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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아 Nov 12. 2023

상담과 카드, 시간의 형태

상담할 때 유용한 ‘질문카드’, 내가 좋아하는 건 ‘타로카드’

학생들과의 상담, 학교 생활과 성적에 대한 자기 평가 및 공부 습관, 고민 등에 대해 얘기하기로 했다. 시작하는 이야기로 질문카드를 준비해 두었다.

1학기 때에는 ‘인생’이 테마인 카드를, 2학기 때에는 ‘일상’이 테마인 카드를 펼쳤다. ‘일상’ 편 진분홍색의 카드 뒷면을 보이며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아이들은 신중하게 하나를 뽑아 든다. 그런데 카드에 뭐가 붙었는지 아이들이 고르는 카드가 엇비슷하다. 어제는 쉬는 시간마다 만난 아이들이 주르륵 ‘내게 힘이 되는 존재는 무엇인가요?’만 고르더니, 오늘은 세 명이나 ‘내가 가장 아끼는 것 3가지’를 골랐다.

이 카드를 고른 수리가 머뭇거린다. 대답을 한참 기다리다가 내가 먼저 말했다.

“수리가 아끼는 거야 뭐, 수학문제집이겠지. 그렇지?”

그러자 부정하지 않는 수리. 지난번에 체험학습으로 놀이동산 갈 때 수학문제집을 가져왔던 아이다. 수학 문제집을 어디든 들고 다니는 수리라면, 아끼는 물건이 수학 문제집이 맞을 거다. 스포츠 시간에도 꼭 필기구와 문제집을 챙겨 들고나간다. 어떤 책, 문제집을 풀고 있는지 묻고 이번 성적에 대한 만족도를 물었더니 90점, 현재 자신에 대한 점수를 매겨보라 했더니 금세 85점이라고 대답했다. 아끼는 거 세 가지에 대해서는 그렇게도 답이 안 나오더니 숫자로 물으니 명쾌하구나. 이유에 대해 묻고 진로 희망, 교우 관계, 그 밖의 고민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상담을 마쳤다.

점심시간에 온 고수는 아끼는 것으로 선뜻 자전거, 컴퓨터, 핸드폰을 들었다. 자전거에 얽힌 추억을 묻고 아이에 대해 더 알게 되었다. 늘 단답형으로만 대답하던 고수였는데, 아이의 수줍음과 강인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서 격려와 칭찬을 들려주었다. 언제나 밝은 미소를 보여주는 달님이는 아끼는 것으로 가방, 신발, 필통을 얘기한다. 마음에 들어서 그렇단다. 자기 취향이 확실한 아이로구나 생각했다.

질문카드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 아이의 경험과 특징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상담한다고 다짜고짜 고민 혹은 학습에 대해서부터 묻는 것보다, 질문카드로 관계를 여는 게 참 유용하다. 가볍게 던지는 질문이지만 아이가 드러나니까.

집에 와서 아들에게 물었다.

“땡땡이가 가장 아끼는 거 세 개가 뭐야?”

“스마트폰, 에어팟 왼쪽하고 오른쪽. ”

에어팟 왼쪽과 오른쪽이라니, 이 엉뚱한 대답에 웃고 말았다. 그래도 땡땡이가 스마트폰으로 음악 듣기를 좋아하는구나 알아차릴 수 있으니 질문카드의 질문이 훌륭하다고 할 수밖에.

나의 세 가지는 뭘까 생각해 보니 엄청 어려운 질문이었다. 현대인 대부분은 첫째로 스마트폰이라고 하겠지? 일기인인 나는 일기장.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떠오르는 게 더 이상 없다. 와, 이거 어려운 거였네. 나는 아이들한테 쉽게 질문하고 금세 대답을 요구하는데. 나는 입술이 트니까 립밤이나 바셀린을 말해야 할까? 그건 약하고. 아무래도 ‘타로카드’라고 대답해야 할 것 같다. 나에 대해 알려주는 의외의 물건이 있다면 단연코 그것일 게다.


거의 십 년 전인가. ‘연희동 한선생’ 한민경 선생님의 타로카드 강의 팟캐스트를 여러 번 들었더랬다. 김어준 님이 진행하던 ‘벙커 1’을 즐겨 듣고, 나중에는 어플에 결제도 해가며 반복해서 들었다. MBTI 성격유형으로 16가지의 특성이 나오듯이 타로카드로 보는 소울넘버는 1번부터 9번까지 9가지 유형의 역할이 있다. 그 소울넘버가 너무 재미있어서, 9장의 카드로 시작해, 나중에는 메이저카드와 마이너카드까지 총 78장의 카드에 얽힌 이야기에 흠뻑 빠졌다. 만나는 사람마다 소울넘버를 계산해 보라고 하면서 떠들어댔고, 연도카드도 계산하다가 카드까지 구입한 것이다. 가끔 진초록의 천을 깔고 스프레드해 카드를 들여다본다. 자세한 건 잘 몰라도 질문에 답을 구하는 데에, 아니 실은 내 마음의 안정에 조금은 도움이 된다.


만나는 학생들에게 일 년에 한 번은 소울넘버를 계산해 보도록 한다. 서로를 파악하고 난 후나 연말 즈음, 자투리 시간에. ‘타로카드’라는 단어를 발음하기만 해도 아이들은 눈을 반짝인다. 나만의 소울넘버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양력 생년월일을 한자릿수로 더하는 것이다. 내가 만나는 중2 아이들은 2009년생, 아이가 11월 12일이 생일이라고 한다면 2+0+0+9+1+1+1+2가 된다. 셈하면 16, 한자릿수가 되도록 한번 더 더한다. 1+6 이렇게 나온 수 7이 자신의 소울넘버가 되겠다.

“1번 나온 사람, 손들어 봐.”

하고 이 숫자에 해당하는 설명을 해주면 모두가 쫑긋 귀 기울인다. 자기 숫자뿐만 아니라 친구들에 대해서도 ‘맞아요’ 해가며 재미있게 듣는다. 나는 혼자서 1부터 9까지 설명하느라 숨이 가빠지지만, 이렇게 묻고 답하는 동안 아이들의 특성이 다시 보인다. 아, 저 아이가 7번, 리더 역할을 하고 있구나. 5번인 쟤들은 남들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겠어. 9번은 자기만의 세계가 있겠구나 등등. 그러고 나면 아이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지는 것이다. 9번 저 아이는 어떤 취미에 빠져있을까, 6번 아이는 무엇 무엇을 잘할까.


우리 반 아이들의 소울넘버 조사도 끝내고 2학기 상담도 마쳤다. 그렇다고 아이의 성향을 완전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 돌발 행동으로 새로운 면모를 드러낼 수도 있고, 꽁꽁 숨기고 싶은 것도 있을 테다. 하지만 확실한 건, 아이가 어떤 사람인지 윤곽이 그려진다는 것, 자기만의 개성이 어느 정도는 보인다는 것, 아이의 표정으로도 감정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 더 중요한 건 계속해서 이 아이가 궁금해진다는 것. 생판 모르던 아이이지만 3월부터 함께 지낸 시간만큼, 내 안에서 아이에 대한 애정이 자라났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아이의 이름을 말할 때면 어느새 이름 앞에 ‘우리‘라는 말을 덧붙이니까.

시간은 제멋대로 나를 앞질러가는 얄미운 존재다. 그런데 바로 그 시간이 우리 반 아이들과 나 사이에 이야기를 만든다. 상담으로 알게 된 것이든, 보고 듣고 생활하며 느낀 것이든. 때로는 부드러운 곡선을, 드물게는 뾰족한 흔적을 긋게 하는 시간들. 마주 보며 웃는 시간은 둥글게, 날카로운 순간은 뾰족하게. 어쩌면 날이 서 있을 때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만드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그어간 시간은 하트의 형태로 모양 잡혀 나가는 게 아닐까. 그 선들을 잘 다듬어 일 년을 마무리해 나가야겠다. 나중에 만나더라도 눈을 맞추며 웃을 수 있도록.


타로카드는 라이더 웨이트 덱, 질문카드는 클레이질문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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