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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아 Nov 05. 2023

고요하고 싶다, 강렬하게 고요하고 싶다.

중학생이 가져다주는 소란에 나만의 고요 BGM 깔기

급식실 공사로 교실에서 도시락을 먹는 점심시간, 조용함이 부담스럽다는 부반장의 토로와 음악을 틀어달라는 요청에 그렇게 했다. 내가 선곡한 음악을 듣고 난 다음날, 반장이 ‘선곡 리스트’를 받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맨날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나올 법한 노래만 들으면서 밥 먹을 순 없잖아.”

내 선곡이 어때서! 내가 빌 에반스를 골랐던가.


늘 평온하고 싶은 내게 중학생들은 심란함을 몰고 온다. 나를 어수선하게 만드는 날은, 이때다 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덮친다. 정말 부딪치고 싶지 않은 학생과 실랑이를 해야 했다. 우리 반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얘기 좀 하자고 불렀는데 이 녀석이 내가 말하는 동시에 자기도 말한다. 여기가 교무실인지 시장인지 알 수 없다. 내 말의 꼬투리를 잡고 자기식 논리를 들이댄다. 내 말에는 없던 단어가 중간중간 튀어나와 자기 속마음을 들키고 말고. 그럼 나는 또 그 단어를 가지고 이것 봐라, 너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느냐 해도 전혀 설득당하질 않는다. 일단 이기려고 하는 아이의 태도부터가 마음에 안 든다. 그 반 담임 선생님의 협조로 일단락이 되었으나 영 불쾌하다. 쟤도 그렇겠지. 하지만 앞으로는 우리 반 아이에게 조심하리라 생각하고 흘려보냈다.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내성적인 학생이 웬일로 나를 찾아왔다. 할 말이 있다고. 속상한 일이 있구나. 얘기를 듣고 조치를 취하겠다 했다. 며칠 전 어머니와 통화했던 내용이 드디어 불거졌다. 직접 겪지 않은 일을 듣고 해결해야 하는 일이란 언제나 조심스럽다. 양쪽 모두를 헤아리는 마음으로 접근하고 싶어 내 머리는 복잡하고 마음은 어지럽다.

이런저런 쉬는 시간의 실랑이가 종이 쳤다고 깔끔하게 끝나지는 않아서, 다른 반 교실로 공간이 바뀌어도 바로 내 역할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 딩동댕 종소리에 마음의 소란함도 종료되면 좋으련만. 어디선가 한 건씩 문제를 던져주는 느낌. 차라리 수학문제가 낫지. 나는 정말 수학이 싫지만 아이들이 던져주는 문제에 대한 나의 풀이과정은 변수가 너무 많고 깔끔하지가 않다.


다음날부터는 사건이 나를 찾아오기 전에 한 번 더 아이들 얼굴을 들여다보고 묻는다. 기분은 어떤가 별일은 없나. 이른바 적극적인 관찰이라고나 할까. 나랑 한판 했던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친구들이랑 기세가 등등하고 우리 반 아이들 표정도 가만하다. 나의 평온을 위해서라도 우리 반이 평화로워야 하기에 상담을 시작했다. 시험이다 연휴다 소풍이다, 개인 상담을 못해서 애들이 이런가 싶어서. 내 쉬는 시간은 사라져 버리지만 이렇게 내 시간과 마음을 바치고 잔잔한 일상을 얻을 수 있다면야. 하지만 절대로 상담 시간과 평화가 비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의 상관관계도 가져올 수 있다.) 그냥 두어도 저 혼자 흘러가는 시간에 내 마음을 조금씩 부어본다.

하루에 한 번은 나를 찾아오는 한섬이의 이야기를 한참 들었다. 달달한 간식도 하나 주고 기분이 좋아질 수 있도록 맞장구를 쳤다. 이 아이가 나의 진을 빼지는 않는다. 그저 얘길 들으면서 그걸 반영해 대답해 주고,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생각을 해볼 수 있도록 이것저것 질문도 한다. 내가 들려주는 대답이 그저 메아리 같더라도 아이는 잠시 안전한 시간을 누렸다고 느낄 거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간절히 고요한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중학생만의 에너지에 찌릿할 때가 있다. 그 ‘찌릿’이 기분 좋은 전율만 있을 수는 없겠지만, 나를 자극하는 것만은 틀림없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중학생의 에너지에 발맞추려면 역시 듣는 음악부터 바꾸어야 할까? 아니야, 여덟 시간의 근무 시간으로 시끌벅적함의 총량은 이미 초과다. 나는 언제까지나 고요를 추구해서 사춘기 호르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도 내 삶의 균형을 유지하고 싶다. 가으내 즐겨 듣는 앨범은 (스트리밍으로 들으면서 앨범이라고 쓴다) 팻 메스니와 찰리 헤이든이 협연한 <beyond the Missouri Sky>, 잔잔하고도 깊은 울림을 주는 고요가 아주 마음에 든다. 글을 쓸 때 틀어두어도 좋고, 산책할 때 들어도 참 좋다. 우리 반에 이걸 선곡하면 또 어떤 타박을 들을까.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랑 중학생이 선호하는 아름다움은 많이 다르다. 교실 급식 첫날 이후로는 아이들이 선곡한 노래를 들으며 점심을 먹었다. K-pop도 듣고 신나는 팝송도 들었다. 왠지 밥을 빨리 먹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긴 했다. 중학생이라고 늘 인기곡만 듣는 것은 아니어서 하루는 디즈니 음악이 쭉 나왔고, 아직 더운 9월이었지만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는 하루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오늘 선곡 맘에 들어.’하면서 밥을 오물거렸다. 중학생의 기발함이란! 내일은 또 어떤 놀라움이 나를 맞이할까. 무슨 일이 벌어지든,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나만의 BGM으로 내 속의 소란을 밀어내고 고요를 한가득 채우겠지. 나의 고요를 위해 중학생을 적극적으로 탐구관찰하는, 더운 가을이었다.  



최근 한달 간 최애 앨범이 왼쪽, 오른쪽은 오랜만에 다시 들으니 또 좋다! (애플뮤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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