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있어서 코로나를 견딜 수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여행이 멈췄다는 말을 많이 한다. 저주스러운 역병이 우리의 여행을 앗아갔다고 통탄하는 이도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슬슬 재개되고 있긴 하나 코로나는 국가 간 이동을 막아 해외여행을 무력화했다. 그러나 여행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인적 드문 곳을 찾아다녔고 하다 못해 집 근처 산을 오르거나 공원을 산책하는 ‘작은 여행’을 지속했다. 여행이 자유롭던 시절엔 몰랐던 작은 여행의 재미를 코로나가 알려준거다. 대항해 시대에 견줘 ‘소(小) 여행의 시대’라는 말을 생각한 건 그래서다. 소확행 말고 소여행.
여행을 부추기는 글을 써서 밥을 벌고 있다. 여행기자라고 하면 퍽 낭만적인 일 같지만 코로나 시대 이만큼 몹쓸 직업도 없는 것 같다. 대구발 1차 대유행 때는 두어 달 동안 여행기사를 아예 못 썼다. 매주 다니던 출장도 쉬어야 했다. 오로지 책상에 앉아 몹쓸 전염병이 관광업계를 얼마나 초토화하고 있는지만 써댔다. 출장도 여행이라면, 여행을 이처럼 오래 쉰 기간도 없었다. 그러나 이 시기를 지나며 새로운 여행의 재미를 발견했다. 무거운 짐을 꾸려 낯선 나라를 찾아가지 않아도 집 앞 공원에서도 광대한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바로 집에서 500m 거리에 서울숲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지금은 다른 동네에 살지만 성수동 살던 2년 동안 서울숲을 내 마당인 양 자주 들락거렸다. 코로나 탓에 마땅히 갈 곳이 없었고, 재택근무를 하면서 잠깐이라도 산책할 시간을 얻은 게 계기였다. 덕분에 이전까지 별생각 없이 다녔던 공원을 샅샅이 알게 됐다. 산책하기 좋은 구역, 러닝에 적합한 동선, 자전거 타기 좋은 코스를 구별해서 즐기게 됐다. 계절에 따라 멋진 장소가 다르다는 것도 알았다. 피크닉 나온 사람들로 붐비는 봄, 가을 상대적으로 한갓진 나만의 스폿, 요즘 유행하는 말로 케렌시아도 갖게 됐다. (케렌시아가 꼭 내 집에 있어야 하나?)
서울숲과 친해지며 얻은 가장 큰 소득이라면 계절을 감각하게 됐다는 거였다. 뚜렷한 사계절이 한국의 자랑인 건 누구나 아는 거지만 계절이란 4개로 딱 분절되는 게 아니란 걸 배웠다. 이를테면 살구꽃이 벚꽃보다 1~2주 빨리 핀다는 사실, 돌배나무꽃은 벚꽃과 달리 이파리와 함께 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박완서 선생이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 쓴 것처럼 신록의 빛깔이 온통 연두색이 아니라 수종에 따라 녹두색, 갈색, 보라색으로 다채롭다는 사실도 눈으로 확인했다. 여름꽃인 수국이 언제까지 피어 있는지를 보며 여름의 흐름을 익힐 수 있었다.
코로나 전에도 열심히 전국을 다니며 계절을 중계했다. 봄이면 동백부터 매화, 벚꽃 명소를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과 바다를, 가을에는 단풍이나 억새 군락지를, 겨울에는 설산 트레킹을 취재했다. 각 계절에 맞는 지역 특산물이나 별미를 맛보고 소개하기도 했다. 세상 부럽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건 일이지 여행이 아니었다. 거기서 만난 풍경도 내 것이라고 느낀 적은 없었고, 매년 반복되는 기사 내용도 지겨웠다. 그러나 서울숲은 달랐다. 내 정원 같았다. 매일 찾아도 지겹지 않았다. 서울시 소유의 공공정원이고 ‘서울숲컨서번시’라는 곳에서 위탁 운영을 맡고 있지만 말이다.
같은 코로나 시국에도 서울숲을 더 자주 찾게 된 계기가 있었다. 성수동에 최소한 4년, 가능하다면 8년 정도는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하루아침에 집주인의 ‘방 빼’ 통보를 받았다. 임대차 3법 시행 후 집값이 70% 가량 뛰면서 집주인은 집을 팔았다. 허술한 부동산 정책에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결국 자산이 넉넉지 않은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자괴감을 달래기 위해 서울숲을 자주 걸었다. 성수동을 떠나면 서울숲을 잃는 게 가장 아쉬울 것이기에 숲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루에도 두세 번씩 찾았다. 위로? 힐링? 그런 건 모르겠다. 이사 가기 전, 마지막으로 공원을 산책할 때는 괜히 가슴이 울렁이고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했다.
코로나 확산 이후 신기하게도 미세먼지가 줄었다. 공원 나들이 하기가 훨씬 좋아졌다. 하늘이 맑으니 사진도 잘 나왔다. 대충 스마트폰으로만 사진을 찍다가 큰 카메라를 들고 공원을 찾을 때도 많았다. 특히 지난겨울 서울에 큰 눈이 여러 차례 내렸는데 그때마다 처음 눈을 본 강아지처럼 신나게 공원으로 달려가서 원 없이 사진을 찍었다. 새하얀 서울이 세상 어느 도시 못지않게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해외의 멋진 도시를 갈 때마다 그렇게 서울이 못나 보일 수 없었는데 코로나를 계기로 이 도시를 애정하는 마음이 부쩍 커졌다. 덴마크 코펜하겐을 갔을 때, 모든 시민이 걸어서 15분 안에 공원을 갈 수 있게 도시를 설계했다는 말을 들었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이렇게 멋진 공원이 있으니 복지 천국 덴마크가 부럽지 않다는 ‘국뽕’까지 생겨났다.
소확행이란 말이 몇 년 전 유행했다. 요즘은 ‘소소한’이란 형용사를 많이 쓴다. 소소한 재미, 소소한 풍경 등등등. ‘소소’라는 이름을 붙인 카페도 있고, 갤러리도 있다. 큰 걸 갖는다고 크게 행복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된 걸까, 큰 걸 갖는 게 불가능해져서 생긴 자조인 걸까. 잘은 모르겠으나 BTS도 노래했듯이 작은 것들을 노래하는 마음은 소중하다. 여행도 그렇다. 멀리 가고, 여럿이 떠들썩하게 어울리고, 많이 소비해야만 좋은 건 아니다. 집 앞 공원으로 향하는 하찮고 사소한 여행도 얼마든지 값질 수 있다. 숲을 향하는 작은 걸음에도 충일한 기쁨이 깃들 수 있다. 코로나 시대, 서울숲이 알려준 소소한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