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라인을 가장 많이 바꿔준 연습방법은 바로 '컨투어 드로잉(Contour Drawing)'입니다. 컨투어(contour)는 프랑스어로 사물의 윤곽선(outline)을 뜻하는데 따라서 '컨투어 드로잉'은 사물의 형태를 라인으로 표현하는 드로잉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가 잘 아는 '라인 드로잉'인 거죠. 그런데 어떤 단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본래의 의미와 조금 달리 사용되는 경우가 있는데요. 현재 컨투어 드로잉이라고 말할 때는 일반적인 라인 드로잉이 아닌 그림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단 하나의 라인으로 표현하는 '원 라인 드로잉'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하는 컨투어 드로잉도 바로 '원 라인 드로잉'을 의미합니다. 다음은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펜을 한 번도 떼지 않고 단 하나의 라인으로 그린 컨투어 드로잉입니다.
[자동차 컨투어 드로잉 - 2020.05.09]
그럼 컨투어 드로잉에는 어떤 이점이 있기에 라인을 바꾸는데 도움이 된다고 하는 것일까요?
1. 잔선, 털선을 쓰는 것이 아예 불가능합니다. 저의 고질병이었던 잔선은 컨투어 드로잉으로 그리는 순간 아예 사용이 불가능해졌는데요. 당연할 수밖에 없겠죠? 펜을 한 번도 떼지 않고 그리니까요. 자연스럽게 가장 긴 라인으로 그리는 연습이 되는 것은 덤이 되고요. 저 그림의 하나의 라인을 모두 펼친다면 길이가 얼마나 될까요?
2. 집중하여 관찰한 라인을 쓰다 보니 라인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그림을 하나의 라인으로 그릴 때 불필요한 라인들을 남발하기가 쉬울까요? 쓸 데 없는 지그재그 라인을 그리게 될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의 라인으로 그릴 때는 자칫 끊어질까 주의하며 집중도가 올라갑니다. 쓸데없는 라인을 쓰는 것은 사치가 됩니다. 이 라인을 쓸 필요가 있을지 고민하며 쓰게 되는 거죠.
3. 개성과 리듬이 충만한 자기만의 라인을 발견하게 됩니다. 컨투어 드로잉으로 그릴 때도 그리는 사람에 따라 그 느낌이 매우 다르게 나오더라고요. 이제껏 쓰지 않아야 할 유형의 선들만으로 가득한 그림이 마치 마법에라도 빠진 양 개성 있고 리듬 있게 변하는 것이 너무 신기했어요.
여기에 +a로 컨투어 드로잉 앞에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인 블라인드(blind)를 붙이면 라인으로 바로 그리는 것에 대한, 어쩌면 그림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까지도 없애기에 정말 탁월한 연습인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Blind Contour Drawing)이 됩니다.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은 '그리는 종이를 보지 않고 그리는 대상만을 보며 하나의 라인으로만 그리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보통 그림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은 잘 그리려고 하는데서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은 어떤 의미로 반드시! 잘못 그릴 수밖에 없어요. 사람을 그려도, 건물을 그려도 추상화가 됩니다.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으로 그리면 이렇게 되거든요.
잘못 그려도 되기에, 잘못 그릴 수밖에 없기에 아무 부담 없이 대상에만 집중하여 라인 드로잉을 하고, 그 후 그려진 그림을 보면 박장대소가 뒤따르게 됩니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어요. 저는 잘못 그려지는 라인에 대해 스트레스가 매우 큰 편이었는데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을 그릴수록 너무 웃다 보니 즐겁고, 그렇게 그려진 개성 있는 긴 라인들은 또 새로웠으며, 그토록 변하지 않던 라인들이 점점 바뀌어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며 자신감도 얻게 되었습니다.
컨투어 드로잉은 라인을 바꿔주고,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은 라인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줍니다.
컨투어 드로잉 및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을 그릴 때 주의 사항 하나는 너무 빨리 그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최대한 관찰을 하며 이를 그대로 표현하려고 해야 하지 하나의 라인으로 그린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마구 원하는 대로 라인을 춤추게 해서는 안됩니다.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을 그릴 때 눈이 관찰하는 영역과 손으로 그리는 영역이 일치하는 것이 좋습니다. 눈이 천천히 관찰하고 움직이는 만큼 손이 동일하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최대한 관찰을 하며 관찰한 그대로를 동시에 손으로 옮기는 것을 통해 형태에 대한 고정관념이 그림에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고 관찰한 대로 그릴 수 있는 이점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렇게 그려진 라인들에 감탄하게 되기도 합니다.
같은 대상을 한 번은 컨투어 드로잉으로, 한 번은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으로(혹은 반대 순서로) 그리는 것도 좋은 연습이 됩니다. 밑의 두 그림을 그렇게 그려 봤는데요. 정말 재밌게 그렸었네요.
[한 노인의 초상 컨투어 드로잉 버전 - 2020.05.19]
[한 노인의 초상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 버전 - 2020.05.19]
또한 둘 모두 채색 작업도 진행할 수 있는데요. 이 또한 매우 재밌으면서도 개성 있는 작업이 됩니다.
[불도저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 후 수채로 채색 - 2019.01.29]
컨투어 드로잉의 경우 상세히 관찰하며 그리느라 많은 양의 펜 라인이 있을 것인데요(그럼에도 하나의 라인임) 채색을 고려할 경우 펜 라인이 너무 많은 경우는 채색 효과가 떨어질 수 있기에 채색을 위한 약간의 공간들을 남기며 작업하시는 것도 좋습니다.
드로잉 하시기가 어려우신가요? 흰 종이가 두렵게 여겨지시나요?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으로 그리는 즐거움을 얻고 관찰력을 키우실 수 있습니다. 현재의 잘못된 라인을 바꾸고 싶으신가요? 컨투어 드로잉이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많은 좋은 연습들이 있겠지만 이 둘은 모두 제 드로잉을 가장 변화시킨 연습 방법입니다. 이 둘의 연습을 통해 모든 그림의 기본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예술인 드로잉의 즐거움을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