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저 아이에게는 할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데
하교 시간이 지났는데 우리 교무실 옆 컴퓨터실이 시끌시끌하다. 7월의 첫날, 6월 출결을 정리하기 위해 6월달 원격수업이 밀린 2학년 학생들이 컴퓨터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던 거다. 컴퓨터실을 맡고 있는 나는, 학생들에게 손 소독을 하게 하고, 사용 후에는 살균 티슈로 마우스며 키보드 등을 소독해야 한다는 등 주의를 주었다. 복도에서 민수가 친구를 기다리는지 서성이고 있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는 아이가 1학년 꼬맹이 때보다 컸구나 싶었다.
"응, 민수는 안 하니?"
(라고 물었던 데에는, 몇 번이나 컴퓨터실에서 밀린 수업을 듣던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네."
"어~, 다 했나 보네."
인사만 하고 교무실에 들어와 마스크를 벗고 앉으려다가, 오랜만에 안부라도 물어야 할 것 같아서 다시 마스크를 쓰고 나왔다. 방금까지 있던 민수가 안 보인다. 벌써 집에 갔나 하고 1층으로 내려가며
"민수야!"
불렀더니,
"네!"
하고 위에서 후딱 뛰어 내려온다. 3층에 있었던 모양이다.
"어디 갔었어? 친구 기다리는 거 아니었어?"
"교무실에서 기다리래요."
"그래? 누가?"
"수학이요."
나는 갑작스러운 저 대답에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나와 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2층으로 올라오는 중이었고, 민수는 내려오다가 대답을 하면서 다시 3층으로 오르는 중이었다. 마음도 급하다. 그 나름대로는 수학선생님이 교무실에서 기다리라고 했으니까, 얼른 교무실로 돌아가야겠다는 심리가 있었으리라.
'수학이요.'라니. 갑자기 심란해졌다. 수학 선생님인 2학년 부장님이 2학년 요주의 인물들을 타이트하게 관리하고 계신 건지. 민수가 그렇게 막 나가는 아이는 아닌데. 막 나가는 아이였다면, 내가 불렀을 때 그렇게 금방 대답을 하러 우당탕 뛰어내려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저 아이의 마음에는 분명, 뭔가 쌓인 것이나,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나, 담아둔 감정이 있을 것이 분명한데. 선생님 앞에서 '수학이' 그랬다고 말하다니. 아이의 모순적인 언행에 나는 조금 놀라면서도, '수학이'라는 말 안에 담긴 복잡한 심경도 느껴졌다. 그래도 따끔하게 언어예절에 대해 가르쳤어야 했나 고민도 되는 것이다.
우리 민수.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학교폭력 주의라는 꼬리표가 있던 아이였다. 그렇지만 작년 한 해를 겪어본 바로는, 싸움을 일으키거나 크게 반항적인 언행을 보이지는 않았다. 수업 시간에 한 번씩 삐치는 일이 있었는데, 조금 마음이 상하면 그냥 엎드려 있는 식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나 좀 봐주세요'가 너무도 잘 보여서 마구 혼내지도 못하겠는 거다. 한 번은 교실 천장에 있는 선풍기 날개를 부순 적이 있었는데 시간이 흐른 후, 자신의 행동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면서
"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말을 너무도 진지한 얼굴로 하는 것이었다. 그 앞에서는 차마 웃을 수가 없었는데, 민수가 교실로 가고 나서야 담임선생님과 함께, 자신도 어쩔 줄 모르는 사춘기의 태도에 대해, 우리 민수의 귀여움에 대해 웃으며 얘기할 수 있었다.
키도 작고 얼굴도 작은 아이이지만 달리기만큼은 정말 빠르고, 머리는 항상 짧게 깎고, 까만 눈을 빛내는 민수. 그 눈빛에는 선생님들께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그냥 번져 나왔다. 반달눈으로 눈웃음을 주는 민수를 어찌 안 예뻐할 수가 있을까 싶었는데, 이런 민수가 요즘 왜 이럴까. 지난번 컴퓨터실에서 만났을 때도 지도하고 계시던 2학년 부장님을 향해 예의 없는 말을 내뱉던 모습도 생각났다.
오늘의 '수학이요'는 생각 없이 나온 말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 말 안에 '내 얘기도 좀 들어주세요'가 숨어있는 건 아닐까.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불렀을 때 그렇게도 급하게 "네~"하면서 뛰어내려오던 그 몸짓은 왜였을까? 마음과 몸이 따로 놀 수도 있잖아. 분명히 선생님들을 향한 호의적인 마음도 큰 녀석인데.
아직도 크고 새 것 같은 교복을 입고, 내 눈에는 여전히 1학년 같아 보이는 민수가 성큼성큼 계단을 오르며 내게 한 말 '수학이요'가 뭔가 찜찜하고 이상해서 내내 남아 있다. 내일은 그냥 한 번 얼굴을 마주 보며 근황이나 나눠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