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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아 Nov 26. 2023

반복과 거부, 맞춤법을 공부하면서

반복의 힘이 구현되려면, 주도적으로

중학교 2학년 2학기에는 표준발음과 표기에 관한 교육과정이 있다. 우리 중2들은 열심히 발음에 대해 공부하고 ‘꽃을’을 [꼬슬]이 아니라 [꼬츨]로 읽는 것은 잘하면서, ‘닭이’를 [다기]가 아니라 [달기]로 읽는 것은 거부한다. 교과서에 제시된 틀린 표기는 귀신 같이 찾아내지만 ‘무난하다’를 ‘문안하다’로 써서 문안 인사를 올리고, ‘문외한’을

“뇌가 없어서 무뇌한 아니었어요?”

라고 우기며, ‘어이가 없다’를

“어의가 아니라고요?”

하고 허준 의원님을 찾는다.


<끝내주는 맞춤법 쓰는 사람을 위한 반복의 힘>은 교정 교열 전문가 김정선 작가님의 책으로, 작가님께서 버찌책방에 오셨을 때 올해 2학년을 맡았으니 공부해야겠다고 구입한 책이었다. 두께도 꽤 되는데 단계별로 맞춤법, 외래어표기, 띄어쓰기에 관한 문제가 많이도 담긴 일종의 워크북(이라 말하면 멋있고, 달리 표현하면 문제집)이어서 한동안 책꽂이에 꽂아두었다가 단원 시작되기 전에 펼쳐 틈틈이 풀어보았다. 맞춤법 단원을 마치면서 학생들에게

“선생님이 올해 산 책인데, 아직 여기까지밖에 못 풀었어.”

하며 책갈피가 꽂힌 데를 보여주었다. 내게도 맞춤법 공부는 지루하기도 해서 진도가 아직 많이 못 나갔다, 앞에는 거의 다 맞았는데 단계가 심화될수록 틀리고 모르는 게 많다고 실토했다. 나도 여전히 헤매고 공부한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선생님은 사전을 자주 찾아봐요. 발음도 모를 땐 찾아봐. 국립국어원 사이트를 즐겨찾기 해놓고 검색도 자주 하고.”

학생들이 우리말에 대해 모른다고 느낄 때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자어가 많아 요즘 아이들에게는 생소한 단어도 많을 거다. 아이들이 맞춤법을 대할 때 ‘나는 절대로 저걸 이해할 수 없다’든가, ‘맞고 틀리고가 뭐가 중요해, 그냥 아무렇게나 써’ 하는 태도보다 거듭 찾아보고 익히면 좋겠다. 책 제목에도 ‘반복의 힘’이 있으니까.


올바른 국어생활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친구랑 카톡이나 디엠 주고받을 때 항상 같은 맞춤법을 틀리면 좀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예전에 남자친구가 같은 단어를 자꾸 틀리게 써서 싫었는데.”

했더니 저마다 말한다. 어느 반에서였던가. 내 귀에 들려온 소리,

“그걸 왜 읽어? 난 엄마 카톡은 안 읽는데.”

오잉, 이건 무슨 소리? 이런 얘길 놓칠 수 없다, 시선을 고정하고 또 무슨 얘길 나누는지 들었다. 같은 학생이 또 말한다.

“엄마 카톡을 왜 읽어?”

끼어들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물었다.

“왜 엄마 카톡을 안 읽어?”

“어차피 집에 가면 똑같은 얘기 또 듣거든요. 전 가족 카톡은 안 봐요.”

“진짜 중요한 얘기면 어떡해?”

나는 이마에 주름을 지으며 말했으나 ‘될 대로 되라지’ 하듯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우리 아들 생각이 나면서 아들들은 정녕 다 이렇단 말인가 속이 부글부글했다.


학교마다 상벌점 제도로 생활지도를 한다. 벌점이 많이 쌓이면 반성문을 쓰고 서약서를 써 변화를 꾀하곤 한다. 부모님 확인 서명, 담임 선생님 도장, 학년부장 선생님 도장, 생활안전부장 선생님 도장을 차례로 받으면서 그때마다 아이들은 지도를 받는다. 올해 들어 도장받을 종이를 부재중인 선생님 자리에 턱 하니 놓고 자리를 떠나는 학생들이 목격되었다. 선생님 계실 때 직접 뵈어야지, 했더니

“그러면 잔소리 듣잖아요.”

한다. 그 얘길 들으라고 하는 건데 너무도 쉽게 어른들의 말은 곧 잔소리가 되어버렸다.


맞춤법도 반복해 익히는 것인데, 어른들의 거듭되는 이야기에도 반복의 힘이라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어른들의 소망일 뿐인가. <도둑맞은 집중력>이란 훌륭한 책에 정보의 과잉은 집중력을 흐리고 정보를 단순하게 받아들인다는 내용이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잔소리도 그럴 것이다. 부모로서는 중요해서 자꾸 얘기하는 걸 텐데, 듣는 입장에서는 너무 많다고 느끼고 자동 필터링 능력만 키우게 하는 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내가 이번 주에 한 일이 생각난다.

아직 중학생도 아닌 초6 도빵이는, 그간 부모의 말을 듣고도 못 들은 척했다. 식탁에 앉을 때 의자 위에 두 다리를 다 올려놓고 음식을 먹을 때마다 흘린다든가, 게임하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과자를 먹는다든가. 남편은 더 이상 같은 소리를 못하겠다고 포기했고 나는 꾸준하고 성실하게 지적을 하곤 했다. 지난주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와보니 여기저기 남겨진 도빵이의 흔적이 보였다. 오늘은 초콜릿 바를 먹었구나. 과자도 한 봉지 드셨네. 청소기를 들고 청소를 하는데 컴퓨터 방바닥에 연필심이 떨어져 있었는지 청소기가 지나가면서 까만 선이 지익 바닥에 묻었고, 그 옆엔 초콜릿도 떨어져 있다. 뿐만 아니라 키보드 주변은 손대기가 싫을 정도로 부스러기가 가득했다. 아이는 이미 학원에 가고 없었지만 화가 났다. 키보드를 뒤집어 드니 과자 부스러기뿐만 아니라 자판 키도 툭툭 떨어진다. ‘얼음과 불의 춤’인가 뭔가 하는 게임을 신나게 해 대는 둘째는 이미 키보드 자판을 몇 개나 부쉈더랬다. 스페이스바도 없는 저 키보드도 아이가 사달래서 사준, 무지개색이 구현되는, 그걸로 게임하면 색깔이 달라지며 함께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키보드이다. 안 되겠다 싶어 버려야겠다고 키보드와 그 아래 넓게 깔려있는 마우스패드를 다 들고 나와 쓰레기봉투와 분리배출함이 있는 다용도실에 갖다뒀다. 포스트잇에 ‘이번 주말까지 온라인 숙제 이외에 컴퓨터 사용 금지’라고도 써 컴퓨터 화면에 붙였다.

그렇게 해두고 내가 외출한 사이 돌아온 둘째에게 남편이 말했단다.

“엄마가 많이 화났어. 너 과자 아무 데서나 먹고 안 치워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면서 ‘응’ 하고 아무렇지 않게 답하더란다.

“키보드도 갖다 버렸어.”

이번에도 아이는 핸드폰만 보면서 ‘응’ 해서, ‘엄마가 키보드 버렸다니까’ 한번 더 얘기하니 그제야

“응?”

했다는 도빵이. 어른들 말이면 음 소거가 자동으로 되는 아이인가. 카톡을 확인하지 않는 첫째에 비해 도빵이는 바로바로 ‘네’ 대답하지만 그냥 조건반사였을 수도 있겠다. 아무리 말해도 듣질 않으니 좋아하는 물건을 치운 건데 이게 어떤 효과를 낼지는 아직 모르겠다. 게임을 못하는 것에 대해 나한테 직접 반항하지는 않았다. 다만 핸드폰을 얼굴 앞에 들이대고 침대 위에 누워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고, 이용시간이 끝나면 거실 바닥에 누워서 멍하니 있는 모습을 보였을 뿐이다. 그것도 하염없이.


여기까지가 맞춤법 공부를 하다가 내가 깨달은 것이다. 반복해서 말하기가 효과가 없다는 걸 알았고, 아이들은 반복된 부모의 말을 듣지 않으며, 키보드 버리기 같은 좀 더 단호한 대처가 필요했던 것일 수도 있다. <끝내주는 맞춤법 쓰는 사람을 위한 반복의 힘>이라는 책 표지를 다시 들여다본다. 유유 출판사 전문 디자이너 이기준 선생님은 제목을 반복해 넣은 표지로 반복의 힘을 강조했다. 청개구리 중학생 아이들과 인터넷 서점에서 미리 보기로 제시된 ’시작 전 사전 점검 단계‘를 몇 문제 풀어보며, ’눈이 아니라 손끝으로 익혀야 한다‘는 작가님의 말씀처럼 맞춤법을 자꾸 반복해서 익히자 했다. 그런데 이 반복은 스스로 해야 된다. 아무리 옆에서 반복해 말해줘도 소용이 없다. 자기가 먼저 달라지려고 해야 하고, 나에게 도움이 된다고 스스로 깨우쳐야만 그 반복은 이루어진다. 그러니 나여, 앞으로 아들들에게 하나마나 한 잔소리는 줄이자. 중학생의 ‘엄마 카톡을 왜 읽어’에 받은 충격을 이렇게 흡수해 보련다. 과한 반복은 더 안 듣게 만든다는 진리를 받아들이자. <도둑맞은 집중력> 표지에는 이렇게 써있다.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모든 세대에게 필요한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이 주도권을 찾게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그럼 나는 맞춤법 문제를 마저 풀겠다. 아이코, 학교에 두고 왔네.


@ 김정선, <끝내주는 맞춤법: 쓰는 사람을 위한 반복의 힘>, 유유, 2021

@ 요한 하리, <도둑맞은 집중력>, 어크로스, 2023, 김하현 옮김

도저히 쓸 수 없는 키보드와 김정선 작가님의 책, 20단계까지 도전할 수 있다. 잘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런가 보다 하는 페이크 커버 <집중맞은 도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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