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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아 Oct 29. 2023

수업의 시작과 동시에 중학생을 관찰합니다

들어가는 글

반마다 수업을 시작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다들 제자리에 앉아 교과서를 펴놓고 준비하는 반은 “안녕하세요~.”하고 우아하게 인사하면서 들어갈 수 있다. 오후 수업이거나 다소 산만한 반은 교실 문으로 들어갈 때부터

“교과서 준비!”

를 외치거나

“자리에 앉자! “

큰소리로 말하며 교탁으로 간다. 그러지 않으면 아이들은 내가 들어왔는지 어쩐 지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한다.

시간표가 달라진 2학기, 매주 같은 요일의 6교시 수업 진달래반은 꼭 큰소리를 내고 수업을 하게 된다. 자리에 앉히고, 교과서를 꺼내게 하고, 수업과 관련 없는 말을 그만하게 하는데, 나를 향한 말도 거침없다. 궁금한 것도 많고 할 말도 많아 저희들끼리 하는 말과 말 사이에는 침묵이 자리할 틈이 없다.

교탁 앞에 서서 아이들 눈을 감게 했다. 명상을 하자고.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 나는 뭘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고 했다. 와, 그러고 보면 옛날에는 ‘명상의 시간’이 있었지. 그땐 그 시간이 있는 게 너무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하게 느껴졌는데. (여학교만 다녀서일까?) 그렇게 자란 내가 명상의 시간을 부르짖다니 꼰대가 된 기분이었지만, 방방 뜨는 중학교 2학년의 에너지를 ‘워~워’할 필요가 있었다.

“딱 삼십 초만 조용히 집중해 보자. ”

손으로는 출석부에 사인을 하고, 교과서를 펼치는 등 수업 준비를 하면서 입으로는 차분함을 유도했다.

“자, 지금은 무슨 시간인가 생각해 봅시다. 여기는 어디인가, 오늘 나는 무얼 하러 여기에 있나. 나는 지금 여기에 있나?”

두서없이 말을 하는 틈틈이 아이들은 흘긋거렸고, 그새를 참지 못하고 구돌이는 손을 번쩍 들고 눈을 크게 뜬 채로 나를 쳐다본다. 그 눈을 피하며 집중하자고, 차분해지자고 주문(?)을 걸었다. 잠잠해진 듯해서 눈을 뜨게 하고는 구돌이와 눈을 맞췄다.

“선생님, 저 너무 목이 마른데요. 물 좀 마시고 오면 안 될까요? “


억지로 눈을 감고 있다가 생기를 되찾은 아이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저 뒤에 앉아있는 여학생의 머리모양이 많이 달라졌다. 단발머리를 찰랑거리던 아이였는데 갑자기 양손으로 긴 머리를 찰랑 넘긴다. MBTI 유형 중 S로서 나는 이런 걸 금세 알아차리곤 하는데, 한마디 할까 하다 그만뒀다. 긴 머리를 붙이고 온, 저 긴 머리카락에 담긴 아이의 욕망은 무엇일까.


수업 중에 교실을 거닐다 보면 아이들에 대한 TMI를 많이 듣고 보게 된다. 물 마시고 오겠다는 구돌이는 수업 중에 꼭 한 번은 뭔가 튀는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 한돌이는 머리를 아주 짧게 밀었구나.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는 걸까. 세심이는 낮엔 이렇게 더운데 패딩을 입고 있네. 번쩍이는 로고가 자랑스러운 듯 잠바를 벗지 않고, 머리 위 에어컨을 켜두었다. 교복 바지에 어울리지 않는 벨트가 있어도 묻지 않는다. 연수의 두툼한 필통은 색깔별 필기도구 컬렉션이 빼꼼 나와있다.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 교무실 책상 위에 있던 내 만년필로 ‘선생님, 공책 두고 갑니다’하고 써놓고 간 학생이다. 그들에 대한 궁금함은 쉬는 시간 사적인 대화로 이어질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운이 좋으면 우리 사이엔 둘만 통하는 뭔가가 자리하기도 하고 아니면 그저 정이 쌓이기도 하고, 대체로는 그 시간들을 통해 아이의 특성을 더 알게 된다.


눈을 감고 입을 다물게 하면 차분한 교실을 느낄 수 있지만 학생들의 개성은 보이지 않는다. 명상의 시간을 갖고 그 시간이 끝나자마자 들어온 각자는 왁자지껄해도 살아있다. 지난주 내내 수행평가를 한다고 꼼짝없이 앉아서 글쓰기를 한 아이들이니 오늘 이렇게 글 말고 말로 표현하려는 욕구를 표출한 게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수업하는 틈틈이 감지되는 중학생들의 독특함을 여기에다가 써보려고 한다.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교실 여기저기에서 일어나는 일의 기록은 다채로울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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