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주 여사네 명절 풍경
나물 다섯 가지, 전도 다섯 가지, 갈비와 잡채, 탕, 갖은 생선, 홍어, 문어, 과일....
엄마의 차례상은 화려하다.
어느 해인가는 나물 종류가 너무 많아서 살짝 투정 아닌 투정을 했었다.
나 : "왜 이렇게 많이 했어?"
엄마 : "조금씩 밖에 안 했다."
나 : "양이 문제가 아니라, 종류가 많으면 힘들잖아.
나물도 딱 세 가지만 해. 전도."
엄마 : "시끄러. 내 맘대로 할 거야. 나 죽거든 늬들 맘대로 해라."
엄마의 차례상은 우리의 입을 너무나 즐겁게 해주신다. 전라도가 고향인 엄마는 자타공인 요리 고수이시다. 엄마의 요리는 하나 같이 예술이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고깃집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었는데, 고기 찍어먹는 소스가 꽤 맛있었다. 식사를 하시던 엄마는 그 자리에서 성분을 분석하시더니 집에 와서 그 맛을 재현해내셨다. 엄마의 요리 솜씨는 두 말하면 잔소리다.
엄마의 화려한 메뉴로 명절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은 정말 즐겁지만 혼자서 그 많은 음식을 하시느라 고생하시는 엄마가 우리 형제는 늘 안타깝다. 하지만 여자 형제가 많다 보니 다들 시댁으로 봉사하러 가야 하는지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세월이 흘러 엄마도 노인이 되셨다. 힘없고 귀도 어두워진 울 엄마를 볼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되곤 한다. 언젠가는 나도 엄마처럼 힘없는 세월이 오겠지 하는 마음에 같은 여인으로서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연세가 드신 엄마는 이제 우리의 권유에 저항하지 않고 음식 가짓 수와 종류를 많이 줄이게 되었다. 나물도, 갈비도, 잡채도, 전도. 그 종류도, 양도 줄었다. 형제들이 교대로 친정을 방문하고 함께 음식을 나누고 돌아가면 거의 소진될 정도로 대폭 줄어들었다.
엄마가 아니라 언니가 음식을 주관하게 된 것도 큰 변화 중 하나이다. 몇 년 전 시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후 언니는 시가 식구들과 명절 전 미리 성묘와 가족 모임까지 끝내고 친정으로 와서 명절 음식 준비를 돕는다. 차례 음식의 실질적인 권한이 언니에게 모두 넘어가 이제 음식 종류도 양도 언니 마음대로다. 모든 권한을 언니에게 넘겼지만, 엄마가 끝까지 양보할 수 없는 음식 한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생선이다.
울 부모님의 고향은 바닷가다. 집집마다 차례 메뉴가 조금씩 다 다르겠지만, 친정의 차례상의 중심은 바닷가의 특색을 반영하듯 생선이 중심이다. 양태, 돔, 도다리, 홍어와 같은 생선이 세 접시 정도 올라가는 것은 보통이다. 보통은 생선을 쪄서 상에 올리는데, 엄마는 생선을 구워서 상에 올리신다. 엄마는 생선을 굽기 위한 용도로 전용 팬도 가지고 계실 정도로 생선 굽기에 정성을 기울이신다.
차례상에 올라가는 생선은 크기가 큰 편이라서 구워서 익히는 일은 보통 노동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팬에 생선을 올려놓고 기름 바르는 솔로 참기름을 발라 앞뒤로 주기적으로 뒤집는다.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참기름의 고소한 맛과 열이 스며들게 구워야 타지 않고 놀짱 놀짱(노릇노릇의 전라도 사투리)하게 구워진다고 엄마는 늘 우리에게 설명하신다.
예열한 구이팬에 반건조한 생선을 올려놓고 한 면에 참기름을 발라준다. 열이 어느 정도 오르면 다시 뒤집어 다른 한 면에 또 참기름을 발라준다. 이때 참기름을 너무 많이 발라도, 너무 적게 발라도 안된다. 또, 적당한 시점에 생선을 뒤집어주지 않으면 생선을 태우고고 만다. 이 과정을 느리게, 생선이 다 익을 때까지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반복한다. 생선이 다 구워지면 고소한 깨를 솔솔 뿌려 마지막 풍미를 더한다.
젊은 시절에야 그까짓 생선 굽기야 앉아서 하는 편한 일 축에 들었겠지만, 이제 엄마는 두 다리 모두 인공관절 수술까지 하셨다. 쪼그려 앉아 생선 굽는 일이 엄마 연세에는 무척 고된 일 임에 분명하다.
"엄마, 그냥 찜기에 찌면 안 돼?"
찜기에 찌면 30분이면 끝날 것을 왜 그 고생이냐고 보채도 보지만 엄마는 막무가내다. 맛있는 것이 다 빠져서 안된다는 것이다. 모든 권한을 언니에게 넘겼건만 인공관절 수술까지 한 불편한 두 다리를 구부리고 생선 굽기를 고수하시는 엄마. 어쩌면 생선 굽기는 차례 주관자로서 양보할 수 없는 마지막 자존심일지도 모르겠다.