의 얼굴이 발에 놓이도록 착용하지는 못할 것 같지만 소장용으로 양말도 담았다. 그 밖의 문구류로는 큰 노트, 쇼팽의 서명과 에튜드 Op.10 No.3 - '이별의 곡'으로 알려져 있다 - 악보로 만들어진 작은 수첩, 마우스 패드를 골랐다.
너무 많이 산 것 같기도 하지만, '언제 다시 바르샤바에 올 수 있을까'라는 무적의 생각은 지갑 사정을 잠시 잊게 했다. '나중에...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